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5월 19일자 2면에 실린 '바이든은 왜 문재인을 따로 만나려 할까'(왼쪽)와 '문재인-바이든 만남 무산' 기사가 실린 20일자 신문 3면. /한겨레 지면 PDF
한겨레 5월 19일자 2면에 실린 '바이든은 왜 문재인을 따로 만나려 할까'(왼쪽)와 '문재인-바이든 만남 무산' 기사가 실린 20일자 신문 3면. /한겨레 지면 PDF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과연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날 것인가? 그의 한국 방문을 둘러싼 가장 큰 얘깃거리였다. 일찍 소문이 돌았다. 사실이라면 충격이었다. 외교관례나 상식에 비추어 도저히 있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작은 야권이 퍼뜨린 소문에서부터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이 사실로 보도하면서 일이 커져버렸다. 한겨레신문은 19일 2면에 "‘현직’ 바이든은 왜 ‘전직’ 문재인을 따로 만나려 할까"라며 아예 날짜와 호텔 이름까지 밝혔다. 그냥 조심스런 추측이 아니었다. 만남을 사실로 못박은 뒤 상세한 해설까지 보탰다. "진보진영의 동맹 지지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미국이 판단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과 별도 만남을 통해 ‘대북 신호’를 보내려는 고차원 외교 행보에 나선 것이란 풀이도 있다." 대단한 의미와 가치를 주었다. 전직과의 만남을 현직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못지않은 격으로 올렸다.

그러나 하루 만에 한겨레는 꼬리를 내렸다. 20일 3면에 ‘문재인-바이든 만남 무산’이란 기사를 실었다. 워싱턴에서 이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부인했다. ‘대북특사설’도 일축했다. 이제 한겨레 인터넷판에서는 19일 기사를 찾을 수 없다.

물론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바이든이 한국 공식 일정이 끝나자마자 바로 일본으로 떠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한바탕 소동은 한겨레의 일방 보도로 끝이 나버렸다. 하루살이 가짜뉴스였다. 사실이 아니었으니 어떤 변명도 소용없다. 확인이 되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는 것은 언론의 기본이다. 정확성보다 더 중요한 보도원칙은 없다. 소문을 그냥 옮기는 것은 한겨레 같은 나름 전통 있는 신문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소설이나 다름없는 의미 부여는 더 부끄러운 일이다. 상상도 정도가 있다. 아무리 바이든도 좌파라지만 막 취임한 우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러 와서 좌파 지지를 얻겠다고 전직과 만나겠는가? 떠난 대통령과 대북정책을 논의하겠는가? 도저히 상식에 맞지 않는다. 신문의 수준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요즘 바이든의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미국에서도 난리다. 바이든이 만나길 원했다 하더라도 백악관이나 국무부가 말렸을 것이다. 가짜 보도만도 창피한 일이다. 터무니없이 과장·왜곡보도까지 했으니 언론이란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거기에다 "사정에 밝은 복수의 고위 외교 소식통"이 취재원이라고 했다. 툭하면 익명의 취재원을 끌어대는 것은 기자들의 나쁜 버릇이다.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기자들은 변명한다. 국가기밀이 많은 특성상 외교안보 보도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정에 밝은 복수의 고위 외교 소식통"은 무엇인가? 희한한 익명 취재원이다. ‘외교 소식통’만 해도 충분한데 필요없는 수식어가 세 개나 달렸다. 애써 기사를 "믿어달라"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자신이 없는 기사를 왜 쓰는가?

두 사람은 만난 것이 아니라 전화 대화를 가졌다. 한겨레는 전화에 관한 정보를 듣고서 만날 것으로 섣부르게 오판했을 수 있다. 언론은 아무리 사소한 사실이라도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야 한다. 전·현직 국가원수의 만남이라면 신중하고 또 신중한 보도를 했어야 했다.

한겨레는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을까?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면서. 창간 주주이며 이념 동지인 문 전 대통령을 띄워주려는 의도인가? 아무튼 이번 보도가 한겨레 명예에 끼친 해는 너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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