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장석광

‘C’ ‘얼굴 없는 남자(Man without a face)’ ‘피의 지나(Gina)’ ‘공포의 이세르(Isser the Terrible).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의 제목이 아니다.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스파이 마스터들의 위대한 별명이다.

007 시리즈를 보면 영국 해외정보국(SIS) 국장은 항상 ‘M‘이라는 이니셜로 불린다. 그러나 실제에서는 M이 아니고 ‘C’로 불린다. 초대 국장 맨스필드 조지 커밍(Mansfield George Cumming)은 자기에게 온 모든 문서에 언제나 자기 성(姓)의 이니셜인 ’C‘로 서명을 했다. 후임 국장도 익명성을 유지하고 전임자를 존경한다는 의미로 ‘C’ 서명을 이어갔다.

이런 관례는 전임 ‘C’에서 후임 ‘C’로 계속 이어졌고, SIS 국장은 ‘C’라고 불리는 전통이 세워졌다. SIS를 배경으로 한 존 르 카레(John Le Carre)의 첩보소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국장이 컨트롤(Control)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니셜 ‘C’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르쿠스 볼프(Markus Wolf)는 34년간 동독 해외정보국(HVA) 국장으로 활동하면서 4000여명의 스파이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로미오 공작(美男計)’ 등 기상천외한 스파이 기법을 개발해 나토 본부와 서독 수상 비서실에까지 스파이를 침투시켰다. ‘스파이의 대부’로 명성을 떨쳤지만 서방 정보기관은 그와 관련된 정보가 없었다.

장군으로 진급되었다거나 당(黨)에서 생일을 축하했다는 기사 외엔 동독의 어떤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그의 사진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서방 세계는 그를 ‘얼굴 없는 남자(Man without a face)’로 부르기 시작했다. 시사주간지 ‘USA & 월드 리포트’는 냉전시대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정보기관으로 볼프의 HVA를 선정했다.

2018년 3월, 30년 베테랑 공작관 지나 해스펠(Gina Haspel)이 CIA 국장으로 지명되었다. 상원은 해스펠의 CIA 비밀감옥 책임자 전력을 문제 삼았다. 감옥에는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 테러 용의자들이 수감되어 있었고, 당시 합법적 방법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문으로 여겼던 워터보딩(Water Boarding) 같은 심문 기술이 사용되고 있었다.

공화당의 수잔 콜린스 의원이 해스펠에게, 트럼프가 지시하면 워터보딩을 다시 사용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해스펠은 "대통령이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지만, 거절할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운 일도 마다않아서 ‘피의 지나(Bloody Gina)’로 불렸던 해스팰은 2021년 1월까지 CIA 최초 여성 국장으로 재직했다.

이세르 하렐(Isser Harel)은 유대인 민병대 첩보조직 샤이(Shai)를 이끌면서 반유대 세력들에 대한 테러를 서슴지 않았다. 150센티 단신이지만 변칙적인 공작기법에 능하고 일처리가 과감하고 다부졌다. 따르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만큼 적도 많았다.

사람들은 그를 ‘공포의 이세르(Isser the Terrible)’로 불렀다. 이스라엘 건국 후 국내 보안정보기관 신벳(shin bet)을 창설했고, 1952년에는 모사드(Mossad) 국장도 겸직했다. 1961년 유대인 학살 전범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압송해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 후 처형시켰다. 모사드가 일약 세계적 첩보기관의 반열에 오르면서 하렐은 모사드의 전설이 되었다.

스파이 마스터의 위대한 별명은 정보기관의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지난 정부 어느 스파이 마스터의 별명이 불현 듯 머리를 스친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스파이 마스터는 어떤 별명을 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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