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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가 명확한 증거도 없이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해 온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여 ‘천안함 폭침 사건’의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29일 감사원의 ‘천안함 재조사 과정 감사 결과’에 따르면,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해온 신상철씨는 2020년 9월 7일 진상규명위에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재조사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진상규명위 사무국은 보름쯤 뒤 ‘천안함 사건은 그 원인이 명확해 재조사 대상이 안 된다’며 진정을 각하했다.

그러자 신씨는 그해 10월 14일 이 위원회 A국장에게 ‘진정을 받아달라’고 했고, A국장은 당시 이인람 위원장에게 이를 전달했다. 이에 이 전 위원장은 ‘신씨의 진정을 받아주라’고 지시해 실제 접수가 됐다. 감사원은 "진상규명위에서 진정이 반려됐다가 다시 접수된 건 천안함 사건이 유일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임명한 이 전 위원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이다.

이때부터 진상규명위는 ‘천안함 재조사’ 결론을 정해 놓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억지 논리를 동원하는 작업을 벌였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우선 신씨는 ‘진정인’ 자격이 없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위원회는 신씨가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위원 출신이란 점을 부각해 그의 진정인 자격을 인정했지만 관련 법엔 군 사망 사고를 직접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의 증언을 들어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만 사고 원인 재조사 진정을 낼 수 있다. 감사원은 "신씨가 천안함 관련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미국 등 5국 전문가 74명이 참여한 민군합동조사단은 2010년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으로 폭침됐다’는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진상규명위는 이 최종 조사 결과 대신 ‘내부보다는 외부 폭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당시 민군합동조사단의 중간 조사 결과를 재조사 검토 보고서에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소행’이란 명확한 사실을 누락하고 ‘좌초’ 등 외부 충격이 천안함 사고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식의 보고서를 만들어 재조사 결정의 근거로 활용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또 천안함 사건 자체가 재조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관련 법에 ‘군 사망 사고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재조사를 하게 돼 있는데, 민군합동조사단 뿐만 아니라 법원도 ‘천안함은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게 충분히 증명됐고, 신씨의 좌초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확하게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진상규명위는 이런 사실을 검토 보고서에 넣지도 않고, ‘군 사망 사고 재조사 진정은 대체로 받아주는 것이 관행’이라는 이유를 대며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 전 위원장은 "당시 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접수 처리를 하라’는 식으로 말해서 그렇게 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 실무자들은 감사원 조사 때 "이 위원장을 설득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재조사 의견으로 검토 보고서를 올렸다"고 진술했다. 재조사 결정으로 천안함 유족들이 반발하자 위원회는 지난해 다시 이 사건 진정을 각하했고 이 전 위원장은 사퇴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 중이기도 하다. 법조계에선 "위법한 천안함 재조사 지시를 내린 윗선은 직권 남용 소지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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