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 70년사】"남로당 물 빼라!"... 무장공작조 남파
【대남공작 70년사】"남로당 물 빼라!"... 무장공작조 남파
  • 유진
  • 승인 2018.0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로당 수뇌부와 지하당조직이 공화국에 끼친 해독과 영향 및 잔재를 청산하라

지리산유격대서 박헌영·이승엽 물을 빼라!

이현상 부대 등 수습 위해 무장5인조 지도연락공작조 남파

 

북한은 1953년 휴전협정을 전후해 대대적으로 대남공작조직을 개편하고 공작원 양성기관 설립하는 등 대남공작을 위한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었다. 한편 잔존 역량을 동원해 대남공작을 중단 없이 전개하는데도 주력했다.

북한은 무엇보다 남한 내부에서 기존부터 활동하고 있던 지하당조직과 당원들을 수습하여 당조직을 재건하기 위한 공작을 추진했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지리산과 태백산 등 주요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 대원들과 지구당 조직원들은 국군과 경찰의 강력한 공비토벌 소탕 작전에 의해 거의 소멸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일부 살아남은 자들은 군경의 토벌을 피해 광대한 지리산 줄기와 골짜기로 숨어 다니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가 정전을 맞이했다.

이 같은 여건에서 노동당 연락부는 유격대와 지구당의 잔존세력들을 연계 및 재수습하고 박헌영ㆍ이승엽 등 남로당 수뇌부와 기존 연락부가 끼친 해독과 영향 및 잔재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당조직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7.27 정전전후 시기까지 남한 내에 잔존해있던 지하당 세력은 이현상ㆍ박영발ㆍ방순표 등 지리산지구의 전남북에 있는 일부 당조직과 유격대, 그리고 남도부ㆍ이병희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남도 일부 당조직과 유격대 정도였다. 이들마저도 중앙당과의 연락은 두절된 상태였다.

◇오대산,태백산,속리산 유격대는 전멸, 지리산만 명맥 유지

오대산과 태백산, 속리산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세력은 이미 전멸되어 당조직과 유격대와 같은 조직된 역량은 남아있지 않았다. 개별적으로 살아남은 몇 명의 간부들과 당원들이 산악에 몸을 숨기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당 연락부에서는 1953년 4월 당시까지 잔존해있던 지리산지구의 이현상ㆍ박영발ㆍ방순표 등 제4지구당과 남도부ㆍ이병희의 제5지구당에 각각 지도연락공작조를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지도연락공작조의 임무는 우선 현지에 침투해 당조직 및 유격대를 찾아내 접선 연계한 후 내부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다음 박헌영ㆍ이승엽의 여독과 잔재를 청산하는 사상투쟁을 벌이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이승엽 지시로 기존에 만들어졌던 유격대 지구당 조직체계를 해체하고 사상투쟁을 통해 검증된 간부들과 당원들을 재임명, 재배치 한 다음 이들을 하산시켜 도시와 농촌에 자리 잡게 하고 해당 지역의 당 조직과 당원들을 재수습 연계하여 조직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앙당 연락부에서는 제4지구당과 제5지구당에 파견할 2개의 지도연락공작조를 구성했다. 각 지도연락공작조는 5명으로 구성하되 책임자는 유격투쟁경험을 가진 도당 부위원장급 간부를 임명했다. 2명의 조원은 전투경험이 있는 중간급 간부들로, 나머지 2명은 무전기술을 가진 간부들로 구성했고 모두 무기를 소지하기로 하였다. 한마디로 무장 공작조인 셈이다.

먼저 제4지구당의 이현상 측에 보내는 지도연락공작조는 소백산 지구에서 활동하다 군경의 토벌이 심해져 1952년 3월 입북했던 제1지대 연대장 출신 정도완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나머지 인원들 역시 제1지대 홍현기 부대에서 선발해서 구성했다.

제5지구당의 남도부 측에 보내는 지도연락공작조는 경남 하동 출신으로서 제1지대에서 정치부연대장을 지낸 강병철을 책임자로 임명했다. 나머지는 1952년 말 남도부 부대에서 중앙당에 연락원으로 보냈던 3명과 제1지대 중대장 출신 간부 등을 포함해 5명으로 구성했다.

◇지도연락공작조, 남파 위해 2개월 특수훈련

지도연락공작조 구성이 완료된 다음에는 중앙당 연락부장 박금철과 대남담당비서였던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김일이 직접 이들을 만나 공작임무를 부여하였다. 공작임무를 받은 2개의 지도연락공작조는 우선 임무수행 지역인 지리산까지 무사히 침투하기 위해 인민군 특수정찰요원들이 훈련받는 특수훈련소에 입소해 1개월 동안 고강도의 특수훈련을 받았다.

중앙당 연락부에서는 공작조가 훈련받고 있는 특수훈련소에 어윤갑 부부장을 직접 보내 앞으로 지도연락공작조가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였다.

말하자면 지도연락공작조가 지리산 현지까지 어떻게 침투해 접근할 것인가, 지리산에 도착해서는 잔존 당조직 및 유격대 간부들을 어떻게 찾아내 접선할 것인가, 그들과 접선한 후에는 박헌영ㆍ이승엽의 여독을 청산하는 사상투쟁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유격대의 지구당을 해체하고 간부들과 당원들을 검증한 후 재임명, 재배치하는 작업은 어떻게 할 거인가,

도시와 농촌으로 내려 보낸 간부들과 당원들은 어떤 방식으로 당조직 재건 공작을 하도록 지도할 것인가, 도시와 농촌에 내려가 활동하는 당원들은 중앙당과는 어떤 방식으로 연계연락을 실현할 것인가 등 전체적인 임무수행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토의하여 계획을 수립했다.

◇정도완 공작조, 휴전선 철책 넘은 뒤 2달 만에 이현상 부대 접선

약 2개월 동안 위와 같은 준비과정을 마친 2개의 무장 지도연락공작조는 1953년 6월 하순 1주일 간격을 두고 산악지역인 동부전선 휴전선을 넘어 침투했다. 이현상이 활동하는 제4지구당에 파견되는 정도완 공작조는 1953년 6월 20일 경에 휴전선 철책을 넘어 침투한 후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산악루트를 통해 8월 초순에 지리산에 당도했다. 이들은 보름동안 지리산지구를 헤매면서 찾은 끝에 8월 20일 경 이현상ㆍ방준표ㆍ박영발 등 제4지구당 지도부와 접선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제5지구당에 파견된 강병철 공작조는 임무수행에 실패했다. 그들은 6월 말에 휴전선 철책을 넘어 침투한 뒤 정도완 공작조와 동일한 루트를 따라 8월 말에 무사히 지리산지구에 도착하는데 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제5지구당 지도부를 찾아 헤매던 도중 빨치산 토벌에 나섰던 대규모 군경토벌대와 조우해 포위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병철 공작조는 중앙당 연락부에 자신들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는 무전보고를 한 뒤 전투를 벌이다 전원 사살되었다.

yj@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