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된 반공포로 포섭 당조직 재건... 『대남공작사』
석방된 반공포로 포섭 당조직 재건... 『대남공작사』
  • 유진
  • 승인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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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휴전 무렵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은 전멸했다. 하지만 북한은 도시와 농촌에 잔존하는 당 조직과 개별적인 당원들을 재수습하는 공작에서는 일정정도 성공했다. 당시 도시와 농촌에 잔존해있는 당 조직과 당원 수습 및 재연계 공작은 중앙당 연락부 조직공작 제1부문이 담당하고 있었다.

연락부는 도시와 농촌에 잔존해있는 당조직과 당원들에 대한 수습 및 재연계 공작을 위해 먼저 남한지역에서 시ㆍ군당 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을 역임하다 입북한 간부들을 대상으로 해당 지역의 조직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기초자료 조사 작업부터 진행했다.  

그 다음 조사한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연계수습 및 재건공작 대상을 선정하고 이들에 대한 공작을 기존 남로당 조직에서 간부로 활동했던 인물들에게 맡겼다. 물론 남로당 활동 과정에 박헌영ㆍ이승엽 등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인물, 실무능력까지 갖춘 인물들을 공작원으로 선발했다.

공작원으로 선발된 대상들은 6개월~1년 동안 대남침투와 관련된 훈련과 함께 지하당공작을 위한 각종 실무교육을 받은 후 파견되었다. 이렇게 남파된 공작원들은 공작지역에 잠입한 후 혈연과 지연 등 이러저러한 연고관계를 활용해 엄호거점을 마련하고 취업과 장사 등을 통해 사회적인 합법을 얻은 다음 당원들을 탐색 연계하여 조직을 재건했다.

남광주에 위치한 중앙포로수용소

◇빨치산 간부, 남광주 수용소 있다 석방된 사실에 주목

특히 연락부는 전라남도 지역의 간부 및 당원들이 대량으로 지리산에 입산하여 유격대에 참가했다가 많은 사람들이 사살되기도 했지만 수백 명의 간부 및 당원들이 남광주 임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그 일부가 석방되었다는 소식에 주목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남광주 임시수용소를 방문한 후 정부의 관대한 조치로 수감자들이 시말서만 쓰고 석방된 바 있다. 이때 석방된 수감자들 가운데는 남로당 전라남도 당간부 일부도 있었다. 북한은 이들은 석방된 후 광주와 목포에서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들을 연계 수습하여 조직을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북한 노동당 연락부는 이를 위해 먼저 전쟁 시기에 북한으로 들어온 전남도당 간부출신 인물들을 공작원으로 선발해 남파시키기로 하고 물색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 전쟁 전에 전남도당 부부장을 역임하다 북한으로 들어와 평남도 순천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안용규를 적임자로 지목하고 공작원으로 선발했다.

공작원으로 선발된 안용규는 6개월 동안 연락부 초대소에서 생활하면서 침투훈련과 함께 정치사상교육 및 지하당조직 재건을 위한 실무교육 등을 받았다.

연락부는 공작임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 및 훈련 과정을 이수한 안용규에게 지리산에서 하산해 생활하고 있는 간부 및 당원들을 물색해 연계한 다음 철저한 심사를 거쳐 당원으로 재등록하는 방식으로 당조직을 재건하라는 공작임무를 내렸다. 이러한 공작임무를 받은 안용규는 안내원들의 안내를 받아 1954년 3월 말 전라북도 고창 해안을 통해 침투했다.

침투 후 안용규는 광주와 목포 등을 오가며 동생을 비롯한 연고자들과 접촉하는 과정에 자신의 처가 부산에서 큰 공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동생의 엄호 하에 부산의 처를 만나 안전하게 잠복하는데 성공하였다.

전쟁시절 부산 국제시장

◇안용규, 부산의 아내 만나 거점 마련

안전한 엄호거점을 확보한 안용규는 주변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게 활동하기 위해 자신을 처의 인척으로 위장한 다음 수염을 많이 기르고 안 쓰던 안경도 쓰고 헤어스타일을 달리하는 등 변장을 하였다. 그런 다음 처의 엄호와 친조카의 안내를 받으면서 광주와 목포, 서울 등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구 남로당 전남도당 관계자들을 물색 조사한 후 접촉 및 접선을 시도하였다.

남로당 관계자들을 찾아내면 먼저 해당 인물의 거처를 확인한 다음 아무도 모르게 밤에 불시 방문하여 자신을 소개하고 면담을 한 후 헤어지면서 다음 접선장소와 시간을 지정해주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접선할 때는 한두 번 안전 확인을 거친 후 이상이 없다는 확신이 설 경우에 접선을 실현하고 접선 후에는 그 동안의 활동결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청취하는 방법으로 자격을 심사하고 당원으로 재등록하는 방법으로 공작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전남도당 간부였던 정태묵과 이추철 등에 대한 공작에 성공하였으며, 그 결과는 무인포스트를 통해 연락부에 보고했다.

이렇게 재수습 공작을 추진하던 안용규는 처의 인척이라며 장사를 돌봐주고 있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주변사람들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경찰서에서 취조 받던 중 2층에서 거꾸로 뛰어내려 자결했다.

이에 따라 그가 접선 연계했던 관계자들은 북한과의 연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용규가 연계 수습했던 정태묵은 1964년 여름 북한 공작지도부가 또 다른 남로당 전남도당 간부였던 최영도를 포섭하는데 성공한 뒤 그의 주선으로 다시 북한과 연계되었다. 정태묵과 관련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려고 한다. 안용규 뿐만 아니라 동일한 임무를 받고 남파된 공작원들도 지하당조직 재건활동을 하다 검거되었다.

장성탄광 옛모습
장성탄광 옛모습

◇전라북도에 침투한 노장환

전라북도 당간부 출신인 노장환은 잔존간부 및 당원들을 연계 수습하라는 임무를 받고 1953년 3월 경 전북 부안 해안으로 침투해 전주에 잠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노장환은 2년 동안 혈육인 동생의 비호를 받으면서 서울과 광주 등을 전전하며 전북도 당조직 재건을 위한 공작과 함께 정당 내 거점 확보를 위한 공작을 진행하다가 주변 사람들의 신고로 1955년 2월에 체포되었다.

경남도당 출신의 공작원 강영동은 경남도 내 잔존 간부들과 당원들을 연계 수습하여 재등록하라는 임무를 받고 1957년 9월 경 경북 감포 해안으로 침투한 후 부산에 잠입해 형의 엄호를 받으면서 당조직 재건공작을 하다가 1960년 8월에 체포되었다.

또 다른 경북도당 간부 출신의 천경석은 1955년 2월에 경북 영해 해안으로 침투하여 경북 영양에 살고 있던 형의 엄호 하에 강원도 삼척의 장성탄광에 탄부로 취업한 다음 탄부들 가운데 잠입해있던 구 조직 관계자들을 탐색 및 심사하여 당원으로 재등록 하는 등 활동하다가 1960년 7월 경 중앙당에서 파견된 지도연락공작원이 먼저 체포되어 노출되는 바람에 체포되었다.

이와 같이 검거됨으로써 공작에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노출되지 않고 끝까지 공작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간 공작원들도 적지 않게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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