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3층 서기실의 암호』
【서평】 『3층 서기실의 암호』
  • 최성재
  • 승인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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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지은이 | 태영호, 펴낸곳 | 도서출판 기파랑, 542쪽, 2018

【서평】 『3층 서기실의 암호』

[주영(駐英) 북한 대사관의 전 공사 태영호의 외교관 생활과 개인적 성장 이야기, 북한의 의사결정 과정과 구조, 사회주의가 봉건사회로 봉건사회가 노예사회로 뒷걸음질 친 내막 등이 궁금한 애국자에게 이 책은 안성맞춤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2015년 3월 프랑스 주재 북한대표부에 있는 동료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왔다. 그는 정보기관의 도청을 감안해 아리송한 말을 했다.

“태 동무, 외무성 김일성광장 쪽 4층에서 일하는 여자 부원의 아버지가 무언가를 부탁해 왔다. 그 내용을 메일로 써서 보냈으니 잘 읽어보라. 태 동무의 이름과 동무가 외국에 나갈 때마다 보는 문건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한 단어, 한 단어를 곱씹어 가며 퍼즐을 맞춰나갔다. 우선 ‘외무성 김일성광장 쪽 4층’은 당위원회를 말한다. (중략)

‘여자 부원의 아버지’는 3층 서기실의 백순행이었다. ..... 백순행의 ‘부탁’이라는 것은 3층 서기실로부터 내려온, 김정은의 지시라는 뜻이었다. (중략)

이제는 ‘태 동무의 이름과 동무가 외국에 나갈 때마다 보는 문건’에 대한 풀이를 해야 할 차례였다. 나의 영문 이름 철자와 여권번호를 결합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thaeyongho’와 여권번호를 차례로 패스워드로 입력했더니 문서가 열렸다. ( ≪3층 서기실의 암호≫ pp.375-377)

<3층 서기실>은 김정은의 집무실이 있는 3층 규모의 당 중앙 청사에서 그를 보좌하는 부서이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한다. 그 실체가 처음으로 저자 태영호에 의해 드러났다.

북한은 노동당 가운데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곧 김정일이 권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삼촌 김영주를 몰아내고(1972) 장악한 이 두 부서가 핵심의 핵심이라고 알려졌는데, 저자에 따르면 북한의 모든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조직지도부보다 3층 서기실이 더 세다고 한다.

당중앙조직부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도 이것(김정일 또는 김정은에게 각 부서가 횡적 연결 없이 직보直報하는 체제)만큼은 건드릴 수 없다(p.234).

3층 서기실이 실세 중의 실세인 것은 이런 시스템을 지탱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p.235).

김정은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왼쪽)이 에릭 클랩튼의 런던 공연장을 찾았을 때 옆에서 에스코트하던 태영호 공사 모습

암호를 풀자, ‘에릭 클랩튼의 공연 최고 좌석 6장을 예매하라’는 내용이 떴다. 그렇게 보안을 지켰음에도 어찌어찌 알려져서, 김정은의 형 김정철은 한때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며, 카메오(cameo)로서 연예 가십(gossip) 세계무대에 깜짝 출연했다.

태영호 가족 4인의 망명(2016)은 황장엽의 1인 탈북(1997) 이후 약 20년 만에 3만 명의 탈북자가 자유와 풍요를 만끽하고 있는 ‘파라다이스 코리아’에 여느 때보다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그러나 ‘북한 붕괴→ 자유통일→ 평화번영’의 김칫국은 이번에도 마시기는커녕 입맛을 다시려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6ㆍ15공동선언(2000)으로 평양의 2대 세습이 공고화된 것처럼, 4ㆍ27판문점선언(2018)과 6ㆍ12싱가포르선언(2018)으로 3대 세습이 덜컥, 잠정적인이긴 하나, 세계 공인까지 받아 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공고화를 넘어 평양이 서울을 흡수통일할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황장엽이 입에 재갈이 물리고 발에 차꼬가 채워진 것처럼, 태영호도 현재 사실상(de facto)그렇다. 그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는 순간부터 한국의 정세는 요상하게 펼쳐져서 세계 보편의(universal) ‘자유 만세, 인권 만만세’가 아니라, 알쏭달쏭 ‘평화 만세, 적폐청산 만만세’가 대한민국의 평창과 판문점에서 멀리 싱가포르의 센토사섬까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UN과 공조한 대한민국의 북한 옥죄기는 그사이 흐지부지되었기 때문이다.

