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수
전광수

지난 26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현행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채택하고 있는 전국 산업현장에서 노사 재협상 등의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임금피크제란 근로자가 특정 연령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급감하고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또 국내 기업은 글로벌 무한경쟁으로 인한 경영혁신의 압력을 받는 동시에, 내부 인력의 고령화로 인한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금융위기 등을 계기로 기업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 등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는 근로자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하고 대량실업, 노인빈곤 등의 또 다른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따라 양자의 문제점을 절충한 방식이 임금피크제인 것이다. 이는 2000년대부터 시작해 2013년부터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연차에 따라 상승하는 임금 책정방식으로 인해 부담을 느끼는 기업이 청년 신규 채용을 할 수 있도록 ‘상생’의 차원에서 노사간 합의로 도입한 것이다.

현재 일반 기업의 절반 이상, 모든 공기업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로 해당 기업들에서는 노조의 단체협약 개정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협상 결과에 따라 노조의 줄소송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판결로 고령자의 고용 불안을 일으키고 청년 일자리 창출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외면한 것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사간 합의로 도입된 제도를 흔들어, 노사간 임금 협상에서 임금 인상 요구의 수단이 되며 산업현장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가장 중립적으로, 시대를 꿰뚫으면서도 우리 사회 전체를 아울러야 할 판사 개인의 판단이나 신념에 따라 너무나 큰 사회적 혼란의 여지가 생겼다. 시행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공공기관에서 정착한 지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노사 간 상생 합의가 어떻게 호떡 뒤집듯 바뀔 수 있을까? 청년기부터 ‘영감님’으로 불리는 판사로 재직하며, 현실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세상 걱정 없이 법전만 들여다보는 판사들의 재판 결과가 이 세상을 흔든다. 더욱이 개개인이 사회의 고위층이자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기에, 실제 기업과 우리 사회의 어려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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