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창시자 英 지리학자 매킨더 저서·논문 다시 주목

‘지정학’ 개념의 창시자이자 지리학자인 해퍼드 존 매킨더(1861~1947 영국)의 저서·논문 모음집 <심장지대(Heartland)>가 번역 출간됐다(임정관·최용환 옮김, 332쪽, 1만8천 원). 지정학 분야의 고전인 그의 단행본(데모크라시의 이상과 현실) 완역을 1부로 삼고, 논문 두 편을 2부로 묶었다. 2부엔 1904년 논문과 1943년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지정학의 세계와 평화의 길)이 포함된다. 그야말로 지정학의 본격적 소개서이며, 저자의 비범한 통찰력과 선견지명을 보여주는 책이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매킨더가 다시 주목받게 됐다. 1919년 작 <데모크라시의 이상과 현실>에서 정의한 ‘심장지대 이론’ 덕분이다. 이 용어는 그가 1904년 논문 ‘지리학으로 본 역사의 주축’을 발표하며 처음 언급했다. 여기서 ‘심장지대’란 유라시아 북부와 내륙 지역을 말한다. 북극해 연안에서 유라시아 대륙 중부 사막까지 가로지르는 지역, 서쪽의 발트해와 흑해 사이의 광활한 지협(地峽)까지를 포함한다. 자연 방벽들에 둘러싸여 있어 공격하기 어렵지만 방어하긴 쉬우며 서쪽인 동유럽 방향으로 열려 있다.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대를 호령하고,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도(World-Island: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호령하며, 세계도를 지배하는 자는 전 세계를 호령할 것이다." ‘심장지대 이론’을 한 마디로 표현한 유명한 구절이다. 19세기 영국-러시아가 벌인 ‘그레이트 게임’을 설명하기도 편리하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적용해 보면, ‘심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확장하려는 유럽,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 사이의 오랜 갈등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매킨더가 활동하던 시대와 현재 러시아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전쟁이 미칠 파급 효과라는 측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심장지대’ 장악과 연관지어 바라볼 여지가 충분하다.

매킨더의 ‘지정학’이란 ‘지리’가 인간·공동체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과거 기마민족이 활약하고 지금은 급속히 철도로 덮인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부분이 분명 국제정치의 추축(중심축)"이란 , 저자가 살던 100 여 년 전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1942~1943년 주요 논문 ‘지정학의 세계와 평화의 길’에서 매킨더는 ‘심장지대’가 20~40년 전보다 더 가치 있다고 강조한다. ‘심장지대’의 광활한 잠재력을 고려할 때,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독일을 점령하거나 그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면 지구상 가장 강력한 대륙국가가 출현할 것으로 본 것이다. 21세기에도 유효한 게 그런 유라시아 대륙국가 출현의 위험성이다(중국의 존재). 한반도의 운명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특히 시사점이 크다.

지리적 요충지의 정치적 중요성과 물질적 힘의 중대함은 어떤 지정학적 맥락에서 시작됐고, 또 거기 묶여 살아야 하는 인류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는 문제에 매킨더의 ‘심장지대 이론’ 이상의 참고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리학으로 본 세계사’ ‘지정학에 관한 장대하고도 새로운 해석’이란 평가를 얻었다. 마르크스가 ‘경제’, 헤겔이 ‘사상’의 발전을 축으로 인류사를 바라 본 반면, 매킨더는 ‘교통수송=물류’ 문제를 기반으로 광범위한 시야의 새로운 역사관을 개척한 셈이다.

"국제연맹의 여러 회원국과 강대국 사이의 평등이 실현되지 않으면 다가올 위기에서 어느 한 편의 우세로 인한 위험이 대두될 것","심장지대를 어느 한 세력이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아야만 한다"는 것 또한 적확한 지적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새로운 질서 수립을 위한 국제연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매킨더의 뜻은 훗날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UN)’으로 실현된다. 인구·영토의 규모와 국력 차이를 넘어 평등한 주권국가(Nation)로서 묶인(United) 조직, UN의 탄생이 매킨더의 구상에서 그 맹아를 보인다.
 
최근 출간된 ‘심장지대’(글항아리)는 지정학 창시자 해퍼드 존 매킨더의 ‘심장지대 이론’을 소개하는 유익한 참고서다. 매킨더의 이론을 적용해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심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확장하려는 유럽과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 사이의 오랜 갈등의 산물로 해석할 수 뉴시스있다. 사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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