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 70년사】北, 남파간첩 양성 위해 대학까지 세워
【대남공작 70년사】北, 남파간첩 양성 위해 대학까지 세워
  • 유진
  • 승인 2018.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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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53년 9월 13일에는 남한출신 간부들에 대한 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결정에 따라 개성시 만월동에 송도정치경제대학을 설립했다. 이 대학에는 당시 중앙당학교 분교와 김일성종합대학에 분산 입학시켜 교육 중이던 남한출신자들만 입교시켰다.

1957년 김정일군사정치대학 창설

글:유진

북한은 1953년 9월 13일에는 남한출신 간부들에 대한 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결정에 따라 개성시 만월동에 송도정치경제대학을 설립했다. 이 대학에는 당시 중앙당학교 분교와 김일성종합대학에 분산 입학시켜 교육 중이던 남한출신자들만 입교시켰다.

교육 목적은 이들을 장차 한국을 적화통일한 후 남한지역의 당 및 정치기관, 행정 경제기관에서 활동할 중요간부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학을 졸업한 대상 가운데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되어 남파된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송도정치경제대학은 적화통일 후 남한에 파견할 일반 간부 양성과 함께 대남공작원 양성을 겸하고 있었다. 사실상의 대남공작 교육기관이었다.

이와 함께 과거에 폐지한 대남공작원 전문 양성기관인 금강정치학원을 대체할 대남공작요원 교육 훈련 기관도 신설했다. 그것이 바로 1957년 1월 30일 김일성고급당학교 분교 형식으로 창설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학교'(약칭 정치학교)다.

일명 '통일대학' 또는 '순안정치대학'이라고도 불렸던 중앙당 정치학교의 초대교장에는 김광빈이 임명되었다. 정치학교 교장은 중앙당 연락부 부부장이 당연직으로 겸임했다. 교장 밑에는 정치부와 군사부, 교무부와 후방부(지원부서)를 두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재학시절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
김일성종합대학 재학시절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

◇공작원 양성소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학교

정치학교 졸업 후에는 공작원으로 적합한 인원들을 다시 선별한 다음 공작원에 임명된 대상들은 개별적으로 연락부가 직접 운영하는 초대소에 다시 수용돼 대남공작 임무수행에 필요한 별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다음 남파되었다.

실제로 1965년 9월 7일 경기도 안성에서 검거된 남파간첩 최남섭의 경우 1963년 12월~1965년 2월까지 약 1년 반 정도 정치학교에서 간첩교육을 받은 후 1965년 7월 남파될 때까지 5개월 동안 초대소에서 공작임무 수행에 필요한 전술교육을 개별적으로 받았다.

1957년 1월 30일에 창설된 중앙당 정치학교는 그 후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금성정치군사대학'으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980년대 초에는 '노동당중앙위원회 직속 정치학교'로, 1990년대 초에는 현재의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개명했다.

정치학교 창립 10주년이 되는 1967년 1월 30일에는 당시 학장으로 있던 김일성의 빨치산동료 전창철의 요청으로 김일성이 정치학교를 다녀가기도 했다. 그래서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는 대학(정치학교) 창립 기념일이자 김일성의 현지지도 날짜인 1월 30일을 기리기 위해 '130연락소'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고 '695군부대'라는 위장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보위성 정찰국

국가기구인 민족보위성과 사회안전부 내에도 대남정보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공작기구들을 신설, 개편했다. 원래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에서 대남공작을 시작한 것은 인민군이 정식으로 편성되기 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당시인 1946년 8월 15일 보안간부훈련대대를 창설하고 인민군의 핵심간부 양성을 시작한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보안간부훈련대대에는 내부에 총참모부가 있었고 그 예하에 정찰국이 있었다. 초대 정찰국장에는 보안간부훈련대대 참모장을 역임하고 있던 김일성의 빨치산동료 안길(본명 안상길)이 취임하였으나 그가 1947년 12월에 사망한 후 이상조, 박금철 등을 거쳐 1953년 이후 김일성의 또 다른 빨치산동료 박성철이 취임하였다가 1959년에는 차두손이 임명되었다.

정찰국의 기본임무는 북한군의 전쟁수행에 필요한 대남군사정보 수집이었으며 부차적으로는 무장 군사정찰을 겸한 휴전선 침투루트 개척, 공작원 호송안내 임무도 담당했다. 한편 북한은 1955년 4월 노동당중앙위 정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정찰국 산하에 독립적인 공작기구인 특수정찰국을 신설하고 여기에서 기존에 민족보위성 정찰국에서 수행하던 대남, 대외 군사정보 수집 공작을 전담했다. 그리고 1960년 4월에는 과거 노동당 연락부에 소속되어 남파간첩 호송안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716군부대를 특수정찰국에 이관했다.

이와 함께 내무성 사회안전국 내에 있던 정보공작국을 확대 개편하여 대남 및 대외 정치, 경제, 과학, 기술 등 전 분야의 정보수집 공작을 전담하도록 하였다.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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