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생 정당 '르콩케트' 총선 후보 방한 계기로 본 佛 보수주의

지난해 제무르 창당...反세계화·佛우선주의 표방·기독교적 가족주의 존중
저서 '프랑스의 자살'에서 좌파 '68세대'가 프랑스를 어떻게 망쳤는지 고발

2014년 화제를 모든 에릭 제무르 <프랑스의 자살>. 한국어번역은 아직 없다.
 

프랑스 신생 보수 정당 ‘르콩케트’(Reconquete)는 ‘再정복·수복’ ‘되찾기’등을 의미하는 이름이다(=영어 Reconquest). 6월 총선을 준비 중인 ‘르콩케트’ 후보 마르크 귀용(Marc Guyon 1984~ )이 한국을 찾았고, 그의 방한 소식을 소셜미디어(SNS)로 공유한 당원 및 지지자들의 자발적인 간담회가 이뤄졌다(13일 저녁, 용산 노보텔). 참석자 대부분이 상사 주재원, 변호사, 국제학교교사, 대학원생 등이었다. 이번 모임은 프랑스 특유의 토론 및 방담 문화, 현 프랑스 보수주의의 일단을 보여줬다.

작년 12월 창당한 ‘르콩케트’는 ‘反세계화’ ‘프랑스 우선주의’를 내세운다. ‘프렉시트’(프랑스의 EU탈퇴)를 주장하면서 미·러·중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입장이다. 페미니즘·동성애 등 ‘문화상대주의’에 반대하며 전통적(기독교적) 가족주의를 존중한다.

파스칼·몽테스키외·루소·토크빌 등 위대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전통을 잇는 현대 프랑스의 ‘최고 지성’ 레이몽 아롱(1905~83) 후배들 치곤 강경해 보이지만, 오랜 좌편향과 탈냉전 이래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갈 데까지 간’ 프랑스 현실의 반증이라 볼 수 있다.

당원 수로는 프랑스 최고(13만명)임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의 노골적인 견제를 받아 왔다. 지난달 대선에서 국영방송(프랑스 2·3·4)이 최소한의 정치적 중립이라도 지켰다면, ‘르콩케트’ 후보 에릭 제무르(1958~ )가 실제보다 훨씬 많은 득표를 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귀용 후보는 프랑스·독일·영국 등지에서 수학했다(영어·중국어·일본어 능통). 특히 명문 엑스 마르세이 경영대학원(IAE-Aix) 졸업 후, 경영 마인드의 보수정치를 꿈꾸는 인물이다.

무술과 헬스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에, 언제든 1~2시간 정도 자기 가치를 피력할 수 있는 달변가 웅변가이기도 하다. 전 세계 ‘자유시민 가치공동체’로서의 ‘보수 연대’가 절실한 오늘날, 기대되는 젊은 정치인이다. 21세기 ‘보수주의’는 과거의 폐쇄석 이기적 자국중심나 국수주의와 다르다.

‘혁명의 나라’이자 ‘좌파 지식인의 온상’이었던 프랑스에 보수주의 운동이 나타났다. ‘르콩케트’ 창당을 주도하고 지난달 대선에 출마한 제무르는 유서깊은 보수 일간지 ‘르 피가로’ 기자·논설위원 출신이다. 방송 작자·앵커로도 명성을 쌓았다. 2014년 나온 <르 수이시드 프랑세>의 저자로 더 유명해졌다.

‘프랑스의 자살’로 번역될 제목의 이 책에서 제무르는, 68세대(우리로 치면 586 운동권)가 프랑스를 어떻게 망쳐놨는지 조목조목 고발한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는 이민자·동성애 등의 문제로 ‘자살의 길’을 가고 있으며, 1968년 이른바 5월 혁명(일명 68혁명)이 그 시초였다.

아롱에서 제무르로 이어지는 현대 프랑스의 보수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아롱은 ‘68세대의 우상’ 장 폴 사르트르의 친구였으나, 전체주의의 부상과 좌편향 지식사회에 반발하며 열렬한 자유주의 옹호자가 됐다. 30년간 ‘르 피가로’ 편집자였고, <지식인의 아편>을 통해 공산정권에 대한 지식인의 맹목적인 지지를 비판했다.

작년 출범한 프랑스 보수정당 ‘르콩케트’의 주도자 ‘에릭 제무르’(좌)와 국회의원 후보 ‘마르크 귀용’(우). 6월 총선을 앞두고 방한한 가용 후보와 재한 프랑스인 간담회가 13일 열렸다.
작년 출범한 프랑스 보수정당 ‘르콩케트’의 주도자 ‘에릭 제무르’(좌)와 국회의원 후보 ‘마르크 귀용’(우). 6월 총선을 앞두고 방한한 가용 후보와 재한 프랑스인 간담회가 13일 열렸다.

마르크스·클라우제비츠·코제브·사르트르 등 19~20세기 거물 학자들에 대한 비판적 해설자 역할도 컸다. 그런 아롱의 후배가 제무르다. 그리고 이 둘의 후배인 귀용 후보를 둘러싼 모임이 며칠 전 서울에서 있었던 것이다.

제무르의 <르 수이시드 프랑세>는 68세대의 극단적 문화상대주의가 초래한 부작용을 집중 조명한다. 수용한도를 넘은 이민자, 가족 해체를 가속화하는 동성애 문제 등이 중심에 있다. 성소수자·이민자를 탄압하자는 게 아니라, ‘가치 지향 주권국가’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다.

‘인권’으로 포장돼 이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이 사실상 이들을 ‘표밭’으로 여기는 정치세력의 이해와 얽혀 있다. 미국 역시 이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아 왔다. 대한민국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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