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교사와 멋진 교장... 선생님 고교얄개 이야기
훌륭한 교사와 멋진 교장... 선생님 고교얄개 이야기
  • 최성재
  • 승인 2018.07.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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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에 삽입된 삽화는 필자과 관계 없읍니다. 필자가 가족 휴가를 떠나사 의논을 못했습니다.ㅋㅋ

재밌게 읽다가 '고교얄개'도 떠오르고 '공포의 외인구단' 만화도 떠오르고 해서 무단 삽입했습니다. 절대 수익목적으로 무단게제한 것은 아닙니다ㅋㅋ

『훌륭한 교사와 멋진 교장』

[교사 허근, 교장 이명희, 그리고 교장 E는 등촌(登村)고등학교의 황금기를 열었다.]

9회말 무사만루의 위기에 처한 등촌고에 부랴부랴 투입된 E 교장 투수,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상하좌우, 구석구석을 찌르는 커브, 슬라이드, 변화구에, 느닷없는 투심 패스트볼(two-seam fastball)까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타자들은 연신 헛방이질하거나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공 6개에 KKK, KKK, 단숨에 삼진 아웃 둘!

이제 마지막 타자, 침을 탁탁 뱉고 냅다 강호동의 괴성을 지르고 카산드라의 레이저 눈빛을 사방으로 팍팍 쏘면서 타격 자세를 잡는가 싶더니, 웬걸, 초구 유인 볼에 곧추든 방망이를 얼떨결에 휘둘렀는데... 뽕(방귀 소리 아님), 내야 플라이 아웃!

고작 공 7개에 잔뜩 꿈에 부풀어 있던 세 선수가, 저마다 승리의 주인공으로서 서울시 강서구에서 가장 멋지게 샴페인을 터뜨릴 꿈에 부풀어 있던 누상의 세 선수가 불야성 전깃불에 혼비백산 사라지는 도깨비 무리처럼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원래 1선발 투수였지만 갑작스레 소방수로 마운드에 오른 늙은 E 교장 투수는 무늬만 프로였던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에 현해탄을 건너온 늙은 장명부와 비슷했다. 나이 무관, 그 둘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한 차원 높은 프로의 프로였던 것이다.

E 교장은 서울대 생물교육학과 출신에 박사학위 소지자로 인문계 고등학교의 기본 개념을 정확히 아는 분이었다. 대체로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민주’가 사회 모든 부문에서 만병통치약으로 통용되면서 교육감이든, 교육부 장관이든, 대통령이든, 이런 기본의 기본도 모르는 교육 선무당들이 교육 채찍으로 허공을 마구 찢어발겼다. 쩌정, 차창, 짜자장!

“민주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거룩한 민주의 무소불위 권위로 명하노니, 대가리 박아!”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예비학교이고 실업계는 취업예비학교이다. 인문계의 1순위는 입시교육이고 실업계의 1순위는 취업교육이다. 쯧쯧, 그 무렵부터 인문계는 비정상적 정상교육이 1순위로 올라섰고, 실업계는 파행적 온정주의적 입시교육이 1순위로 올라섰다.

급기야 언젠가부터 실업계가 인문계보다 대학진학에 유리해졌다. 평균적으로 학생들도 더 똑똑하고, 착하고, 예쁘고, 싹싹하고!

E 교장은 자신과 뜻이 같기보다는 다른 바가 더 많았던 전교조 교사들에게도 미세먼지 마스크를 넉넉하게 선사했다. 성과급의 기준을 둘러싸고 교무회의가 산으로 올라갔다가, 바다에서 표류했다가, 늪에 빠졌다가, 마구 요동칠 때였다. 시간은 물 흐르듯 흘렀고, 샌드위치 교감은 숫제 울먹울먹.

“성과급 위원회에서 숙의하고 토론한 결과에 따라, 여러분이 보시는 그 기준에 맞춰, 이미 교육청에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지금 말씀하신 모든 것을 검토하여 새로... 잘... 꼭... 제발...”

“웅성웅성! 흥, 쳇! (뭐야!) (놀고 있네!)”

그때, 내내 꾸어둔 보릿자루 역을 연기하던 교장이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갔다.

“찾아오겠습니다, 제가 가서 서류를 찾아오겠습니다.”

