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는 왜 둥근가


능곡 매화나무 가로수 아래를 걷는데
잘 익어 뒹구는 노란 매실들
매실을 밟으려다 열매는 왜 둥근가를 생각했다

새싹이었을 때
새잎이었을 때
꽃이었을 때 비바람에 잘 견뎠다는 점수겠다

색연필로 둥글게 채운 색깔과 향기
오래 견딘 열매에게 주는
참 잘했다는 선생님의 천지신명의 칭찬이겠다

잘 익어 뒹구는 매실을 바라보다
모욕을 잘 견뎌 둥그러진 오래전 사람 하나를
한참 생각했다

공광규(1960~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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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나무에 열매가 달리는 계절이다. 매실은 어제 다르고 오늘이 다르게 나날이 커간다. 가지에 매달린 그 작은 열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린아이 얼굴 같다. 개구쟁이들의 얼굴에 핀 주근깨 같은 것도 보이고 어떤 녀석은 눈물자국도 비친다. 그 작고 앙증맞은 열매는 머잖아 탐스러운 열매로 자라나 사람들로 하여금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할 터이다.

시인은 ‘잘 익어 뒹구는 노란 매실들’을 보며 열매는 왜 둥근가를 생각한다. 관찰력과 시심(詩心)이 동시에 발동한 것이다. 매실이 둥근 것은 ‘새싹이었을 때 / 새잎이었을 때 / 꽃이었을 때 비바람을 잘 견뎠다는 점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온갖 시련을 잘 견딘 점수는 100점. 그러고 보니 점수의 동그라미와 매실 생김새가 똑같다. 뒤이어 시인은 ‘잘 익어 뒹구는 매실을 바라보다 / 모욕을 잘 견뎌 둥그러진 오래전 사람 하나를 / 한참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아마도 등 굽은 소나무 같은 사람이리라.

자연의 선은 곡선이다. 나무, 열매, 강, 호수, 산, 들, 모두 곡선이다. 바다의 수평선도 자세히 보면 곡선이다. 반면에 직선은 문명과 인공의 선이다. 왠지 모르게 위압적이다. 오래 보고 있으면 싫증난다. 그래서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직선보다 곡선을 선호하며, 곡선으로 건물을 디자인한다. 바둑판처럼 쭉쭉 뻗은 신도시를 계획할 때 골목을 만든다. 골목은 이야기를 낳고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모든 열매는 곡선이듯, 곡선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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