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왼쪽)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 영화 '브로커'로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가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왼쪽)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 영화 '브로커'로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가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

2022년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각각 감독상·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한국영화계는 세계 3대 영화제(베니스·베를린·칸)에서 빠짐 없이 주요 수상자를 낸 셈이다(김기덕·홍상수·박찬욱·봉준호 감독 등). 김기덕 감독은 3대 영화제 경쟁부문 모두 본상 획득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이번 칸 영화제 수상 소식은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재확인시켜 준 경사일 뿐 아니라, 우리 근·현대 문화사 전체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서양인에 의한 촬영·상영(1901년 ‘한양의 풍경’), 조선 최초의 영화관 설립(1912년 우미관), 최초의 국산 활동사진(1919년 ‘의리적 구토’)을 거쳐 한국 최초의 영화 ‘월하의 맹서’(1923)가 나왔다(이 영화를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한 10월 27일을 ‘한국 영화의 날’로 기념한다). 1925년 들어 나운규 같은 선구자를 배출하지만, 영화다운 영화(유성영화)의 국내 제작은 해방 이후의 일이었다. 짧은 역사 속에 달성한 눈부신 성공이다.

인류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가 ‘호모 루덴스’(놀이의 인간), 그 한가운데 ‘이야기’(다른 말로 서사·내러티브)의 즐거움이 있다. 감성·논리의 발전 역시 동력의 중심은 ‘이야기의 힘’이었다. 신·구약성서·불경, 각종 우화·잠언 등 인류사의 주요 기록이 교훈·재미를 겸비한 ‘이야기’인 이유다. 문명권 저마다 ‘이야기의 전통’을 가지지만, 오늘날 ‘문학’이라 칭하는 형태의 예술은 근대 이후의 현상이다. 근대자본주의·인쇄술의 발달, 소수 특권층 이외 ‘익명 다수의 독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당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오락, 나아가 고급 예술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윽고 대표 서사 장르는 ‘문학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변천한다. ‘움직이는 그림’(활동사진)의 출현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근대적 기술문명이 만들어 낸 ‘움직이는 그림’의 세계는 일정 길이의 시간에 한 장소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게 한다. 전통적 독서·강창(講唱 :설명+노래)과 전혀 다른 차원의 체험이다. 활동사진이 점차 영화로, 무성에서 유성영화로 발전해 대중오락인 동시에 예술의 한 부문으로 자리잡는다. 영화의 보편화는 그 사회의 근대화 정도와 비례하는데, 중국·인도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유구한 ‘이야기의 전통’을 가지지만, 최대 국가목표가 ‘문맹률 해소’일 땐 문학보다 영화 쪽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곤 한다. 특히 ‘인구 대국’에겐 그게 효과적이다.

보통 ‘국어’라 할 만한 동일 언어의 출판물을 통해 ‘국민 의식’을 형성해 나가듯, 영화 또한 ‘국민적 공동체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요 매개체 노릇을 한다. ‘국민’이 이미 만들어진 나라라면, ‘시장의 주역’(=시민)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전 세계인에게 익숙한 헐리우드의 명화들이 193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반면, 나라마다 주요 국산 영화들이 등장하는 시기는 그래서 다 다르다. 서사의 전통과 기술문명, 자유로운 상상력 등이 보장된 사회여야 비로소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줄 만한 영화가 등장한다.

21세기 최고 부가가치의 콘텐츠는 ‘이야기’다. 참신한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를 보편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능력이야말로 그 나라의 문화적 저력이다. 대한민국 영상 콘텐츠의 세계적 인기란 우리사회의 모든 잠재 요소들이 어우러져 결정적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문학’이든 ‘영화’든 걸작의 근저엔 특유의 ‘역사적 체험’과 그것을 ‘승화시키는 문화 역량’이 존재한다. 다만 정치적 배려가 작용하기도 하는 노벨문학상에 비해, 영화는 더 객관적이며 냉혹한 평가 조건 하에 놓인다. ‘관객’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게 ‘영화제’다. 영화제에서 빛나는 한국영화 존재감이 그래서 여러모로 한층 뜻깊다.

세계적 패션잡지 ‘Vogue’가 주목한 2022년 칸 영화제 아시안 베스트 드레서 20명 중 3명이 한국배우들이다: 각각 조재현 디자이너의 작품과 생로랑 드레스를 입은 아이유(왼쪽)와 이주영. 오른쪽은 강동원.
세계적 패션잡지 ‘Vogue’가 주목한 2022년 칸 영화제 아시안 베스트 드레서 20명 중 3명이 한국배우들이다: 각각 조재현 디자이너의 작품과 생로랑 드레스를 입은 아이유(왼쪽)와 이주영. 오른쪽은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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