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1946~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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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는 순우리말이다. 어원에 대한 여러 설 가운데 메밀(穀)로 면을 만들어 김칫국물(水)에 담그먹는다는 뜻의 곡수(穀水)가 국수로 바뀌었다는 게 설득력 있어 보인다. 우리민족에게 국수하면 곧 잔치국수다. 국수는 잔칫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별식이었다. 지금은 점심을 간단히 때우는 음식이지만 옛날에는 귀한 음식이었다. 국수가 잔칫집 대표음식이 된 건 긴 면발이 장수(長壽)를 상징한 탓이다. 어쨌거나 국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멸치육수와 김치고명이다.

시인이 불현듯 국수가 먹고 싶었던 것은 매일 먹는 밥이 물려서가 아니다.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는 밋밋한 일상이 그만 물려 버린 것이다. 어떤 시인처럼 "세상의 모든 슬픈 일은 다 나에게로 오라" 하고 호기롭게 말하는 대신 고향의 장터를 조용히 떠올린다. 그곳에는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있고, ‘뒷모습이 허전한 소를 팔아버린 사람’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날 불현듯 밥 대신 국수가 먹고 싶었던 것은, 도시에서 별 문제 없이 밋밋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장된 감정이나 공감의 말보다 그들의 넋두리를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것 또한 시인의 책무라면 책무일 것이다. 눈을 감고 ‘고향 장터거리’를 떠올리는 것도 좋지만, 재래시장으로 발품을 팔아 잔치국수를 먹고 막걸리 한잔 걸쳐도 좋으리라. 거기 옆자리 앉아 홀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사람 또한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쳤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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