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캠프 찾아 진료·의약품 전달...우크라와 의료교류 협약
“전쟁 끝나는대로 다시 긴급지원·의료시설재건 참여할 것”

그린닥터스 의료지원단의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 봉사 활동 모습. /그린닥터스
그린닥터스 의료지원단의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 봉사 활동 모습. /그린닥터스

“13일 오전 캠프에 진료실을 차리자마자 난민들이 물밀듯 몰려 왔다. 어르신들보다는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많았다. 진료실을 찾아온 난민들은 주로 두통을 호소했다. 어깨는 잔뜩 뭉쳐져 있었고, 불편한 임시시설에서 오래 생활한 탓인지 목이 많이 아프다며 물리치료를 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전쟁 스트레스가 심한 듯했다. 한 중년 남자는 먼 거리 피난 중에 다리를 다쳐 엄청나게 부어 있는데도 제때 치료를 못한 채 방치되고 있어 안타까웠다.”

지난 20일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서 8박 9일간의 긴급 의료지원활동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한 긴급의료구호단체 그린닥터스 의료지원단(단장 김동헌 온종합병원 병원장)은 이같이 현지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지난 12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그린닥터스는 현지 우리나라 대기업 주재원과 선교단체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시우 등에 설치돼 있는 난민캠프에서 러시아의 침공으로 조국을 떠나 폴란드로 피란 온 우크라이나 난민 수백 명을 진료했다. 이들은 또 폴란드 출국 전 한국서 가져간 안경과 치료제 등 의약품 1억원 어치를 우크라이나에 구호물품으로 전달했다.

◇“피란길에 나섰던 우크라 국민들, 아버지·남편 만나기 위해 조국으로 다시 들어가”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모습. /그린닥터스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의 모습. /그린닥터스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몹시 우울한 상태였다. 우울증 원인은 형제나 아버지 등 가족들이 여전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어 생긴 공포와 불안감 때문으로 보였다.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번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러시아의 비인도적인 전쟁을 비난했다.”

그린닥터스는 14일에는 우크라이나 서쪽 도시 르비우와 인접해 있는 폴란드 프셰미시우 난민캠프를 찾아갔다. 그곳은 피난민들이 가장 많은 곳이지만 서방국가의 우크라이나 지원무기가 들어온다는 이유로 러시군의 미사일공격이 집중되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지역에 인접해 있는 프셰미시우 난민캠프는 전쟁 초기 하루 2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이 몰려왔으나, 우리가 방문했을 때 하루 2만여 명이 생활하고 있었다”며 “되레 피란길에 나섰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전쟁으로 흩어져야 했던 아버지, 남편 등을 만나기 위해 조국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임시 출입국관리소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풀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도로에는 차량들이 끝없이 줄을 잇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린닥터스는 시장통에서 좌판을 깔 듯 즉석에서 진료대를 갖춰서 안과, 외과 등 진료활동을 벌였다. 의사들이 진료하는 동안 다른 봉사단원들은 미리 마련해간 응급의료키트를 난민들에게 나눠줬다. 부산은행과 KH그룹, 국민은행, 온병원그룹 등의 후원금으로 마련한 응급의료 키트에는 타이레놀 등 진통해열제, 소화제, 파스, 압박붕대 등 웬만한 가정상비약들이 다 들어 있어 비상시 난민들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간식받고 환호성 올리는 아이들에게서 잠시 전쟁의 트라우마는 사라진 듯했다”

현지 봉사 모습. /그린닥터스
현지 봉사 모습. /그린닥터스

16일에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개방된 폴란드 마조프셰주 바르샤바시의 PTAK 엑스포센터를 방문했다. 2015년 개장한 이 센터는 실내전시면적이 143,000㎡로, 우리나라 고양시 킨텍스(KINTEX 108,556㎡)의 1.3배다. 폴란드 정부는 이곳에 1만 개의 침상을 준비해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임시거처로 제공하고 있다. 난민들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의 프셰미시우 난민캠프처럼 이곳에서 잠시 머문 뒤 독일, 프랑스 등으로 가거나, 폴란드에 남을지를 결정한다. 현재 폴란드는 수십 곳에 난민캠프를 설치하는 등 유럽 국가들 중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가장 호의적이다.

그린닥터스는 의료지원을 위해 엑스포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단 지원단 일행을 발견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두 팔을 번쩍 들어 환영했다. 아이들은 얼굴 가득 웃음 띤 모습으로 지원단이 준비해간 가정상비약 응급의료키트와 간식을 받으려고 줄지어 섰다. 과자를 받아든 아이들은 연신 그린닥터스 대원들에게 고개 숙이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곁에서 선물을 받아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도 모처럼 수심이 사라진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관계자는 “간식을 하나씩 받아들자마자 기쁨에 환호성을 올리는 아이들에게서 잠시 전쟁의 트라우마는 사라진 듯했다”며 “뒷줄에 서 있던 큰 아이들은 행여 제몫이 없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린닥터스 의료진은 엑스포 내 설치된 의료캠프에서 현지 의료진과 함께 미팅을 갖고 환담을 나눴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은 국경지역에 비해 의약품 공급은 잘 이뤄지고 있었다. 전쟁 피난민들이어서 그런지 건강 상태는 심리적인 불안증세 등을 주로 호소한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그린닥터스 오무영 온종합병원 센터장과 임세영 전 개성병원장이 현지 폴란드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감기나 소화불량, 피부 질환 등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돌봐줬다.

◇“전쟁 끝나는대로 대규모 의료지원단 꾸려 긴급지원과 의료시설 재건 참여할 것”

의료교류 협약을 맺고 있는 그린닥터스.  /그린닥터스
의료교류 협약을 맺고 있는 그린닥터스.  /그린닥터스

지원단 일행은 난민 진료봉사뿐만 아니라 13일 저녁 폴란드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우크라이나 대사 등을 접견하고 ‘한국-우크라이나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주 폴란드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은 “우리는 도움이 절실하고, 특히 건설과 의료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며 “원래 국가 간 교류 지원문제는 정부 조직에서 담당해야 하지만, 지금은 전시상황이라 주재국 대사관에서 외교적 루트로 지원 방안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봉사를 모두 마치고 귀국한 그린닥터스 이사장 정근 장로는 “전쟁이 끝나는 대로 그린닥터스는 부산의료발전협회 등과 함께 다시 대규모 의료지원단을 꾸려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긴급 의료지원은 물론 러시아의 폭격으로 파괴된 의료시설 재건에 참여하고, 의료버스를 지원하는 문제 등을 우크라이나 정부나 관련 NGO 등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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