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주장…"내용에 상업 경험 스며있어"

일본에서 간행된 ‘채근담’ 화각본(和刻本). 현대에 국내에서 나온 채근담은 대부분 화각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안대회 교수 제공. /연합

중국 고전 ‘채근담’(菜根譚)을 쓴 홍자성(洪自誠)은 기존에 쓰촨성 청두(成都)에서 활동한 인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안후이성의 부유한 상인 지역 출신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내에 출간된 채근담 번역본 중 원문에 충실한 책이 사실상 없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채근담 저자에 관한 새로운 분석을 담은 논문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민족문화연구’ 최신호에 실었다.

‘동양의 탈무드’로도 일컬어지는 채근담은 명나라 후기인 1610년 전후에 완성됐다. 함축적이고 짧은 말로 고결한 취향, 처세의 교훈, 속세를 넘어서는 인생관을 표현하는 문학 장르인 청언(淸言)으로 분류된다.

논문에 따르면 홍자성이라는 인물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또 다른 저작인 ‘선불기종’에 저자를 유추할 수 있는 간단한 문구가 나온다. 내용은 "작자인 홍응명은 자가 자성이고, 호는 환초도인(還初道人)이다. 지역은 알 수 없고, 책은 1602년에 작성됐다"는 짧은 해설이 전부다.

안 교수는 "홍자성은 어떤 집안 출신이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살펴볼 만한 기록이 없다"며 그나마 원황(袁黃)이 선불기종에 남긴 "홍자성 씨는 신도(新都)의 제자"라는 문구가 출신지를 추정할 근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근담을 일본어로 번역한 이마이 우사부로(今井宇三郞)가 역사지리 지식을 바탕으로 ‘신도’는 쓰촨성 청두이며, 홍자성은 청두 출신 학자 ‘양신’(楊愼·1488∼1559)의 제자라는 주장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신도는 지명이 아닌 사람 이름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안후이성 휘주(徽州·후이저우) 출신인 ‘왕도곤’(汪道昆·1525∼1593)을 신도로 지목했다.

안 교수는 ‘쾌설당집’이란 기록의 서문에서 "천하에서 고문사(古文詞)를 짓는다고 하는 이들은 누구나 문단의 맹주로 ‘낭야’와 ‘신도’를 떠받들었다"는 문장 중 신도가 왕도곤이라고 주장했다. 낭야, 즉 왕세정(王世貞)과 왕도곤은 당시에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고 문인으로 꼽혔다.

이어 "왕도곤은 신도 또는 신안(新安)으로 불렸으며, 홍자성과 나이 차도 스승과 제자뻘로 난다"며 "왕도곤은 휘주 상인 집안에서 출생해 고위 관료를 지냈고, 조부와 부친이 모두 부유한 염상(鹽商·소금 상인)이었다"고 짚었다.

안 교수는 "홍자성은 왕도곤의 학맥과 인맥, 지역색의 영향권에 속한 제자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며 홍자성이 휘주의 부유한 상인 출신이자 왕도곤의 제자라고 한다면 그가 당대 저명한 인물 ‘우공겸’(于孔兼)으로부터 채근담 서문을 받은 연유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상인 출신이라는 홍자성의 배경이 채근담 내용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명나라 후기 청언은 대체로 부귀영화의 허망함을 드러내고, 물욕과 쾌락을 부정하며, 자연과 더불어 한가롭게 사는 삶을 추구한다"며 "채근담도 당시 청언집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세상 밖으로 도망가는 선택과 세속적 욕망을 끊고 사는 선택을 옳지 않다고 한 점이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채근담 중에서도 앞부분인 전집(前集)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처세의 지혜를 다방면으로 제시했다"며 "중국 상업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던 휘주 상인의 윤리와 흥망성쇠 경험이 채근담의 처세술에 스며들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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