부임한 지 2년 6개월 만에 E 교장이 정년퇴임하고, 훤칠한 이명희 교장이 선발투수로 성큼성큼 마운드에 올랐다. 이제는 모든 게 정상. 그런데 여기저기서 쑥덕쑥덕! 여자에, 할머니에, 교대 출신에, 장학사 출신에, 전 중학교 교장에, 첫 고등학교 교장에, 이 여섯을 조합하면? 현장을 모를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현장을 모른다, 개에 맹세코(소크라테스가 자주 쓰던 맹세의 말)!

선입견이 사라지는 데는 한 학기도 걸리지 않았다. 남자보다 나은 여자, 아저씨보다 나은 할머니, 사대(師大)보다 나은 교대(敎大), 인문고 장기근무 교사보다 나은 장학사, 고등학교 교장보다 나은 중학교 교장!

이명희 교장도 인문계 고등학교의 기본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게다가 입보다 귀가 열 배쯤 컸다. 교내 순시를 거의 않고 서예에 몰두하면서도 교사들의 수업 현장을 파악하는 능력도 갖췄다.

또한 교육청과 교육부의 명령을 적당히 뭉갤 줄도 알았다. 전화 몇 통화로 단발성 소나기를 피하고 잠시 처마 밑에서 콧노래 부르며 비를 긋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을 계속 가는 요령과 지혜도 있었다. 서류를 밉지 않게 포장해서 위로 올려 보내는 센스도 있었다. 교육청에서 눈 먼 예산을 은근슬쩍 타 와서 삐걱거리는 학교 재정의 윤활유로 쓸 줄도 알았다. 약삭빠른 행정실 직원들이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다잡을 줄도 알았다. 튀는 교사를 어르고 달래는 포용력도 있었다.

선생님들의 출근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학생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고, 방과후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잰걸음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고, 자율학습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석식 대열에서 재잘거리는, 또는 투닥투닥 장난치는 학생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당번이 아니어도 초과근무에 동참하는 담임들도 학년마다 늘어났다. 허근 선생님은 매일 남았고! 종종거리던 주부 담임선생님들이 그리 고마워할 수가 없었다, 친정 큰 오라버니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길로!

인문계 고등학교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지면서, 학생부 선생님들과 담임선생님들의 따끔한 생활지도에 바로 고개를 떨구고 얼른 눈에서 힘을 빼는 학생들이 서서히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학생부 앞에서 아침마다 ‘일찍(앉고)! 등교(서고)!’의 힘찬 목소리에 참새와 비둘기와 직박구리가 메아리로 화답했다. 봄이면 ‘체력 단련장’에 바싹 붙어 돌단풍도 까르르 하얀 웃음으로 화답했다.

학교 전체에 담배 연기가 싹 사라졌다. 이에는 학생부장 주 선생님의 공이 지대했다. 벌점이 누적되면, 칼같이 교칙을 적용했다.

허근 선생님은 나랑 전공이 같은 영어과인데, 나보다 1년 늦게 관악고와 등촌고에 차례로 전근 왔다. 각각 4년, 9년(*)을 함께 근무했다. 나는 주제를 알고 한사코 부장을 고사했지만, 허 선생님은 교장이 원하면 어떤 부서든 부장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E 교장 마지막 해에 1학년 부장의 중책을 맡았는데, 어찌된 셈인지, 이명희 교장이 부임하고도 1학년 부장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신의 한 수’ 또는 ‘알파고의 포석’이었다.

(*등촌고가 자율형공립고로 변신하면서 초빙 교사는 5년을 더 근무할 수 있었다.)

고2만 되어도 늦다. 고1부터 시작해야 한다. 연합고사가 폐지되면서, 한국형 유급제도가 사라지면서, 고1은 몸만 커지고 2차 성징(性徵)만 도드라졌지, 전두엽의 자제심과 극기심이 예전의 중1 수준만도 못해졌다. 대신 편도체의 쾌락과 유혹에는 한없이 약해졌다. 해마의 장기기억(long-term memory) 능력은 도무지 향상될 줄 모르고! 자연히 하한선이 없는 학력 저하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y=2x + 4

이 간단한 1차함수도 시각화할 수 없는 학생이, 그래프로 그릴 수 없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실지로 어떤 2학년 문과반에서 칠판 앞으로 불러내어 분필을 쥐어줬더니, 반에서 10등 정도인 학생 서너 명이 사이좋게 헤매는 걸 봤다.

