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증언】“1970 당시 北미그기가 포항까지 비행해도 아무도 포착 못했다”上
【CIA 증언】“1970 당시 北미그기가 포항까지 비행해도 아무도 포착 못했다”上
  • 마이클 리 전CIA 대북전담요원
  • 승인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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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박순국 사건

1970년 12월 3일, 국내 방송국들이 놀라운 뉴스를 하나 전했다. 북한의 공군소좌 (33세) 박순국이 MIG-15기를 타고 남한으로 귀순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그가 당연히 대방동에 있는 미502 군사정보단 수용소에 후송되어야 했는데 이문동에 있는 대한민국 중앙정보부가 그를 단독으로 관리하였고 미군 측에서는 접근도 못했다.

미8군 G-2를 위시해서 미502 군사정보단과 주한 미국대사관이 의혹을 제기하고 항의를 했다. 그러나 한국정부에서는 박순국 사건에 대하여 철저하게 단속을 했고, 단순귀순자로 언론에 보도하고 군사비밀을 빙자하여 외부의 접근을 차단했다.

여러 가지 의혹이 난무했으나 한국정부와 주한 미8군 사이에 모종의 묵계가 이루어진 듯, 1970년 12월 8일에는 정내혁 국방장관과 UN군사령부 참모장 스미드 중장 사이에, 만약 북한이 박순국의 송환을 요구할 경우 그를 거부하기로 합의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그 당시 모든 의혹의 초점은 박순국이 단순귀순자이건 불시착이건 간에 적군의 전투기가 백주에 비무장지대를 넘어서 남한 땅에 들어왔는데 국군의 지상군이나 공군의 레이더가 그를 포착하지 못했다는데 있었다.

◇한국정부, 주한미군의 박순국 심문 차단

가뜩이나 그때는 야당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약점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는데, 이 사실이 정치적인 이슈로 비등할 경우 집권여당과 정부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 될 수 있었다.

“백주에 적군의 전투기가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몰랐다면 우리가 당신들에게 어떻게 믿고 국방을 맡길 수 있느냐”고 항의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아주 민감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건이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박순국이 완강하게 협조를 거부하고, 자기는 비행착오로 남한에 왔지 귀순이 아니기 때문에 판문점을 통하여 북으로 송환해달라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한국정부는 1960년에 MIG-15기를 타고 귀순한 정낙현을 앞세워 박순국을 회유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두 달이 지나도록 박순국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순국은 결국 자기의 고집을 꺾고 대한민국정부에 협조하기로 서약하고, 어느 누가 물어도 자기는 남한이 그리워 오랫동안 기회를 노리다가 귀순한 것으로 말하기로 맹세를 하고 시종일관 주어진 각본대로 언행을 일치하도록 설득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박순국은 바로 기자회견을 갖고 자기의 탈출경위와 귀순동기를 피력했다. 이어서 한국정부는 박순국이 중부전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날아올 때 공군기 4대를 동원하고 박순국의 비행기를 안전하게 유도하여 강릉해수욕장 백사장에 안착시켰다고 발표했다.

그 때 UN군사령부와 미8군 G-2와 미502 군사정보단이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에 박순국 면접을 요청했다. 중앙정보부는 박순국의 입에 이미 요지부동한 각본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단 하루만의 면접을 승인하였다.

미군 측에서는 나를 박순국의 심문관으로 선정하였다. 그때가 1971년 3월 말경이라고 기억된다. 내가 미국 측 심문관이라면 박순국이 거부감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는 미국냄새를 풍길만한 물건을 소지하지 않기 위하여 문방구에 가서 국산 볼펜을 사고 대방동 공군본부에 가서 공군전용 조서용지를 얻어오고 이문동에 있는 중앙정보부 대공 합심반에 가서 박순국을 만났다. 그 당시 대공합심반장은 성00 중령이었다.

◇공군본부 작전국 소속으로 위장

깨끗하고 아담하게 꾸려놓은 심문실에 나와 박순국이 테이블 양쪽에 대좌하여 차분하게 심문을 시작하였다. 나의 등 뒤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모니터링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박순국이 눈치 채지 않게 테이블 밑에 녹음기의 스위치를 누르고 입을 열었다.

우선 대한민국에 귀순한 것을 환영한다는 정중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간단한 인적사항을 묻고 천연덕스럽게 그의 탈출경로와 귀순동기를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그대로 박순국은 중앙정보부가 그의 입에 담아둔 거짓말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주 침착하게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의 거짓말 가죽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의 거짓말과 나의 거짓말이 고도의 신경전에서 내가 승리하게 되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것이 바로 유능한 심문관의 능력이다.

“박 선생, 오늘은 이렇게 합시다. 박 선생은 신문기자나 외부 인사들과 대화를 할 때에는 추호도 착오가 없이 우리정부가 부탁한대로 대답을 해야지 실수를 하면 정치적으로 대단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 선생도 이미 알고 있고 나도 우리정부의 입장을 다 알고 있는 처지인 만큼, 오늘의 면담은 다른 차원에서 진행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공군본부 작전국에서 나온 이동진 대령입니다. (순 거짓말이다)

귀순한 박순국 소령
귀순한 박순국 소령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애국이다.”

오늘 내가 박 선생으로부터 듣고 싶은 내용은 정치적으로 도색된 내용이 아니고 박 선생이 체험한, 즉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공군이 피아의 허점과 약점을 알고 작전개념을 정비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임으로 착오가 없어야합니다. 이는 우리가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군사기밀로 취급하게 되며, 우리정부가 박 선생에게 이미 부탁한 각본에 대한 배반이 아니며 오히려 한 단계 높은 차원의 협조이고 애국하는 작업입니다.”

내 말을 심각하게 듣고 있던 박순국은 내가 던진 낚싯밥을 물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진술하는 것이 높은 차원의 애국이라는 점에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진실을 토로하겠다는 태도는 대한민국에 협조하겠다는 그의 진심이 입증된 셈이다. 그리고 박순국은 정부가 부탁한 각본이 아니고 내가 묻는 말에 꼼꼼하고 차분하게 진술을 했다. 그 내용의 요점을 기억이 나는 대로 여기에 적어보겠다.

<下편에 계속>

mlee-cia@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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