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박상후

미국과 NATO가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러시아와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은 중화권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5월 15일 타이완의 TVBS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태를 ‘삼국연의’에 비유하며 영어로 설명하는 중국 소녀를 소개하면서 놀라워 했다.

초등학생인 이 소녀는 미국과 유럽의 군사동맹 나토를 조조의 위나라, 우크라이나를 위·오·촉 세 나라의 완충지대인 형주, 그리고 러시아의 푸틴을 강동 오나라의 군주 손권에 비유했다.

조조의 위나라가 완충지대인 형주를 차지하자, 여기에 위협을 느낀 오나라의 손권이 적벽대전에서 화공으로 큰 승리를 거뒀다고 소녀는 설명한다. 또 젤렌스키는 조조가 쳐들어오자 항복한 형주목 유표의 아들 유종과 같은 캐릭터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국연의’ 스토리에서 절정을 이루는 적벽대전(Battle of Chibi)을 들어가면서 완충지대(Buffer Zone)라는 국제정치학 용어까지 언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필리핀 외무장관 테오도르 록신 주니어도 경탄했다. 화교가 많아 중국의 고전을 이해하고 있는 필리핀 외무장관조차 이 소녀가 아주 지혜롭다면서 무릎을 친 것이다.

세계인들은 슬라브민족을 대표하는 러시아와 앵글로색슨 동맹국이 우크라이나라는 무대에서 벌이는 세기의 한판 승부를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그 복잡한 합종연횡의 구도를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도덕과 이데올로기로 간단하게 재단하기에는, 동맹을 건너뛰는 국가간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무기와 병력, 병참지원, 이간계와 반간계 등 첩보전과 선전전의 요소, 대의명분과 현실, 총력전과 하이브리드 전쟁의 요소를 두루 가지고 있다. 이를 ‘삼국연의’에 대입해 이해하는 소녀의 사고에 필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십에 불과할 수도 있는 초등학생의 에피소드지만, 4강에 둘러싸인 우리도 동맹이 아니면 적이라는 단순사고를 버리고 좀 더 유연하게 세계를 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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