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공작사』해방정국 남북협상파는 북한 주요 포섭대상 (下)
『대남공작사』해방정국 남북협상파는 북한 주요 포섭대상 (下)
  • 유진 북한문제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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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비서였던 간첩 안우생, 홍콩의 남북협상파 포섭공작

 

북한은 195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전개된 남북협상파 잔류인사들에 대한 포섭공작을 해외에서도 추진했다. 남북협상파 잔류인사들을 포섭하는 해외공작에 투입된 대표적인 인물이 안우생과 정동익이다.

안중근의 조카인 안우생은 8.15광복이후 김구의 비서로 일할 때 이미 거물급 북한공작원인 성시백에게 포섭되어 그의 지시에 따라 활동했던 베테랑 공작원이었다. 안우생은 김구의 비서로 오랫동안 일하는 과정에 김구와 혈육과도 같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성시백의 지시에 따라 1948년 4월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연석회의에 김구가 참석하도록 설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1948년 4월 2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한 김구 선생(위 사진 오른쪽)이 김일성과 함께 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우드로윌슨센터]
1948년 4월 2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한 김구 선생(위 사진 오른쪽)이 김일성과 함께 회의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우드로윌슨센터]

◇김구를 평양으로 이끈 간첩 안우생

그는 김구의 비서로 일하면서 한국독립당 중앙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한독당 관계자들을 포함해 8.15해방 전후 중국과 남한지역에서 독립운동이나 남북협상에 관여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과 깊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북한은 남북협상파 잔류인사들 일부가 홍콩에 머물고 있으며 남한에 있는 인사들도 홍콩을 빈번히 왕래하고 있다는 정보를 수집하고 이들에 대한 공작을 추진하기로 한 다음 전쟁 때 월북해 평양에서 살고 있던 김구의 비서출신 안우생에게 공작임무를 부여했다.

안우생은 1955년 봄부터 6개월 동안 공작에 필요한 교육과 함께 구체적인 공작계획을 수립한 다음 중국 광동성에서 마카오 거주 화교 상인으로 위장하고 마카오를 거쳐 합법적으로 홍콩에 잠입했다.

홍콩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안우생은 당시 홍콩에 체류하고 있거나 남한에서 홍콩을 내왕하던 친척들과 김구의 친족들, 한독당 관계자들을 접촉해 북한과의 협력을 요청하는 등 포섭을 시도하였으나 인간적인 대화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확실하게 포섭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나마 접촉했던 인물들이 모두 홍콩을 떠나게 되자 더 이상 공작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안우생은 공작지역인 홍콩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조총련서 활동하다 서울 잠입한 간첩 정동익

안우생과 함께 정동익도 남북협상파 잔류인사 포섭 공작에 투입되었다. 정동익은 8.15광복이후 남북협상파 정당에서 활동하다 전쟁 때 일본으로 밀항해 일본에서 조총련 조직에 관여하던 중 공작원으로 선발되었다.

정동익은 조총련 중앙의 대남공작조직으로부터 ‘서울에 잠입해 과거 협상파 잔류인사들과 정치적 비밀관계를 형성하라’는 지령을 받고 1957년 가을 서울에 잠입한 뒤 장건상, 장준하, 김성숙 등과 접촉하는 등 암약하다 1959년 여름에 적발 체포되었다.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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