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브는 각성을 각성은 잠재력을 일깨워... 교단일기
모티브는 각성을 각성은 잠재력을 일깨워... 교단일기
  • 최성재
  • 승인 2018.09.0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떤 계기로 학생이 스스로 각성(覺醒)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의 잠재력을 무궁무진 발휘한다.

 

“선생님, 제 박사 학위 논문입니다.”

<Regulation of Midline Axon Guidance by a Novel Translation Inhibitor Krasavietz(Kra) in the Drosophila Embryo(*)>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명과학부 이성수

(*구글링(googling)하면 이 논문이 뜬다. 인용 55회.)

영문 논문이었는데, 초록(抄錄)이 국문으로 쓰여 있었다.

<초파리 배아에서 번역 저해인자인 Krasavietz(Kra)에 의한 중심선 축삭돌기 유도의 조절>

영문으로 봐도, 우리말로 봐도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초록을 자세히 읽어 봤더니, DNA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RNA 관련 연구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때마침 mRNA는 그즈음 나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이것저것 읽고 있던 중이었다.

RNA는 단지 DNA의 유전정보를 번역해서 그대로 전사(轉寫)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인자를 발현시키느냐 발현시키지 않느냐, 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담당하기 때문에, 한 생물 개체로서는 실은 이게 더 중요하다. 인간 유전체(genome) 해독으로 이제 생명의 신비는 다 풀렸다고 하는 순간, 그건 겨우 시작일 뿐 생물학에서 다시 무한한 미지의 세계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제자 이성수 박사가 유전정보 번역에 관계하는 단백질 Krasavietz의 기제(mechanism)를 분자 차원에서 밝혀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2007년 2월 어느 해외 학술지에 실렸는지는 모르나, 그것을 알아본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으로 연 5만 불인가, 6만 불을 주면서 3년간 이 박사를 초빙했다고 한다. 연장도 얼마든지 가능한 조건으로! 국내에서 연구하고 싶었지만, 논문을 제대로 알아보는 연구소가 없어서 일단 스탠퍼드대로 연구하러 간다고 했다.

미국에서 바로 영주권도 주고 원하면 시민권도 곧 준다고 했지만, 애오라지 애국심으로 영주권은 몰라도 시민권은 줘도 안 받겠다며, 여건이 되면 꼭, 쏜살같이 국내로 돌아오겠다며, 성수는 씩 웃었다.

성수는 중1 때 내가 담임했던 학생이다. 같은 반의 형준과 어찌 수소문해서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찾아왔다. 가산중학교는 코카콜라 회사와 앞뒷집 사이로, 강서여중이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가리봉동 + 독산동>에서 한 자씩 따와서 약간 촌스럽게 개명한 학교다. 한 학년에 17학급에서 18학급이나 되는 거대 학교였다. 당시 한 학급은 60명 내외였다.

나는 중학교 근무 경력이 가산중학교 2년밖에 없다. 첫 해에 성수와, 현재 작은 회사 사장인 형준의 담임을 맡았다. 당시 반장은 광태였다. 광태 어머니는 정이 많아, 그해 5월에 결혼한 우리 부부에게 부끄러워하는 말씨에 측은한 눈길과 따뜻한 손길로 김치를 담가 주기도 하는 등 참 살갑게 대해 주었다. 집안 형수님 같은 분이었다. 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가슴이 마냥 훈훈해진다.

공부는 현재 모 대기업에 근무하는 광태가 제일 잘했지만, 내가 어느 날 즉흥적으로 ‘누구든 전교 1등하면 상품으로 나이키 운동화를 주겠다’고 했더니, 머리 좋은 형준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더니, 1학기말 정기고사에선가, 모의고사에선가 덜컥 전교 1등하는 바람에 아내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운동화를 사 준 기억이 난다.

성수도 꽤 잘했지만, 그들보다는 못했다. 현재 모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대선이랑 비슷했던 것 같다. 이들 넷은 요즘도 여전히 그럴 수 없이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두 번째 시험에서 성수가 성적이 꽤 올라서 성수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축하한다고, 칭찬해 주라고 했더니, 과히 기뻐하지 않는 듯했다. 그다음 날 교무실에서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다들 입을 가리며 킥킥 웃었다. 맹한 나는 왜 웃는지를 몰랐다.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으니까, 눈치 빠른 한 여 선생이 내 옆구리를 꾹 찔렀다. 거기 작은 쪽지가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최 선생님,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그거 촌지 바라고 그러는 줄 알아요.”

이십 몇 년을 훌쩍 건너뛰어 성수에게 물었다.

“성수야, 학부도 서울대 나왔나 보구나.”

