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장석광

2021년 5월 9일 일본 도쿄 인근 타마(多磨) 공동묘지, 전승기념일을 맞아 미하일 갈루진(Mikhail Galuzin) 러시아 대사와 독립국가연합(CIS) 외교 공관 수장들이 헌화를 했다. 프랑크푸르트 차이퉁(Frankfurter Zeitung) 일본 특파원이란 위장 신분으로 활동하다 77년 전 처형된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Richard Sorge)’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1941년 9월 14일 조르게가 ‘일본은 독일이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기 전까지는 소련을 공격하지 않는다. 일본은 자원 확보를 위해 만주의 병력을 남방으로 이동시킨다.’는 첩보를 모스크바로 날렸다. 독일 침공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스탈린에겐 이보다 더 좋은 첩보는 있을 수 없었다. 일본의 침공에 대비하여 극동에 배치하였던 병력 중 15개 보병 사단, 3개 기병 사단, 탱크 1700대, 비행기 1500대가 모스크바 공방전에 투입되었다. 소련군이 독일군을 패퇴시키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상승(常勝)신화가 무너졌다. 조르게의 첩보 한 건이 패망직전 소련을 구했다.

훤칠한 키, 다부진 체격, 갈색 곱슬머리, 아치 형 짙은 눈썹, 푸른 눈동자,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러시아인 아버지 독일인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조르게의 수려한 외모는 여성들의 경계심을 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첫 연인 ‘크리스티아네’는 "그를 만나는 순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억제되어 왔던, 위험하지만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그 뭔가가 깨어났다. 마치 번개가 한 순간 나를 관통한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어려서부터 역사와 문학, 철학, 정치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베를린과 킬(Kiel)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함부르크 대학에서는 정치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독일어를 포함하여 프랑스어·영어·러시아어·중국어·일본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일본 특파원으로 위장할 당시 서재에는 코지키(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같은 고전을 포함해 천 권 가까운 일본 서적이 꽂혀 있었다. 기자로서 작성한 ‘일본 보고서’는 유럽에서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그의 일본에 대한 분석력과 통찰력은 대단했다.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조르게는 타고난 스파이였다.

1941년 10월 18일 일본의 방첩기관에 의해 조르게가 체포되었다. 일본 내 공산주의자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르게의 스파이 활동이 탐지되었던 것이다. 소련과 중립관계를 유지하던 일본은 세 차례에 걸쳐 스파이 교환을 제안했지만 소련은 ‘조르게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성의 없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러시아에서 조르게를 기다려오던 부인 ‘에까테리나 막시몬’은 NKVD(KGB 전신)에 의해 독일 간첩으로 체포되어 5년 유형을 받고 1943년 유배지에서 죽었다. 소련의 이런 배은망덕을 알 리 없는 조르게는 1944년 11월 7일 스가모(巢鴨) 형무소에서 처형당하기 직전 "세키군(赤軍), 고쿠사이 교산토(국제 공산당), 소비에트!"를 외쳤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1964년,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가 조르게에게 영웅 칭호를 추서하고 자국 스파이임을 인정했다. 소련에서 조르게의 기억이 사라져가는 동안 서방에서는 조르게의 기억을 찾고 모았다. 1961년 조르게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Qui etes-vous, Monsieur Sorge?》 (조르게씨, 당신 누구요?)가 프랑스·서독·이탈리아·일본 합작으로 만들어지고, 소련에서도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다. 이후 주일본 소련 대사는 기념일에 조르게의 묘소를 찾는 것이 관례가 되었고 그 관례는 현재 러시아 대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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