허 선생님은 방과후수업에서 우수반을 편성했다. 거룩한 교육부와 지엄한 교육청이 알면 경(黥)을 칠 일이었다. 이걸 E 교장과 이명희 교장이 공히 묵인했다. 허 선생님에게 고마워했다!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나도 한 반을 맡았다. 알파(α)반은 내게 양보하고, 브라보(β)반은 허 선생님이 맡았다. 수학도 학생들이 황홀하게 쳐다보는 선생님들에게 부탁했다.

나는 영어에 대한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 독해용 쉬운 영어 원서를 선정했다. 우리말로도 좋고 영어로도 좋고, 읽고 나면 한 문장으로 요약하게 했다. 그 시간에 바로 할 때도 있었고 숙제를 낼 때도 있었다. 한 학기 후에는 ≪성문기본영어≫를 교재로 택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도 외워서 쓰게 하는 시험도 봤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실력이 쑥쑥 늘었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부 잘하는 학생 중 단 한 명도 강남으로 전학 가지 않았다, 개교 이래 처음으로!

“꿈나무반, 드림팀!”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자기들 반의 별명을 지어 부르며, 자부심의 무지개를 미래의 하늘에 척, 척, 걸어 두었다. 질문도 많아졌고 문제를 두고 자기들끼리 거품을 물고 침 튀기는 일도 많아졌다. 누가 뭐라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왜 오롯이 자기가 맞는지 기어코 입증하는 끈기의 학생도 생겨났다.

모든 게 선순환(virtuous circle)을 이루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학생도, 교사도, 교감도, 교장도, 학부모도! 믿었다, 학생도, 교사도, 교감도, 교장도, 학부모도 서로가 서로를!

후에 허근 선생님과 나는 3학년 담임도 2년간 함께했다. 부장은 당연지사 한 번은 허근 선생님이었지만, 두 번째는 다른 선생님이었다. 두 번 모두 환상적인 팀이었다. 담임선생님들의 조화와 인화가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부러움을 샀다. 함께 남해로 제주로 놀러도 갔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여건에서 학생들을 더 유리하게 하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동기를 더 유발하고 스스로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 생활지도도 잘할 수 있을까, 담임선생님들은 밤낮 궁리했고, 다투어 좋은 의견을 냈고, 서로가 서로를 열심히 본받았다.

스승의 날, 허근 선생님 반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풍선, 꽃, 만국기, 노래, 춤, 괴성, 우당탕, 까르륵! 지나가다가 은근히 부러워서 나는 고개를 쭉 빼고 한참 구경했다.

평소에 근엄하던 허근 샘이 때마침 몸 개그의 전율로 여학생들의 배꼽을, 온몸을 사정없이 찌르고 난타하고 있었다. 댁에서 사랑하는 두 따님의 방을 정성껏 청소해 주듯이, 허근 샘이 수시로 걸레를 들고 반들반들하게 닦아 둔 아름다운 반이 그날은 전교에서 제일 미워졌다. 난장판, 개판, 아름답게 망가진 개판!

이명희 교장은 등촌고를 자율형 공립고로 재탄생시킨 후, 선발투수로 등촌 마운드에 오른 지 1년 반 만에 정년을 1년 앞두고 명예롭게 자진해서 강판했지만, 당신의 그윽한 향기는 3년 내지 4년 더 은은히 풍겼다. 재학생만이 아니라 재수생, 삼수생 중에도 우수한 학생이 꽤 남아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된 학생들이(*) 그리 많아졌던 것이다.

(*군자는 쉬지 않고 노력하여 스스로 강해진다<君子以自强不息>. -- 주역<周易>에서)

30여 년 교직 생활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다는 ‘큰 교장’을, 나는 등촌고에서 두 분이나 만난 행운아다. 짐작이 가겠지만, 두 분과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고 가끔 만난다.

“E 교장 선생님, 이명희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조만간에 찾아뵙겠습니다.”

“허근 선생님, 정년퇴임(2018-08-31)을 축하합니다! 조만간에 얼굴 한 번 봅시다.”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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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7-24 22:10:34
한 조직의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제자 복도 많으셨지만, 동료 직원들 복도 참 많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