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엄중하다."

재정당국 수장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통화당국 수장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우리나라 경제의 현주소를 이렇게 짚었다.

추 부총리와 이 총재는 최근 들어 물가 상승 압력이 크게 확대된 가운데 금융시장·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성장 둔화 가능성도 높아져 한국 경제가 위중한 국면에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로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두 사람은 지난 16일 프레스센터에서 취임 후 첫 조찬 회동을 갖고 대내외적 경제 상황과 향후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한차례 만난 적이 있지만 별도의 회동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 부총리는 "정책 수단이 제약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앙은행과 정부가 늘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며 좋은 정책 조합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막중한 시기에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가 한 부처나 중앙은행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책 공조를 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팀워크를 잘 맞춰보겠다"고 말했다.

좋은 정책 조합을 위한 공조는 당위론이다. 역(逆)으로 보면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의미다. 재정당국은 생리적으로 성장, 통화당국은 물가 안정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추 부총리와 이 총재는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다. 둘은 1960년생 동갑내기로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에서 같이 근무했다. 이 총재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 추 부총리는 금융정책국장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적 접근에는 상당한 시각 차이를 노출하고 있다. 조찬 회동 역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정책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을 희석시키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며 유동성을 회수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획재정부는 소상공인 지원 공약 이행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59조4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통화당국은 돈줄을 죄는 반면 재정당국은 큰 돈을 푸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든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정당국 수장은 생리적으로 성장, 통화당국 수장은 물가 안정에 무게를 두게 마련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총재는 한 발 더 나간 발언을 했다. 이 총재는 조찬 회동 후 "향후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물가가 예상보다 더 치솟으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씩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의 빅스텝 언급으로 채권시장에서는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긴축 발작이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원론적인 입장"이라고 진화에 나선 이유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물가 잡기에 방점을 두고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오는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앞두고 있다. 추 부총리는 "금리는 전적으로 중앙은행의 결정 사항"이라고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오비이락(烏飛梨落)처럼 기획재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에 대한 우려를 담은 보고서를 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발간한 ‘미국 금리 인상과 한국의 정책 대응’이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미국을 따라 금리를 인상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0.13%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정규철 경제전망실장은 "한국도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도 "물가 상승률이 더 높고 경기 회복세가 더 강한 미국과 유사한 정도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이 한국 경제에 요구되는 상황이 아니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속해서 시장에 긴축 신호를 보내고 있는 한국은행, 경기침체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정책 엇박자의 우려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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