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일본번역대상 받는 김소연 시인 '한 글자 사전'

'감'에서 '힝'까지 310개 단어 시적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
날카롭고 뭉클한, 달달·쌉쌀한 특유의 해석 맛 볼 수 있어
색다른 시선과 깊은 통찰...뼈아픈 각성·위트도 돋보여

2018년 출간된 김소연 시인의 <한글자 사전>. ‘사전’의 형식을 빈 ‘시집’이자 ‘산문집’이다.
2018년 출간된 김소연 시인의 <한 글자 사전>이 ‘일본번역대상’을 받는다.
 
7일 일본번역대상실행위원회가 <한 글자 사전> 일본어판(一文字の辭典)을 제8회 일본번역대상 수상작 2편 중 하나로 선정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했다.
 
한국문학으로선, 박민규의 ‘카스테라’(2015년 제1회),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2018년 제4회)에 이어 세 번째다. 우크라이나 출신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1925∼1977)의 ‘별의 시간’(한국어판 ‘나에 관한 너의 이야기’)도 함께 올해의 수상작이 됐다.
 
<한 글자 사전>은 김 시인이 한 글자 단어 310개를 시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시인의 눈·머리·마음에 새겨진 ‘한 글자’의 결과 겹", 늘 책상 옆에 두고 지내는 한국어대사전 기역(ㄱ)부터 히읗(ㅎ)까지 순서대로, 한 글자짜리 단어들 310개(‘감’에서 ‘힝’까지)를 자신만의 정의로 풀어냈다.
 
날카롭고 뭉클한, 달달하거나 쌉쌀한, 저자 특유의 해석을 맛볼 수 있다. 색다른 시선과 깊은 통찰, 뼈아픈 각성·위트가 절로 미소를 번지게 하기도 한다.
 
"말이 언제나 무섭고 말을 다루는 게 가장 조심스러운, 그것이 삶 자체가 된" 사람들에게 "사전=늘 곁에 두어야만 하는 경전"이다. 그런 압도적 권위의 ‘경전’을 독자적으로 재구성했다는 것, 마치 ‘숙명 같은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내겠다는 의연한 자세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시인에게 ‘사전’은 "양식(糧食)"이자 "생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기꺼운 양식(樣式)"이다. "독자들이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고 싶어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도 읽힌다.
 
<한 글자 사전>은 누구나 ‘시적인 삶’을 가꾸어갈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비법을 이렇게 귀뜸해준다. "탐을 내다 탐닉하게 되고, 탐닉하다 탐구하게 되고, 탐구하다 탐험하게" 된다(‘탐’). ‘시=인간의 사상·감정을 운율적인 글로 표현한 것’이 일반 국어사전의 정의라면, <한 글자 사전>에선 ‘시’란 세 가지 뜻을 아우른다.
 
"1-이미 아름다웠던 것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될 수 없고,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것이 기어이 아름다움이 되게 하는 일. 2-성긴 말로 건져지지 않는 진실과 말로 하면 바스라져버릴 비밀들을 문장으로 건사하는 일. 3-언어를 배반하는 언어가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 ‘똥’에 관한 설명 또한 절묘하다.
 
"안에 갖고 있기도 싫고 밖에 두고 보기도 싫지만 내보내는 순간 쾌락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쓰는 말과 닮았다."
 
저자에 따르면, <한 글자 사전>은 2008년 나온 <마음사전>의 자매작이다. ‘중요하다’와 ‘소중하다’의 차이가 뭘까? ‘행복’과 ‘기쁨’, ‘소망’과 ‘희망’, ‘처참하다·처절하다·처연하다’, ‘유쾌·상쾌·경쾌·통쾌’, ‘슬프다·구슬프다·애닯다·비애·애잔하다·서럽다·섭섭하다·서운하다’ 등은 어떻게 서로 미묘하게 다를까? ‘외롭다·쓸쓸하다·권태·심심하다·무료하다·허전하다·공허하다·적막하다’의 차이는?
 
저자의 해석이 인간·삶의 섬세한 속살에 관한 신선한 깨달음을 일깨운다. 그 울림을 거듭 음미하는 가운데, 언젠가 ‘나만의 마음사전·한글자사전’을 구성하게 될지 모른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 싫은 마음"이자 "안밖의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허무는 게 ‘유리’다. 유리 뒷면에 수은을 입히면 ‘거울’이 된다. ‘유리’는 그것을 통해 비치는 풍경을 향해 걸어나가게 해준다. 반면, ‘거울’은 비치는 물체에 침잠하게 해준다·····(‘유리와 거울’).
 
이쯤 되면 ‘철학에세이 마음사전’이다. "뜨거운 물에 풀려나가는 차 알갱이, 허공에 풀려나가는 담배 한 모금의 연기처럼, 풀려나가는 실체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마음의 매듭을 풀듯"(차 한 잔과 담배 한 모금), <한 글자 사전> <마음사전> 역시 그런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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