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호수, 가장 깊은 ‘바다’ 『건국 70주년 2만리 역사기행』⑦
바이칼호수, 가장 깊은 ‘바다’ 『건국 70주년 2만리 역사기행』⑦
  • 조희문 평론가
  • 승인 2018.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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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水金 연재 역사 기행

한민족의 시원(始原) 전설 어린 聖地

코리아글로브와 역사정립연구소는 건국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스보보드니, 이르쿠쿠츠크 등 연해주 일대와. 새로운 삶을 찾아 국경을 넘어간 수많은 동포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 당했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까지 망국과 유랑의 흔적을 따라 갔다.
 

조희문, 그는 누구인가?

조희문은 좌파일색인 한국 영화계에서 거의 유일한 우파 영화 평론가(영화학 박사)다.

경인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상명대 영화전공 교수,

인하대 영극영화과 교수,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한국영화학회 회장 등 평생을 영화 관련 평론과 학술사업에 종사했다.

최근에는 좌파와의 역사문화전쟁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동에서 서로 달리면 이르쿠츠크 못미쳐서 세계 최고의 호수인 바이칼호가 나온다/사진=조희문

이르쿠츠크를 향해 다시 시베리아 횡단에 올랐다. 스보보드니 역에서 1020분에 출발하는 기차다. 다음 목적지까지 노정은 50시간. 기차에서 만 이틀하고도 2시간을 지내야 한다, 러시아 역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개념은 도무지 없는 것 같다.

안내 방송은 들어본 기억이 없고(하더라도 러시아어 만으로 하는 탓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지만), 짐 들고 다니는 승객이 적지 않을 터인데도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본 적이 없다. 스보보드니 역사에 숙소를 정했을 때도 3층 계단을 들고 내려야 했고,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했을 때도 수십 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다.

바이칼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방목소/사진=조희문

이르쿠츠크에 숙소를 정한 뒤 다음날 바이칼 호수를 찾았다. 기차가 이르쿠츠크로 진입하는 동안에도 상당한 구간을 바이칼 호수가 차창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직접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다. 아침 나절에 출발한 버스는 25인승. 우리 일행만으로도 가득 찼다.(우리 생각으로는).

그런데 배낭족 폴란드 백인청년 한명이 나타나더니 같이 버스를 타야겠다고 한다. 자리가 가득 찼다고 했는데도, 요금을 냈으니 타야겠다고 버틴다. 운전기사도 태워야 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알고 보니 바이칼로 가는 버스는 승객을 기어코 좌석수만큼 다 채워서야 떠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이제 남은 좌석이 없으니 이제는 곧장 바이칼로 출발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출발한지 10-20 분 정도 되었을까. 곧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 차를 대더니 마냥 기다린다. 뭐하는 거냐 물었더니 손님을 더 기다린다는 것이다. 좌석이 다 찼는데, 무슨 손님이냐 했더니 보조석 4자리가 아직 남았다는 사인을 했다. 본 좌석 옆에 접었다 폈다할 수 있는 보조의자 4석이 있었는데, 설마 거기까지 승객을 태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비슷한 차들이 여러 대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이칼 호수로 가는 여행객들이 모이는 장소 같았다.

운전기사가 버스 지붕 위로 짐을 올리고 있다/사진=조희문

한참을 기다렸더니 러시아 아주머니 한분이 표 구매를 한 것 같았고, 젊은 아가씨들로 보이는 3명의 일행이 버스 옆으로 모인다. 그러더니 짐은 지붕 짐칸에 올리고 차안으로 올라온다. 일반 좌석이든 보조 좌석이든 빈자리 하나 없이 통로까지 꽉 채웠다.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다. 버스 기사는 이제야 자리를 다 채웠네라는 듯 만족한 표정을 짓고, 빈자리를 겨우 비비며 탄 승객들도 여기서는 늘 있는 일인데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기다린 시간이 30분 정도 였을 터인데도 몇 시간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때서야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오후 4시 쯤 목적지에 닿았다. 옴짝 달싹하지 못하는 처지로 6시간 정도를 달린 셈이다. 일행의 목적지는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섬 알혼이다. 섬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거제도 면적의 두 배쯤이라고 하니 크기가 만만치 않다.

바이칼호를 오가는 유람선/사진=조희문

세계에서 가장 넓은 호수는 카스피 호수이고, 바이칼은 가장 깊은 호수로 꼽힌다. 바이칼은 담수호 중 크기로는 세계 7번째이지만 깊이가 깊은 탓에 세계 담수호 전체의 5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한다. 호수는 길이 630km에 폭은 20~80km, 둘레는 2,000km에 이른다. 면적은 한반도의 3분의 1과 맞먹는다.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1,630m에 이른다고 한다.

