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세상의 모든 식당의 젓가락은
한 식당에 모여서도
원래의 짝을 잃고 쓰여지는 법이어서
저 식탁에 뭉쳐 있다가
이 식탁에서 흩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 지나 닳고 닳아
누구의 짝인지도 잃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다가도
무심코 누군가 통에서 두 개를
집어 드는 순간
서로 힘줄이 맞닿으면서 안다
아, 우리가 그 반이로구나

이병률(1967∼)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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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젓가락을 빗대어 ‘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짝’은 부부일 테지만 또 다른 관계로 확대해석하여도 무방하다. 이 세상에 ‘짝’은 부부만 있는 게 아니니까. 어떻든 부부의 삶이라는 게 식당 젓가락처럼 ‘오랜 시간 지나 닳고 닳아 / 누구의 짝인지도 잃은 것이 /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순간 ’서로 힘줄이 맞닿으면서 / 아, 우리가 그 반이로구나’ 라는 사실을 안다. 서로 힘줄이 맞닿는다는 표현은 팔목의 힘줄을 말하는 듯하다. 젓가락처럼 팔목의 힘줄은 두 줄이고 손에서 하나가 된다. 젓가락 한 개는 소용없다. 두 개가 합쳐졌을 때 비로소 기능을 발휘한다.

밥을 먹을 때 습관처럼 젓가락 짝을 맞추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런 행동심리 이면에는 젓가락 짝을 잘 맞추지 못하면 관계가 서먹해지거나 위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미신과 노파심이 작용한 것일 게다. 만약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조신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채야 한다. 만약 이 시를 읽으며 어떤 얼굴이 떠오른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어떤 얼굴은 필경 ‘짝’일 테니 말이다.

여자 없는 남자, 남자 없는 여자들이 너무 많다. 직업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란 말이 유행하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 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한 말들의 이면에는 존재의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혼자보다 둘이 낫다는 옛사람의 말은 언제나 옳다. 존재의 두려움 또한 능히 헤쳐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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