지난주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검은 목요일’로 몰아넣은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와 테라USD는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
지난주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검은 목요일’로 몰아넣은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와 테라USD는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합

암호화폐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시가총액이 6개월 새 1조 달러(약 1284조원) 이상 증발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지난해 11월 6만7802달러, 48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지난 13일 현재 최고점에서 각각 58%, 60% 하락했다.

암호화폐는 지난해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가 15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수하고, 미국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활황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최근 급락세는 노련한 투자자조차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암호화폐의 대장격인 비트코인은 7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상이 잇따르는 등 금융시장의 변곡점에서 투자자들이 대거 위험자산 투매에 나선 여파로 풀이된다. 여기에 헤지펀드들이 암호화폐 투자에 나선 것 역시 하락기에 손실을 더 키우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와중에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와 테라USD의 몰락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의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루나와 테라USD는 애플의 엔지니어 출신인 권도형 대표와 전자상거래 기업 티몬 창업자인 신현성 의장이 공동 창업한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암호화폐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는 달러와 1대 1의 고정가치를 갖도록 일명 ‘페깅’ 알고리즘을 넣었다. 페깅이란 증권가격이 발행가격 아래로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통시장에서 증권을 매수·매도함으로써 발행가격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특히 비트코인의 시세가 출렁일 때마다 큰 파급효과를 갖는 암호화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나 상품의 자산을 담보가치로 둔다. 대표적 스테이블 코인 테더가 발행량과 동일한 가치의 달러나 채권 등 실물자산을 지불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테라USD의 가치를 담보하는 것은 자매 암호화폐 루나다. 가령 테라USD의 시세가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루나를 찍어내 테라USD를 산다. 시중의 테라USD 유동성을 줄여 가격을 올리는 방식이다. 반대로 테라USD의 가격이 1달러를 넘기면 테라USD를 추가 발행해 가치를 떨어뜨린다. ‘암호화폐 돌려막기’ 구조인 셈이다. 테라USD를 매도한다 해도 1달러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1달러 상당의 루나를 지급한다.

테라USD는 그동안 이 같은 방식으로 달러와 1대 1 고정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5월 들어 테라USD의 시세가 1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는데도 가격이 복구되지 않으면서 루나까지 폭락하게 됐다. 테라USD 매도가 루나 매도로, 루나 매도 영향이 테라USD 매도로 반복되면서 ‘코인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루나는 지난 6일 10만원대를 기록했지만 13일에는 1원 안팎에서 거래됐다. 일주일 만에 10만분의 1로 폭락한 것이다.

루나는 한때 시총이 50조원에 달했던 메이저 암호화폐고, 테라USD의 시총 역시 23조원을 웃돌며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으로 부상했다. 그만큼 세계 곳곳에 투자자가 많다는 것인데, 이번 폭락으로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개별 암호화폐의 폭락이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의 패닉을 몰고 올 수 있는 것은 스테이블 코인의 구조적 연결성 때문이다. 추락하는 암호화폐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발행업체가 지불준비금 형태로 보유한 비트코인과 알트코인 등을 대거 처분하면 전 세계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이 일제히 급락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지난 13일 루나에 대한 거래를 종료한다고 공지했으며,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고팍스·업비트·빗썸도 루나를 거래소에서 퇴출시키기로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논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업체를 은행처럼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다. 발행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규제 근거가 특정금융정보법에 없기 때문이다.

루나와 테라USD는 ‘폰지사기’, ‘러그풀’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 또는 암호화폐를 개발한다며 투자금을 모은 후 갑자기 프로젝트를 중단한 채 투자금을 가지고 사라지는 수법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