2300만 노예의 유일무이 주인에게 눈엣가시였던 ‘수구꼴통, 시대착오적 냉전 의식에 갇힌 암탉’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이석기 내란죄 확정을 방조하고 대북전단의 표현 자유를 헌법의 부채로 부추긴’ 대통령이 여야의 찰떡 공조와, 언론의 ‘카더라! 옳소! 죽여라!’ 신바람 보도와, 법관의 양심을 ‘집단동조(Solomon Asch의 실험)’의 군중심리에 자진 납세한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되고 파면되어 ‘닭장’에 갇혀서, 오호라, 명재경각(命在頃刻)이기 때문이다.

덴마크 産, 페타치즈

1부 <평양의 심장부>는 외교관 생활과 외교의 꼼수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평양의 심장부>는 태영호의 외교관 생활과 평양의 치밀하게 계산된 ‘벼랑 끝’ 꼼수 외교의 내막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덴마크와 스웨덴, 영국 등을 오가며 북한 정권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오기와 배짱 및 불쌍한 북한 주민을 위한 지혜와 용기(덴마크로부터 페타치즈 3200톤을 무상으로 운반비 100만 달러까지 받아서 보낸 것 p.118*, 북한 어린이들의 6개월간 집단체조 훈련을 슬기로운 ‘제의’로 종식시킨 것 p.247 등)를 때로는 짜증나게 때로는 조마조마하게 보여 준다.

더불어 북한이 겉보기와는 달리 국제 정세를 얼마나 냉정하게 분석했는지, 특히 영국을 통해 어떻게 미국을 간접적으로 견제했는지, 핵과 미사일로 김씨공산왕조의 역린(逆鱗) 북한인권 문제를 단칼에 베어 버리고 역공을 당해 도리어 허둥지둥하는 한국과 미국과 일본 포함 세계를 상대로 주머니 속의 공깃돌을 갖고 놀 듯이 얼마나 잘도 갖고 놀았는지, 그 외교의 속살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외무성 부국장 태영호의 월급 2900원은 시장에서는 1kg에 3000원하던 쌀 1kg도 살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고위직은 국영가게에서 1kg에 40원으로 살 수 있었지만 p.281! 그 돈은 시중환율로 따지면 1달러도 안 된 셈이다.

개성공단에서 한국 기업으로부터 평균 110달러를 받아 막상 노동자에게 1달러 내지 2달러밖에 안 준 것은 시장 환율과 공식 환율의 터무니없는 차이를 악용하여 잔인하게 장난친 것!

2018년 7월 10일 현재, 평양의 시중환율은 8040원, 쌀 1kg 4840원(NK데일리)으로 대략 2:1의 비율로 이건 그전에도 비슷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화 1달러면 쌀 2kg을 살 수 있다.

그에 비하면 3200만 달러어치의 페타치즈는 북한에서는 상상불허의 가치가 있었는데, 덴마크의 선의를 악랄하게 저버리고, 굶주리는 어린이의 작은 입으로 쏙쏙 들어간 게 아니라, 123쪽에서 보듯이 김정일이 군 부대를 시찰할 때 장군님의 선물로 둔갑하여 군인의 큰 입으로 쑥쑥 들어갔다.)

2부 <노예 해방을 위하여>는 태영호의 개인사

엘리트 교육을 통해 노예로 순치(馴致)된 저자(1962년생)가 나이 쉰이 넘어 자유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외교관도 자녀를 인질로 두어야 하는 비정한 ‘동물농장’에서, ‘태양신(태양은 핵융합 반응에 지나지 않은데)’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어지럽히면 아무리 높은 자도, 최측근도 그 자리서 ‘교화’되고 숙청되고 처형되는 생지옥에서, 왜 탈출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화를 꾹꾹 누르고 담담히 기술하고 있다.

공포와 협박과 감시감독으로 몸만 구속되었을 뿐, 딱 한 명만 빼고 2300만의 마음이 북한체제에 대해 완전하게(completely), 검증 가능하게(verifiably), 되돌릴 수 없게(irreversibly) 등을 돌린 오늘날 북한의 현실도 적나라하게, 희망차게 보여 준다.

국제 공조의 경제 제재가 강해질수록 오히려 장마당이 활성화되어, 김일성 가문의 노예가 노동자와 농민으로, 반항할 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도, 누구도 거슬릴 수 없는 도도한 시대적 대세도 실감나게, 용기 있게, 노예해방의 엄숙한 사명감을 갖고, 설령 엉뚱하게 한국에서 잡혀 가더라도, 당당히 보여 준다.

