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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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실 일본은 소련이 해체되던 1990년부터 지난 30년 동안 꾸준하게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이념과 체제가 이질적이며, 강대국 중심의 약육강식 속에서 이런 일본의 바람은 지금까지 한갓 신기루 같은 희망에 가까웠다.

그런데 때가 왔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대륙과 해양강대국간에 이뤄졌던 세력 균형이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완전히 깨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일 후부터 일본은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최근 미 하원이 러시아의 안보리 축출을 적극 도모하자, 일본의 기세는 더욱 강화되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수용할 것을 공언했고, 서방으로 연결되는 러시아 가스라인을 대신해 일본이 서방에 천연가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가 임기 내 일본을 안보리상임이사국에 진출시키겠다던 결기는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이런 흐름의 화룡정점은, 정상회담에서 방위력을 증강하려는 기시다 총리의 ‘결의’를 미국은 지지한다고 한 바이든 대통령의 표현에서 나타난다.

작금에 펼쳐지고 있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진핑의 지역패권 추구, 패권국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 등을 고려해 보면, 국제사회에서 세력균형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다만 강대국들 사이 패권경쟁과 제국주의 추구, 두 가지 형태만 있을 뿐이다. 궁지에 몰린 러시아 제국주의가 범슬라브민족주의를 앞세워 동과 서 양측면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매우 커졌다. 향후 면밀히 지켜봐야 할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체면을 잃은 푸틴이 더 큰 영토 야욕을 아시아에서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금까지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던,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운 중국과의 군사적 갈등까지도 일으킬 수 있다.

마치 ‘공화주의적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은 패권주의 속에서 안정과 질서를 구가하려는 세계 초강대국이다. 이 말은 미국은 어쨌든 각 국가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나라든지 타국의 주권을 유린하는 불법국가는 미국의 세계패권 질서에 역행하는 것이 되며, 공개적인 적국이 된다. 그래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동유럽에서 집단 안보체제인 NATO를 앞세워 푸틴에 대응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은 일단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뒤끝은 서방의 기대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상당히 호전적이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NATO가입을 신청하고, 동구권이 반러시아로 돌아서는 것을 푸틴은 그냥 묵인할 수 없다. 푸틴의 범슬라브민족주의는 동구권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신장위구르와 몽골, 동북아의 만주와 일본 북방도서 및 홋가이도를 다 포함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자존심을 구긴 푸틴은 동구권에서 러시아의 위세를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로 분쟁지역을 확대해 미국과의 담판 승기를 잡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북한과 중국의 입장이 모호해지며, 몽골과 시베리아에서 세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이 뜻밖에 적대적인 대결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푸틴의 호전적인 제국주의가 아시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바이든은 일본의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리고 차제에 러시아를 유엔안보리에서 축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다. 만약 푸틴이 아시아에서 공세적인 도발로 중국을 자극하게 된다면, 중국도 러시아의 안보리 축출에 긍정적으로 가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실적으로, 유엔안보리에서 러시아가 축출되고 일본이 새로운 상임이사국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계경찰 역할을 담당하는 미국은 러시아의 도발에 대비해 일본이라는 체스판의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제사회의 체스판을 윤 대통령이 제대로 읽는다면, 일본의 안보리 진출 문제로 국내적으로 흥분하는 얼빠진 좌파시민사회를 진정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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