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한 일이다. 외교가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북특사설’이 나돈다. 오는 20일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한국 일정에 문 전 대통령과의 별도 회동이 잡히면서 시작된 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게 대북특사를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소문의 진원지는 두 곳이다. 첫째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을 만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문 대통령을 대북 특사 카드로 활용하려는 뜻"이라고 12일 말했다. 북핵 해결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미·북 간 입장을 좁히는 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두 번째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통일부 장관 후보 국회인사청문회에서 권영세 후보자에게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대북특사 역할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의한 것. 정세현 전 장관과 태영호 의원의 발언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그냥 ‘아이디어 차원’일 수 있다.

문제는 문 전 대통령을 대북특사로 파견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될 법한 이야기냐는 것이다 ‘특사’(特使)는 대통령이 직접 보내는 특별사절을 말한다. 대통령의 뜻과 특사의 뜻이 같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사는 대통령의 뜻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 북핵문제 해결방안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뜻이 같은가? 대북특사로 간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서 과연 윤 대통령의 지시대로 말하고 행동할까? 도대체 말이 안 되는 블랙코메디다.

외교적 형식에서도 문제가 있지만, 문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특사로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의미있는 비핵화 선(先) 조치를 요구해왔다.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먼저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과연 미국의 요구대로 움직여줄까? ‘문재인 대북특사론’은 형식과 내용에서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박 진 외교부 장관도 17일 ‘문재인 대북특사론’에 대해 "들은 바도 검토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정말로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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