◇ 서평을 마치며 '맞춤법'에 대해

마지막으로, 신문이든 책이든 너무도 잘 틀리는 띄어쓰기에 대해서, 특히 대학 나온 사람일수록 잘 틀리는 띄어쓰기에 대해서, 맞춤법 검사의 체로도 걸러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잠깐 언급하려고 한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1. ‘이, 그, 저’를 붙여 쓸 경우

‘이’, ‘그’, 때로는 ‘저’는 관형사로서 그다음에 오는 체언과 띄어 쓰는 게 원칙이다. 전에는 ‘이것, 그것, 저것’만 대명사로 분류해서 붙여 썼으나, 개정 맞춤법에서는 단독으로 쓰는 일이 거의 없는 아래의 명사와 함께 쓸 때도 대부분 붙여 쓴다.

1) 사람을 뜻하는 ‘이’와 ‘분’, ‘놈’과 ‘년’: 이이, 그이, 저이, 이분, 그분, 저분, 이놈, 그놈, 저놈, 이년, 그년, 저년

2) 장소를 뜻하는 ‘곳’: 이곳(=여기), 그곳(=거기), 저곳(=저기)

3) 위치를 뜻하는 ‘중(中)’: 그중 *이 중(띄움)

4) 시간을 뜻하는 ‘때’와 ‘사이’, ‘날’과 ‘달’과 ‘해’: 이때, 그때, *접때, 이사이(=이새), 그사이 (=그새) *밤사이(=밤새) *밤샘, 이날, 그날, 이달, 그달, 이해, 그해

5) 순서를 뜻하는 ‘다음’과 ‘전(前)’: 이다음, 그다음, 그전, 이전(以前)

*다음날(붙임) *다음 달(띄움) *다음 해(띄움) *그 후(띄움)

#일관성이 없는 것: ‘다음 달’과 ‘다음 해’, ‘그 후’와 ‘이 중’은 머잖아 붙여 쓸 듯.

2. 밖에(조사)와 밖에(명사 + 조사)

1) 부정문: ‘밖에(just)’는 조사이므로 붙여 쓴다.

예) 북한에서 에릭 클랩튼의 공연을 보러 영국에 올 사람은 김정철밖에 없었다(p.378).

2) 긍정문: ~ ‘외에(in addition)’라는 뜻으로 ‘명사 + 조사’이므로 띄어 쓴다.

예) 이 밖에 10유로인 관광비자 발급도 큰 수입원천이다. (p.192에는 붙여 씌어 있다.)

그 밖에 ‘이 밖에’가 잘못 쓰인 것은 p.261, p.334, p.524.

≪3층 서기실의 암호≫는 비교적 맞춤법이 정확한 편인데, ‘이 밖’에도 내가 교정 본 것이 수두룩하다. 출판사 <기파랑>에 근무하는 누군가 이 글을 보면 연락하기 바란다.

프랑스인(2017년 4분기부터 ‘프랑스 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은 하다못해 고졸 학력으로 푸줏간을 경영해도 언제든지 손이 닿는 곳에 프랑스어 사전 또는 프랑스 동의어 사전을 갖춰 놓고 수시로 궁금한 단어를 찾는다고 한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특히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우리도 영어 철자만 눈에 불을 켜서 따지지 말고 국어사전을 열심히 찾아야겠다. 서울대 의대 출신의 ‘세계적 석학’이 ‘꿈꿈니다’라고 빼뚤빼뚤 써서야 되겠는가. 아무래도 ‘그이’는 족집게 고액 과외 빨로 서울대에 합격했던 것 같다, 뜻도 모르고 달달 외어서! 종결형어미 ‘-ㅂ니다’를 이해하면, 그것은 꿈속에서도 틀릴 수 없건만!

소중한 책을 사 준 친구 ‘효자’ 홍겸에게 감사하면서, 이만 총총.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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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7-24 21:52:11
저도 태영호 공사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네요. 서평에 이어지는 맞춤법에 대한 선생님의 지적도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보여주는 '우리말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무감각'과 더불어 '영어 단어의 오남용'과 '영어 실수에 대한 컴플렉스'도 뿌리깊은 사대주의 근성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지며, 제 자신부터 다시 한 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