섬에 정착한 부족 중 하나가 부리야트 족이다. ‘바이칼호의 이름도 부리야트 족 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바이() () 즉 큰 물이라는 뜻이란다. 바다처럼 넓고 초원과 숲이 어우러지며,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힘들 정도로 오지에 자리 잡은 탓에 바이칼 주변에는 신화나 전설의 흔적이 많다. 부리야트 족이 신성한 장소로 숭상하였다는 부르한 바위(shaman rock)는 지금도 그 흔적이 뚜렷하다.

바이칼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기원석/사진=조희문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형제바위라고도 부르는데, 호수와 맞닿은 곳에 자리 잡은 위용의 압도감이 강렬하다. 그곳에 이르는 언덕에는 부적 같은 천 장식을 단 기둥이 여러 개 서있다. 옛날 우리의 성황당 같은 것이 바닥에 동전이 쌓이듯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저 마다의 주문을 던져놓은 것이리라.

민속학이나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 중에는 부리야트 족이 한민족의 원류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유전적으로 흡사한데다, 생활, 문화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래 동화로 널리 알려진 나무꾼과 선녀’, ‘콩쥐팥쥐’ ‘심청전같은 이야기들이 부리야트 족 신화 속에도 나타난다고 한다. 백두산의 옛 이름 중의 하나가 불함산(不咸山)이다. ‘조화를 부리는 흰 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화산이 분출하고 화산재가 쌓이면서 흰 산처럼 보인 것에서 유래하지 않았나 싶다. ‘

바이칼호 부르한 바위 주변에 있는 기원목/사진=조희문

백두산이란 이름도 봉우리가 흰 산 이라는 뜻이니 불함산이나 백두산의 뜻은 명칭만 다를 뿐 의미는 통하는 셈이다. 그래서 바이칼의 부르한 바위는 불함과 같은 뜻이 아니겠느냐며 그 연관성을 짚어내기도 한다. 부리야트 족이 한민족과 연관이 있다면 바이칼은 우리 조상의 시원(始原)괴 연결되는 곳이 되는 셈이다.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한민족이 북방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무작정 부정할 수만도 없어 보인다.

마냥 투명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바이칼이지만, 스탈린 시절에는 한때 정치범 수용소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수용자들은 바이칼 특산 어종(魚種)인 오물(omul)을 잡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그때 배들이 정박했던 부두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바이칼호 부르한 바위 주변에 있는 기원목/사진=조희문

한인(고려인)과 관련된 이야기도 전하는데, 1937,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열차 20량 정도가 탈선하여 바이칼 호에 빠지는 사고로 수백 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사건은 철저히 통제되어 비밀에 부쳐졌다가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무너진 이후에야 알려진 것으로 전한다.

바이칼의 물은 차다. 여러 곳에서 온천이 솟는다고 하지만 우리 일행은 온천을 보지는 못했다. 부두 흔적 한켠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물 얕은 곳에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그 곳에 앉아 사진을 찍으라는 포토존 같았다.

바이칼호 알혼섬에서 유목민들이 홍보시실로 쓰고 있는 게르/사진=조희문

그곳에 포즈를 잡겠다며 들어간 사람마다 비명을 지른다. 물이 너무도 차갑기 때문이다. 얼음물을 그대로 쏟아 놓은 듯 빌을 담그자 마자 바늘 같은 냉기가 확 밀려온다. 으 아아!!

알혼 섬 안에는 포장도로가 없다. 어디를 가더라도 흙길 그대로다. 울퉁불퉁 파인 흔적도 많아 차가 달릴 때면 이리저리 흔들린다. 차체가 낮은 차들은 엄두도 못낼 일이지만, 투박하게 생긴 러시아제 지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높인다. 불편한 시각으로 보면 이게 뭔가 싶기도 하지만, 거친 자연을 즐기겠다는 입장에서 보면 오프 로드(off road)의 천국이다. 바이칼의 벌판과 숲은 문명으로 포장(鋪裝)되지 않은 야성 그 자체였다. 풍광보다 그것이 더 빛나보였다.

바이칼호 알혼섬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사진=조희문

알혼 섬에서 사흘째 아침, 아침을 마친 일행은 행장을 꾸려 다시 버스에 올랐다. 되돌아가는 길에 남쪽 코스를 둘러보았다. 어디를 가든 절경이다. 햇볕은 따가우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공기, 드높게 보이는 하늘,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 알혼은 언젠가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다.

버스 운전기사들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사진=조희문

다행히(?) 돌아오는 버스에는 다른 승객이 타지 않았다. 기다려서 태울 손님을 찾기 어려운 탓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왜 그냥 가느냐며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갈 때와 같은 크기의 버스였지만 돌아오는 길은 한결 여유로웠다.

rsfnew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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