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대·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을 다짐하는 핸드프린팅을 마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대·중소기업 상생과 동반성장을 다짐하는 핸드프린팅을 마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제무대를 향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문재인 정권 5년간 2차례의 구속 수감을 포함한 사법리스크에 묶여 시나브로 위축됐던 대외활동이 민간주도 성장을 경제·산업정책의 핵심기조로 삼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눈에 띄게 확대되는 모습이다.

실제 이 부회장은 윤 대통령의 취임식과 만찬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바이든 대통령 방한 당시 평택 반도체공장 시찰을 직접 안내하며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서초사옥에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양사간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오는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 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코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지난 5년간 소원했던 국제 비즈니스 행사 복귀도 점쳐진다.

현재 이 같은 이 부회장의 광폭행보를 바라보는 재계의 눈은 향후 전개될 인텔과의 반도체 동맹과 대형 인수합병 재시동으로 모아지고 있다. 삼성의 미래에 큰 변화를 이끌어낼 과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인텔과의 동맹은 겔싱어 CEO와의 회동 소식이 전해지며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두 사람은 이날 반도체·PC·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방안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메모리 최강자인 삼성전자와 중앙처리장치(CPU) 최강자 인텔의 맞손이 삼성전자에 더 없는 기회가 될 것으로 분석한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와 달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인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올해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돼 혁신 모멘텀 마련이 시급한 까닭이다. 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TSMC 대비 낮은 수율, 엔비디아 같은 핵심고객의 이탈 등 삼성전자가 직면한 악재는 이외에도 많다"며 "인텔과의 동행은 위기 탈출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최초 개발한 차세대 메모리 인터페이스인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XL)’를 통해 라이벌이자 동반자로서 더 강력해질 양사 파트너십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한다. CXL은 이미 인텔의 데이터센터와 서버 플랫폼에서 검증을 마쳤고 인텔은 CXL을 중심으로 메모리 생태계를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파운드리에서 삼성전자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하고 대대적 투자를 단행 중이지만 위탁생산 물량의 증가도 기대되는 덕분이다. 겔싱어 CEO도 지난해 "우리 포트폴리오를 감안할 때 특정 기술과 제품에 대한 외부 파운드리 사용은 더 늘어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인수합병의 경우 국제 비즈니스 행사 복귀와 맞닿아 있다. 전 세계 재계 거물들과의 긴밀한 스킨십은 글로벌 협력과 인수합병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지난 5년간 사법리스크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며 인적 교류도 소원해졌다. 삼성그룹 고속성장의 지렛대로 작용했던 대형 인수합병이 6년전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에 사들인 뒤 끊긴 것 역시 사법리스크에 의한 리더십 부재와 무관치 않다.

이 점에서 이 부회장의 최근 행보는 대형 인수합병의 엔진이 다시 켜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인다. 당장 7월로 예정된 앨런&코 콘퍼런스에 이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미국 투자은행 앨런&컴퍼니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삼성전자·애플·구글·타임워너 등 걸출한 IT·미디어업계 CEO들이 초청받아 참석하는 비즈니스의 장으로 유명하다. 2018년 삼성전자와 인텔의 스마트폰 특허소송 철회를 비롯해 아마존의 워싱턴포스트 인수, 디즈니의 ABC 방송 인수 등 굵직굵직한 협상들이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다만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은 걸림돌로 남아있다. 사면이 아닌 가석방 신분이라 출국 때마다 법무부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고 회계부정·부당합병 의혹 관련 재판으로 매주 법원에도 출석해야 한다. 4대 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협력을 통해 사업모델이 완성되는 21세기에는 기업 총수에게 요구되는 최대 덕목 중 하나가 인적 네트워크"라며 "이 부회장이 가진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국익에 바람직한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