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70주년 2만리 역사기행』 떠나며①
『건국 70주년 2만리 역사기행』 떠나며①
  • 조희문 평론가
  • 승인 2018.0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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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제국주의 만행을 찾아서 떠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100년 전쟁

코리아글로브와 역사정립연구소는 건국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스보보드니, 이르쿠쿠츠크 등 연해주 일대와. 새로운 삶을 찾아 국경을 넘어간 수많은 동포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 당했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까지 망국과 유랑의 흔적을 따라 갔다.
2018년 6월 24일부터 7월 14일까지 이어진 21일간, 8,547 킬로미터, 2만리의 답사는 통한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영웅들을 추모하고 새로운 땅에서조차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동포들의 한을 되돌아보기 위한 여정이었다.

 

조희문 영화 평론가

조희문은 누구인가?

조희문은 좌파일색인 한국 영화계에서 거의 유일한 우파 영화 평론가(영화학 박사)다.

경인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상명대 영화전공 교수,

인하대 영극영화과 교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학회 회장 등 평생을 영화 관련 평론과 학술사업에 종사했다.

최근에는 좌파와의 역사문화전쟁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8년 8월 15일로 대한민국은 건국 70주년을 맞는다. 1945년, 일제식민지에서 벗어난 한반도에는 국가도 정부도 없었다. 500여년 간 이어진 조선은 대한제국의 선포로 국체를 바꾸었다. 조선이 왕조국가였다면 대한제국 역시 황제가 통치하는 황제의 나라였을 뿐 백성의 나라는 아니었다.

그마저도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일본에게 강탈당했다. 국제사회에서 대한제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없었다. 1907년, 고종황제는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대한제국 황제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민국평화회의에 참석시켜 일본과 맺은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했으나 회의장에는 입장조차 하지 못했다. 개별로 다른 나라 외교관을 만나 호소하려 했지만 그 역시 외면당했다.

해방을 맞은 나라(?)에 상해임시정부는 정부자격으로 돌아오고자 했지만 군정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누구든 개인 자격으로만 돌아올 수 있었을 뿐이다.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다. 스스로 나라와 국민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댓가였고, 잔혹한 현실이었다.

남한은 군정기를 거치긴 했지만, U.N의 감시 하에 선거가 가능한 남한지역에서 1948년 5월 10일에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선거를 치렀다. 의도적으로 3.8선 이남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북한 지역도 포함하고자 하였지만 소련의 조종을 받는 김일성 괴뢰정권은 총선거를 거부했다.

◇48년 5.10총선으로 한반도 최초로 국민이 탄생하다.

5.10총선은 보통선거, 평등선거, 비밀선거, 직접선거라는 민주적 선거의 4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이뤄졌고 유권자의 95.5%가 참여하여 902명의 입후보자 중 198명의 국회의원들을 선출했다. 그동안 왕정과 식민치하의 피지배 백성으로만 살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근대 민주공화국의 개인구성원인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게 된 것이다.

처음 구성된 국회는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조직을 편제했다.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유엔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소련 스탈린 정권의 조종을 받는 김성주가 김일성이란 이름으로 행세하며 1인 독재의 수령체제를 만들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인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수령 1인을 위한 독재 정권이 되었다. 지금은 3대를 이어가고 있다. 왕조시대의 재현이다.

70여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의 차이는 명확하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했다. 자유, 인권, 복지 등 삶의 질에서도 국제적 인정과 주목을 받는다. 반면 북한은 최저 생계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의 빈곤에 시달린다. 주민의 자유와 인권은 독재자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겨우 유지될 뿐이다.

코리아글로브와 역사정립연구소는 건국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스보보드니, 이르쿠쿠츠크 등 연해주 일대와. 새로운 삶을 찾아 국경을 넘어간 수많은 동포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 당했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까지 망국과 유랑의 흔적을 따라 갔다.

난 6월 24일부터 7월 14일까지 이어진 21일간의 답사는 통한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영웅들을 추모하고 새로운 땅에서조차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동포들의 한을 되돌아보기 위한 여정이었다.

◇선조들의 피땀으로 건국된 1948년 대한민국

가는 곳마다 한숨과 눈물과 피의 흔적이 가득 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선조들의 희생을 위로하듯 번영을 이룸으로서 수난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바꾸었다. 결국 대한민국의 흔적을 찾는 과정이었다. 안타까운 역사에 대한 사색이고 현재의 대한민국을 성찰하려는 것이다.

옛 흔적을 돌아볼 수록 더 많이 보이는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건국 70년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성공의 과정이었지만, 걸맞는 평가와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리더십과 애국적 헌신은 정치 권력에 눈먼 노욕으로 조롱당하고, 산업화의 번영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은 친일의 피가 흐르는 독재자로 매도당한다. 좌파 이념에 경도된 종북파 재야 연구자들의 도발적 주장처럼 보이던 반 대한민국 가치 훼손은 정규 교육 과정에 반영되는 수준으로 확산되었다.

학교 교육에서조차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대한민국의 기원을 상해임시정부에서부터 계산해야한다는 정치적 구호가 새로운 학설처럼 행세하고,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사실도 흐려지고 있다.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형세다. 수성(守成)은 공성(攻城)보다 어렵고 ‘자유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고 하는 것처럼, 건국을 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의 대한민국이 간증하듯 보여주고 있다. 건국 대한민국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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