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70주년 2만리 역사기행』③폐허가 된 김일성 유적
『건국 70주년 2만리 역사기행』③폐허가 된 김일성 유적
  • 조희문
  • 승인 2018.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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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왕조 2대의 흔적 지우려는 북한

 

이번은 『건국 70주년 2만리 역사기행』 그 세번째 이야기다.
2018년 6월 24일부터 7월 14일까지 이어진 21일간, 8,547 킬로미터, 2만리의 답사는 통한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영웅들을 추모하고 새로운 땅에서조차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동포들의 한을 되돌아보기 위한 여정이었다.
공산제국주의 만행을 찾아서 떠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100년 전쟁

코리아글로브와 역사정립연구소는 건국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스보보드니, 이르쿠쿠츠크 등 연해주 일대와. 새로운 삶을 찾아 국경을 넘어간 수많은 동포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 당했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까지 망국과 유랑의 흔적을 따라 갔다.

단지동맹비를 뒤로하며 돌아오는 길에 북한 김일성이 러시아 피난시절 잠시 살았다는 집을 들렀다. 연해주 라즈덴스키군 라즈돌리노에 읍 라조 88번지. 붉은 벽돌집 2층 왼쪽 끝방, 그곳에서 김일성이 잠시 살았고, 아들 김정일이 태어났다. 아버지 김일성이 연해주로 피신하여 소련군 하급 장교로 복무하던 19401941년 사이의 일이다. 당시 김일성은 소련 적군 제88특별저격여단(약칭 88여단)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특별한 업무를 맡지 못한 채 부대의 허드렛일을 하거나 농사 작업을 거들었다고 한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수령 동지 2대가 관련된 곳이어서 성지(聖地)로 삼을 만도 하다. 하지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수령 가문은 백두산 정기를 이어받은 백두혈통의 신성함으로 위장하는 과정에서 라즈돌리노에 거주와 출생 사실은 없는 듯 지워버렸다. 김씨 왕조의 가계를 설명하는 자료 중 그 사실을 언급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북한 권력 내부에서는 하늘같은 수령님 가문을 욕되게 할 수 없다는 충성심에서, 함부로 아는 척 했다가는 반역죄로 몰려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아예 그런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해서 말을 못하는 이유 등으로 김씨 왕조의 혈통의 진실을 바로 알리지 못하는 것일까?

김일성이 러시아로 피신했을 때 살았던 주거지 검룰, 2층 왼쪽 끝방은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1912년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군에서 김형직과 강반석 사이에서 3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김일성(김성주)은 일곱 살 때 부모를 따라 만주 길림성 무송(撫松)으로 이주한 계속 그 일대에서 자랐다. 193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김일성은 안도현(安圖縣)에서 항일유격대를 구성해 무장활동에 참여했으며, 1933년 각지의 항일유격대들이 통합해서 구성된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의 제3단 정치위원이 되었다. 1936년 동북인민혁명군이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재편되자 김일성은 제1로군(第一路軍) 소속 제2(第二軍) 6() 사장(師長)이 되었다

이 시기에 김일성은 19376월 함경남도 갑산군의 보천보(普天堡)를 공격하고 19403월에는 두만강의 지류인 홍기하(紅旗河)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일본 관동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오히려 궤멸 상태에 빠진 동북항일연군 지도부는 잔여병력을 이끌고 소련의 영토인 연해주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겼는데, 김일성도 1940년 가을 연해주로 탈출하였다.

연해주에서 동북항일연군 세력은 소련 극동군사령부 휘하의 교도여단(矯導旅團)인 제88요단으로 편입되었는데, 김일성은 이 부대의 제1대대 대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하바로브스크 근교에 주둔하면서 훈련과 교육을 받았고, 소련이 대일참전을 앞두고 조선공작단을 구성하자 단장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 김일성(김성주)은 항일 무장 독립 운동에 헌신한 김일성 장군과는 관련이 없고, 위대한 업적처럼 내세우는 보천보 전투도 실상은 부대(部隊)간 전투가 아니라 마적단이 비무장 관공서를 습격한 소규모 무력행위였다. 그나마도 김일성(김성주)의 무공이었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김일성으로 불린 여러 인물 중의 한명이 실행한 사건으로 추정하지만, 김일성(김성주)는 그것을 자신의 공적으로 위장하고, 더하여 엄청난 무공인 것처럼 조작했다.

건물의 출입구 중의 하나.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아들 김정일은 40회 생일을 두 번 지냈다. 1980, 40회 생일을 기념하면서 하바로브스크 출생으로 정리했다가 이듬해인 1981, 다시 한번 40회 생일을 기념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아버지 김일성과는 30년 터울로 맞춰졌고, 출생지도 백두산 밀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백두산의 한 봉우리에 정일봉이란 이름을 붙이고, 생가를 짓는 등 백두산과 김정일을 동일시하여 혈통적으로 우수함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김정일 이후 집권한 김정은 역시 후계체제의 정통성 명분을 '백두혈통'에서 찾고 있다. 백두혈통만이 혁명 위업의 계승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되면서 백두혈통이라는 김씨 왕조의 조작된 신화가 북한 사회를 휘감은 것이다.

진나라 시황제가 세상을 떠난 후 환관 조고가 정권을 장악한 후 자신을 추종하는 인물인지, 비판하는 적대 세력인지를 가리기 위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겼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북한의 김씨 왕조에서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사슴을 보고도 말이 맞다고 동의하면 목숨을 부지하고,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다니 감히 세상을 속이려 하느냐고 비난했다가는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김일성을 항일 무장 투쟁의 경력을, 김정일은 출생지 변조를 통해 김씨 왕조의 혈통과 권위를 왜곡하고 과장했다. 김씨 왕조의 조작된 신화를 이야기 하는 경우는 객관적인 자료를 추적하는 전문 연구자들이거나 현지 유적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되는 여행객들, 이런 저런 자료를 통해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을 들 수 있다. 요즘처럼 인터넷 정보가 넘치는 상황에서라면 김일성이 연해주에서 한때나마 살았고, 김정일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북한 주민들만 빼고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일성 주거지는, 1937년 연해주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후 빈집이 된 것을 1938년부터 소련군 장교 숙소로 이용했다고 한다. 인근 지역 택시 기사들은 김일성 집이라고 하면 주소를 보지도 않고 , 거기라면 익히 알고 있다는 듯 두말 없이 데려다 준단다. 택시기사 뿐 아니라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혈통 세탁을 해야 하는 북한 권력 입장에서는 이곳의 흔적을 지우고 싶겠지만 다른 나라라 쉽지가 않고, 그냥 두고 있는 상태에서는 점점 소문이 퍼질 수 밖에 없으니 눈에 가시처럼 여길 수 있겠거니 싶다.

붉은 벽돌조 2층 구조의 건물은 세월의 흔적을 확연히 읽을 만큼 낡기는 했지만 조금만 손보면 고풍스런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러시아 건물 대부분이 목재이거나 벽돌이지만 워낙 두꺼운 벽을 세우고 골조를 튼튼히 하다 보니 오랜 세월이 지나도 튼실하게 버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몇 가구가 살고 있지만, 김일성이 살았다는 2층 왼쪽 끝방은 폐허처럼 황량하다. 한인 교회를 중심으로 이곳을 매입하여 기념관으로 활용하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연해주 일대 한인 동포들의 한숨 섞인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내서 복원하려 하려는데 비해 북한 정권으로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가능하다면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니 같은 지역의 역사를 대하는 남북의 입장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기행 첫날은 그렇게 저물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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