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김세원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서 열린, 5·18 광주 민주화운동 중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8년말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공개됐다. 짙은 서정성에다 비장미를 갖춘 이노래는 그이후 5·18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6.29선언 이전까지 대학가와 노동현장의 민주화운동 관련 집회와 시위에는 어김없이 이 노래가 등장했다.

1997년 김영삼정부가 5·18을 기념일로 제정하면서 이 노래는 정부가 주관하는 5·18 기념식에서 제창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노래는 진영 갈등의 불씨가 됐다.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이 노래를 식순에서 제외시키고 식전 행사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방식으로 바꾸자 5·18단체와 유족들이 반발해 기념식이 별개로 열리기도 했다. 2011년부터는 다시 본 행사에 포함됐으나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만 부르는 방식으로 변경돼 논란이 됐다. 그러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 노래가 다시 제창으로 불려졌다.

그런데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참모진과 장관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국회의원 전원과 함께 기념식에 참석해 이 노래를 제창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첨예한 대립이 끊이지 않았던 이 노래가 마침내 여야 정치권을 하나로 묶으며 통합의 상징이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 낸 오월의 정신은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고 밝혔듯이 5·18은 진영을 넘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기본질서에 동의하는 우리 모두의 정치적 자산이다. 그동안 진보진영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5·18을 사유화해 권력 쟁취에 활용해 왔다. 윤 대통령은 이 노래 속의 ‘임’이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임’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홍콩과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불려지고 있는 이 노래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추구하는 세계 시민과의 연대의 불씨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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