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한국교회핍박

책 출판은 하와이 '신한국보사'
‘105인 사건’은 ‘신민회’ 탄압과
‘한국 기독교’ 탄압이 얽힌 사건
교회, 일본의 외교·내치에 위협
북미주 인디언? 하와이 원주민?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공고

류석춘
류석춘

1913년 2월 정착하기 위해 하와이를 찾은 이승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책 집필이었다. 박사학위를 마친 자신을 고국 땅에서 떠나게 하고 또 1년 가까이 미 대륙을 떠돌게 만든 ‘105인 사건의 내막과 실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약 두 달간 집중적인 작업 끝에 집필을 마무리한 한국교회핍박19134월 출판됐다(하와이 신한국보사).

그렇다면 ‘105인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 ‘한국기독교사연구소201065일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한국성서대 이호우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05인 사건은 식민통치 직후 일제에 의해 완벽하게 날조되어 일방적으로 재판이 진행된 최대 규모의 한민족 탄압사건이자 한국 교회와 기독인 박해 사건이었다.”

105인 사건으로 피의자들이 연행되는 모습.

총독부는 191012월 데라우치 총독이 압록강 철교 개통식에 참석한 후 서북지방을 순방할 때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선천에서 드러났다고 날조했다. 신민회 회원과 평안도 지역의 기독교 신자 600여 명이 검거됐다. 일본 경찰은 거짓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도 마다하지 않았다. 600여 명 중 123명을 기소해서 105인이 유죄 판결을 받자 이 사건은 ‘105인 사건으로 알려지게 됐다(아이굿뉴스, 201068, 표성중 기자).

이호우 교수는 “105인 사건을 신민회를 억압하려는 사건으로 보는 견해와 한국 교회에 대한 탄압으로 보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이 두 견해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다라며 “105인 사건과 한국 교회는 많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승만이 105인 사건의 전모를 밝힌 책 제목을 한국교회핍박이라 붙인 이유와 같은 설명이다.

그렇다면 신민회는 어떤 단체인가? 신민회는 19074월 안창호(安昌浩)가 제안해서 결성된 비밀결사로 양기탁·전덕기·이동휘·이동녕·이갑·유동열이 안창호와 함께 7인의 창건위원으로 시작한 단체다. 이 단체는 구한말에 존재한 다섯 갈래의 애국세력 지도급 인사들을 망라한 전국 규모의 단체였다.

이들은 1) 양기탁으로 대표되는 대한매일신보세력, 2) 전덕기로 대표되는 상동교회(尙洞敎會) 세력, 3) 서북지방과 서울 등의 신흥시민 기업인 세력, 4) 이동휘로 대표되는 무관 출신 세력, 5) 안창호로 대표되는 미주에 있던 공립협회(共立協會) 세력이다.

그러므로 ‘105인 사건은 서북지역에 집중된 기독교 세력과 그들을 지도하는 애국지사들을 일거에 제거하려는 의도로 꾸며진 사건이다. 이에 더해 이 사건은 선교사들을 배후 세력으로 지목해서 선교사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는 의도도 가지고 있었다. 결국, 105인 사건은 조선의 애국세력 지도자들과 기독교를 뿌리째 뽑으려고 조작된 사건이었다.

이제부터는 이승만이 쓴 한국교회핍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인용은 모두 강명구 박사가 역주 및 해제를 붙여 2019년 연세대 출판부가 펴낸 책을 기준으로 제시한다.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일본은 한국을 합방한 이후로 어떠한 곡절도 겪지 않고 목적한 바를 이루어 왔다. 그런데 이번 윤치호, 양전백 등 123인을 구속하고 재판한 사건으로 비로소 세계 각국에서 논쟁이 일어났으니 일본으로서 크게 불행한 일이다”(p. 19).

이어서 이승만은 한국 선천 장로교학교(신성중학교) 학생들을 잡아 가두고 윤치호, 양전백 등 모든 유명한 교회 지도자들을 잡아 가두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데라우치 통감을 암살하려 한다고 하였다...‘미국 선교사 수십 명이 한국인들과 공모한 증거가 드러났다고 하였다” (p. 33). “공모자 123인을 자세히 조사해보니 태반이 교회학교 교사와 학생이며 목사, 전도사 등과 윤치호, 양기택, 류동열 등이 모두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다”(p. 39).

