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사』해방정국 남북협상파는 북한 주요 포섭대상 (上)
『대남공작사』해방정국 남북협상파는 북한 주요 포섭대상 (上)
  • 유진 북한문제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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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서 활동한 간첩 권태휘

6.25전쟁 정전 이후 북한 노동당 연락부는 8.15 해방정국에서 남북협상에 참여했던 정당 및 사회단체 인사들 가운데 월북하지 않고 남한에 잔류해있는 인사들을 포섭하는 공작도 진행했다.

남북협상에 참여했던 많은 인사들이 이미 월북한 관계로 잔류해 있는 인사들을 물색하기도 좋았고 월북 인사들을 파견할 경우 비교적 쉽게 접근이 가능했다. 때문에 이들은 당시 북한 대남공작부서의 중요한 포섭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공작은 연락부 제3조직부문 즉 정당공작과에서 진행했다.

권태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권태휘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권태휘는 당시 잔류 남북협상파 인사들에 대한 포섭공작에 투입된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에서 활동하면서 1948년 4월 남북협상 때 김규식의 특사로 두 번이나 평양에 왕래한 바 있는 권태휘는 6.25전쟁 때 자진 월북하였다. 따라서 남한에 잔류 중인 민족자주연맹 계통의 인물들과는 잘 아는 사이였다.

이에 따라 북한 중앙당 연락부는 권태휘를 공작원으로 선발한 다음 3개월 동안 초대소에서 대남침투 및 공작에 필요한 훈련과 실무교육을 시켰다. 그런 다음 남한에 침투해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 계열의 주요 잔류인사들인 김성숙과 배성룡, 신숙, 이경석 등을 접촉해 포섭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공작임무를 받은 권태휘는 1956년 10월 말 안내원들의 도움을 받아 한강 수중침투 루트를 통해 김포해안으로 침투하는데 성공했다.

◇한강 수중침투 루트로 김포해안 잠입

서울에 잠입한 권태휘는 친인척 등 연고자들을 먼저 찾아가 숙식 및 엄호거점을 만든 다음 주요 포섭대상들인 배성룡과 김성숙, 신숙과 이경석 등과 각각 개별적으로 접촉을 시도했다. 포섭대상들과 개별적으로 만난 권태휘는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면서 이들에게 북한과 손을 잡고 투쟁할 것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지금은 때가 아니다. 때가 되면 나서서 할 터이니 그리 알고 빨리 돌아가라. 오래 있으면 서로가 위험하니 빨리 떠나는 것이 좋겠다”며 권태휘의 요구를 거부하거나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더 이상 만나주지도 않는 등 회피하기까지 했다.

이에 권태휘는 “앞으로 당신들이 때가 되면 나서서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 주리라 믿는다. 평양의 높은 분들에게도 그렇게 전달하겠다”고 하고 침투한지 약 5개월 만인 1957년 3월 초에 빈손으로 복귀하였다. 그는 복귀 후 당시 담당부부장이었던 최달현으로부터 공작실패에 대한 추궁을 받고 고민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해방정국에서 조소앙의 비서로 활동했고 삼균청년동맹위원장과 한독당ㆍ사회당 중앙 집행위원을 역임하다가 6.25전쟁 때 자진 월북한 김홍곤도 협상파 잔여인물들에 대한 포섭공작에 투입되었다.

김홍곤은 자진월북 후 사회안전성 정보국 요원으로 있다가 북한이 남한출신자들을 간부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개성 송도정치경제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1957년 5월에 중앙당 연락부 공작원으로 선발되었다.

◇해방정국 조소앙 비서였던 간첩 김홍곤

연락부에서는 김홍곤을 초대소에 입소시켜 5개월 동안 대남침투 및 포섭공작에 필요한 훈련과 실무교육을 시킨 다음 1957년 11월 중순 구 사회당 및 한독당계 인사들을 포섭하라는 임무를 주고 남파했다. 김홍곤은 안내원들의 안내를 받아 한강 침투루트를 통해 김포해안으로 침투한 후 서울에 잠입했다.

서울에 들어온 김홍곤은 친인척들의 도움을 받아 엄호거점을 구축한 다음 주요 포섭대상자들인 조시원, 김학규, 조경환, 조윤제 등을 몇 차례씩 접촉해 찾아온 목적 등을 설명하면서 북한과 협력할 것을 설득하였으나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나중에는 접촉마저 꺼리고 회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자 이들과의 접촉은 포기하고 자신과 연고관계에 있으면서 야당에 관여하고 있던 김경철과 서울대학교 학생신분이었던 백병기를 포섭하여 북한과 연계시키는데 성공했다.

복귀할 때는 포섭대상들인 조시원과 김학규, 조경환과 조윤제 등을 찾아가 “앞으로 정세가 호전되면 평화통일 기치를 들고 통일운동에 나서줄 것을 바란다”는 부탁을 남기고 1958년 4월 중순에 침투했던 한강의 김포해안에서 접선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절반의 성공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김홍곤이 포섭했던 김경철과 백병기는 그 후 북한 공작부서의 지령에 따라 몰래 입북해 공작교육을 받은 다음 공작금까지 받아가지고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활동하다 모두 체포되었다.

(下)에서 이어집니다.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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