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증언】주한미군 7명 피살 고랑포 기습사건
【CIA 증언】주한미군 7명 피살 고랑포 기습사건
  • 마이클 리
  • 승인 2018.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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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리는 502군사정보단에 근무하면서 송추 무장공비 사건, 거물간첩 황태성 사건, 무장간첩 김동기 사건, 실미도 사건 등을 직접 조사했다.

CIA에 들어간 후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위해 그는 유럽 등 전 세계 24개국에서 파견생활을 했다. 한국에서도 86년부터 95년까지 근무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신상옥-최은희 부부, KAL 858 폭파범 김현희씨, 황장엽 선생 등을 직접 만나 조사했다.
고랑포

『CIA 마이클 리,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15년 이상 주한미군 502 군사정보단 심문관 생활을 하면서 그 많은 일들을 다 기억할 수도 없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들을 추려서 더 이야기 해보련다. 지금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할 수 없으나 그때가 1966년 늦가을이었다. 서부전선 미2사단 전방으로 침투한 후 체포된 간첩 한사람을 내가 심문 했는데 그가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 당시 북한 인민군은 동부전선에 제1집단군을, 중부전선에 제5집단군을, 그리고 서부전선에 제2집단군을 배치하고 있었다. 각 집단군 산하에는 총참모부 정찰국의 작전지시를 받는 도보정찰소(徒步偵察所)라고 하는 특공대 (Commando Unit)가 있었다.

이들은 아군 (국군과 미군) 전방에 은밀 침투하여 정찰활동을 하거나 때로는 밤에 전방부대의 지휘관을 암살하고 목을 베어가는 공작을 수시로 자행했다. 그해 10월 15일부터 20일 사이 그들이 집중적으로 동부전선 중부전선 서부전선 일대에서 남으로 침투하여 국군장병 총23명을 사살하고 1명을 납치했으며 여러 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아마 그 당시 전방의 경비가 허술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중요한 정보란 이런 것이었다. 그 당시 제2집단군 산하 도보정찰소에서는 1개 소대병력이 맹훈련중인데 그들의 임무는 미2사단 전방에 침투하여 미군부대를 기습하고 병력을 사살한 후 퇴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 1개월 이내에 작전을 개시할 것이라고 했다.

◇휴전 이후 미군이 입은 가장 큰 피해

나는 급히 그 내용을 긴급첩보 형식으로 작성하여 보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1966년 11월 2일 새벽에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800미터 떨어진 미2사단 소속 고랑포 부근 일개부대가 저들의 기습을 받고 아침식사 배열에 서 있던 미군6명과 카투사 1명이 사살되고 미군 1명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8군과 제2사단이 비상태세에 들어갔다. 내가 보고한 정보를 신속히 처리하고 경계태세를 철통같이 준비했더라면 그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은 휴전이후 미군이 당한 가장 큰 사건이었다.

그때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방한하고 떠나면서 비행기 안에서 이 보고를 받고, UN군 사령관이며 미8군 사령관인 찰스 본스틸 대장에게 사건의 책임을 엄격히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그 불똥이 나에게 떨어졌다. 미8군 G-2에서 502 군사정보단을 검열하고 사전정보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내가 보고한 심문조서가 발견되었다. 분명히 사전정보가 있었는데 사건발생 이전에 처리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찰스 본스틸 대장
찰스 본스틸 대장

◇주한미군사령관 노발대발

이로 인하여 본스틸 대장이 노발대발하고 직접 진두에 나서서 진상을 밝히려고 502 군사정보단과 내가 속해 있는 A/중대에 찾아와서 책임을 추궁하게 되었는데 맨 마지막에 내가 불려 들어갔다. 그때 부대 지휘관들이 벌벌 떨었고 나도 4성장군 앞에서 벌벌 떨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가는 기지가 떠올랐다. 내가 작성한 심문조서의 원본을 찾아달라고 했다. 장교 한사람이 부대 편집과에 가서 그 원본을 찾아왔다. 그 원본을 받은 본스틸 대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거기 첫 페이지에 분명히 빨간 글씨로 <긴급처리 요망> (Immediate Action Required)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오히려 칭찬을 받았고 상부의 여러 사람이 징계처분을 받았다. 이때 이후로 새로운 긴급첩보 보고절차 (Spot Report System)가 시작되었고, 특별히 내가 새로운 입소자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하면 부대장과 편집과 직원들이 긴장했다.

mlee-cia@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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