이승만은 일본에 합병된 한국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의 미묘한 처지를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국인들은 미국 선교사들이 모두 일본을 도와 일하는 자들이어서, 정치적 발언을 하지 못하게 하고 애국 사상을 발표하지 못하게 하며, 일본의 모든 잔혹한 행위를 조금도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본다”(p. 44).

1913년 4월 하와이 '신한국보사' 가 출판한 이승만의 '한국교회핍박' 표지와 서지사항. 표지 글씨는 이승만의 친필이다(출처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1913년 4월 하와이 '신한국보사' 가 출판한 이승만의 '한국교회핍박' 표지와 서지사항. 표지 글씨는 이승만의 친필이다(출처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이어서 이승만은 선교사들의 생각에는 지금은 한국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반대를 듣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기초만 잘 잡아 놓으면 장차 한국인들은 교회를 통해 희망을 얻을 것이요, 교회가 정치적 간여를 하지 않으면 일본이 방해할 꼬투리가 없을 것 같아서 일본의 말을 일부 듣자는 것이다고 변명해 준다(p. 45).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승만은 한국 교회 지도자들에게 기독교회 내부에서 독립전쟁을 준비하자고 하든지 배일사상을 요동치게 해서 독립을 회복하자는 등 그런 어리석은 정치적 전략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일본 정부의 정략과 부딪히는 두 가지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 첫째는 외교와 관계된 일이고, 둘째는 내치와 관계되는 일이다”(p. 49). , 이승만은 한국 교회의 존재 자체가 외교 및 내치 두 가지 차원에서 일본에 위협이 된다고 설명한다.

외교상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나 서양 선교사들, 외국 교회 방문객들은 실상 정치적 간섭을 하려거나 배일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한국에 교회가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한국의 정치 상황을 외국에 있으면서도 알게 되는 것이며, 세계의 정의를 한국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일본은 이렇게 외교적 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한국 교회를 싫어하는 것이다”(p. 59).

다음으로 내치상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승만은 한국 교회가 일본의 내치 정책에 방해가 되는 이유를 8가지로 들고 있다 (pp. 59-94). 교회는 1)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회집할 수 있고, 2) 활동력이 많고, 3) 합심하는 능력이 있고, 4) 국민의 원기를 유지시키고, 5) 청년교육에 힘쓰고, 6) 우상을 섬기지 않고, 7) 선교사들의 도의적 영향력을 확장시키고, 8) 혁명사상 풍조를 동양에 전파하기 때문에 일본이 불편해 한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이승만은 한국기독청년회라는 소제목이 붙은 부분에서 한국 정부를 복속시키려 할 때 한국 백성들이 먼저 궐기하여 일어나 일본의 속국이 되기를 원한다는 뜻을 세상에 공표하였고, 지금도 청년회를 복속시키려고 하는 자리에 한국인들이 들고일어나서 일본 청년회에 붙여지기를 자청하니 한국인은 참 희한한 인종인 것이다....북미주의 인디언이나 하와이 원주민들이 제 몸을 자해하여 스스로 멸족했던 것처럼이라며 통탄한다(pp. 99~100).

이승만의 '한국교회핍박'을 요즘 말로 다시 정리한 책들.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산하 건국60년출판위원회가 펴낸 책(2008, 청미디어, 왼쪽)과 김명구 박사가 역주·해제를 붙인 책(2019, 연세대 출판부).
이승만의 '한국교회핍박'을 요즘 말로 다시 정리한 책들.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산하 건국60년출판위원회가 펴낸 책(2008, 청미디어, 왼쪽)과 김명구 박사가 역주·해제를 붙인 책(2019, 연세대 출판부).

마지막으로 선천학교와 재판 전말을 정리하면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은 책의 최종 결론을 제시한다. “만일 일본이 한국 교회를 아예 없애고자 한다면, 일본 당국자들은 옛날 로마 황제 네로가 실수한 것이나, 한국의 대원군이 동학을 일으킨 것, 청나라 서태후가 의화단을 일으킨 것과 같은 조소(비웃음)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마침내 한국 교회를 더욱 공고히 할 따름이니 이는 기독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진 까닭이다”(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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