“아닙니다. 고려대 서창 캠퍼스 출신입니다.”

성수는 대학 졸업 후 모 대기업에 입사했다. 몇 해 근무하다가 자꾸만, 이건 내 길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꿈, 과학자의 길이 마음속에서 점점 또렷해지고 나날이 커졌다. 일생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하는 일대(一大) 각성의 순간이었다. 어느 날 결단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죽자 사자 공부한 덕분에, 부모님의 부드러운 말씀과 따뜻한 눈길 덕분에, 서울대 대학원 미생물학과에 합격했다. 힘은 들었지만, 보람도 있었고 공부도 나날이 재미졌다.

새 사람이 되고 보니,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천사처럼 보였다. 자연히 누구보다 친화력이 뛰어났다. 학부를 어디 나왔느냐, 하는 것이 거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예전처럼 고시 공부하듯 도서관에, 또는 사찰에, 고시촌에 틀어박혀 혼자서 들입다 공부해서는 과학자로 성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 과학에서는 교수와 동료만이 아니라 학제간(學際間 interdisciplinary) 공동연구와 도움도 필수불가결하다. 이때 지능과 지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인성 그중에서도 친화력이다. 성수는 중1 때도 모난 데가 없는 학생이었다. 솔직하고 밝고 겸손했다. 각성 이후에는 그런 장점이 더욱 도드라졌을 터!

성수는 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기초과학지원연구소(Korea Basic Science Institute)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한 지 4~5년 된 모양이다. 이 박사는 거기서 스탠퍼드대와 공동연구로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유발하는 타우 단백질이 뇌에 손상을 일으키는 과정’을 규명하는 등 세계가 주목하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

어느 날 각성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자신의 잠재력을 스스로 꽃 피우는 학생은 일 년에 한 명 만나기도 힘들다. 성수는 대기만성형으로 대학 졸업 후 그런 길을 걸었다. 내가 거기에 나노만큼도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내 아들인 양 뿌듯하다.

가산중학교 2년째에 나는 1학기 전반기까지 1학년 담임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3학년 담임을 반강제로 떠맡았다. 3학년 담임 한 분이 학기 중간에 고등학교로 전근 가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1학년 담임으로 연달아 근무하면서, 내가 한 일이 생각나서다.

그런데 그게 조금 헷갈린다. 둘째 해는 분명히 3월 한 달 동안 아내에게 일부러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해서 교실에 들어가, 너덧 명씩 조를 짜서 책상을 맞대고 도시락을 쭉 펼쳐놓고 함께 얘기하면서 식사했는데, 첫째 해는 그리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한 것도 같아서 그런다.

하여간 그렇게 아직 초딩 티를 못 벗은 학생들과 한 달 동안 도시락 반찬도 서로 나눠 먹으며 자기소개 시키고 쭈뼛쭈뼛 두러두런 얘기하다 보면, 학생들의 마음이 아침햇살에 안개 걷히듯 절로 열렸다. 이름과 얼굴도 금방 눈에, 머리에, 가슴에 새겨졌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개인 면담은 방과 후에 따로 했고.

내가 고등학교로 간 첫 해, 이들은 중3이 되었다. 스승의 날인가, 보고 싶다며 우르르 찾아왔다. 버스를 타고 함께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끝내 준다’는 식당으로 갔다. 신림동에서 철판구이 순대를 푸짐하게 먹었다. 그때 이후로 가산중 1학년 7반 학생이 찾아온 것은 성수와 형준이 처음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성수 아버지의 별세다. 장남이 박사 가운 입는 걸 아슬아슬 못 보고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하면서 가일층 분발했는데, 자랑스러운 모습을 끝내 못 보여 드렸다며, 성수는 눈가를 붉혔다. 두 아들을 연구원으로 키운 성수 어머니는, 난 한 번도 못 봤고 딱 한 번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지만, 두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참 행복하게 사신다고, 오늘 한 10년 만에 통화했을 때, 우리 이 박사가 말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자랑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저는 제 두 아들을 어머니처럼 잘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 도무지!”

csj@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새마루 2018-09-16 21:58:37
선생님의 교단일지를 읽으며 생각해보면, 예전 학생으로서 도시락을 싸들고 등교하던 때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선생님처럼 도시락을 싸와 학생들과 교실에서 식사하시던 선생님은 뵌 적이 없네요^^. 점심은 학교 식당에서 급식으로 먹는 것을 당연시하는 요즘 세태이지만 교직원 식당과 학생식당의 벽을 허물고 함께 식사하며 밥상머리 교육을 시도해 볼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사제간의 정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