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국절이 없는 나라는 우리뿐
【기고】 건국절이 없는 나라는 우리뿐
  • 공동기고
  • 승인 2018.09.2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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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을 광복건국절로 해야 하는 이유"

《공동기고》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박휘락, 국민대 교수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신원식, 전 합참 작전본부장

지난 8월 15일은 광복 73주년이자 건국 70주년이었지만, 올해에도 대한민국은 쓸쓸한 생일을 보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 1945년 8월 15일이었고 이승만 정부의 출범으로 국가의 요건을 갖춘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은 1948년 8월 15이었다. 이는 학자의 사관(史觀)이나 정치인의 정견(政見)으로 인해 바뀔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8월 15일은 광복절이었을 뿐 건국절은 아니었고,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건국절이 없는 주된 이유는 1919년 상해 임정(臨政)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며, 그 언저리에는 “친일·친미의 잔재이자 부정·부패의 원흉”인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임정의 주역인 김구를 추모하는 세력과 이승만의 공적을 인정하는 세력 간에 국부 논쟁이 이어졌고, 언론은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세력을 ‘보수’로 그리고 거부하는 세력을 ‘진보’로 일갈해왔다. 과연 그런 것인가? 정말로 이 땅의 진보세력이 이승만을 거부하고 있는가? 이승만을 거부하는 것이 좌파가 아니고 진보란 말인가? 어쨌든 이런 혼란 속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건국절이 없는 나라로 남아 있다.

결론부터 말해, 문제의 핵심은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좌우 대립이며, 그로 인해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할 보수-진보 간의 건전한 경쟁이 대립과 갈등으로 증폭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승만-김구 국부 논쟁은 담론(談論) 전쟁에서의 좌파의 승리가 초래한 ‘보수적인 우파’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우파’사이의 갈등일 뿐이다.

◇좌파와 우파 그리고 진보와 보수

좌파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고 우파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주의 경제는 ‘평등과 무한복지’를 앞세우고 국민을 현혹하는 힘을 발휘하지만 결국 국가 경쟁력을 까먹고 복지를 위한 경제기반 자체를 붕괴시켜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한계성을 가진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주의 경제를 고수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중국과 같은 나라는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고수하면서도 시장경제에 가까운 경제체제를 수용하고 있으며, 역시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도 열심히 시장경제를 배우는 중이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키우고 성장을 가져오지만 성공한 강자와 실패한 약자 간 큰 격차를 초래한다. 정부가 복지정책을 펼치는 것은 이 격차를 줄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복지가 무한정 확대되어 일을 안 해도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부를 누릴 수 있게 되면 나라 전체가 놀자판으로 변하고 국가경제력은 곤두박질하게 되는데, 그래서 “국가가 인민을 먹여 살린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 나라들이 하나같이 가난의 늪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좌파에는 원래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혼재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후자의 경우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볼 수도 없다. ‘주사파’란 후자를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였는데, 북한이 원래 의미의 사회주의 국가와도 거리가 먼 세습독재 국가로서 경제 실패국이라는 점에서 외국인들은 경제적으로 번영한 한국에 주사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보수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과격한 변화를 경계하고 옛것의 가치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며, 진보는 옛것을 경시하지 않되 더 과감한 변화를 추구한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란 목표가 같기 때문에 보수와 진보는 공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선호하는 우파이며, 차이가 있다면 진보가 좀 더 과감한 변화를 추구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데 좀 더 전향적이라는 점 뿐이다. 한국의 문제점은 사회주의자들이 스스로를 ‘진보’로 칭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오늘날 언론이 말하는 ‘진보’에는 순수 진보와 사회주의 세력이 혼재하게 되었고, 그래서 주사파들도 ‘진보’로 둔갑되고 말았다. 이렇듯 한국은 좌파와 진보를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국이 되고 말았다.

◇부질없는 김구-이승만 ‘國父’ 논쟁 멈춰야 한다

김구는 분단을 막기 위해 최후까지 노력한 민족주의자이지만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한 적이 없다. 그는 임정을 통해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건국의 토대를 닦은 지도자이지만, 영토·국민·주권이 없는 임정이 건국일 수는 없다. 오늘날 김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보수이거나 진보일 수는 있어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좌파는 아니다. 여느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에게도 당연히 공(功)과 과(過)가 있다. 좌파 지식인들은 장기집권, 인위적인 개헌, 측근들의 횡포 등 이승만의 과를 들추기를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한미동맹을 끌어냄으로써 경제발전 토대를 닦은 이승만의 공은 과를 압도하며, 영토·국민·주권·정부이라는 4대 요인을 갖춘 건국을 완성한 것도 이승만이다.

요컨대, 이승만과 김구를 둘러싼 국부 논쟁은 ‘인민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를 도입한 이승만을 부정하는 좌파가 만든 프레임 속에서 우파들끼리 벌이는 비생산적인 다툼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좌파들은 이승만을 ‘부패한 보수’로 각인시키기 위해 김구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만들었고, 그로 인해 김구를 사회주의자로 오해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그래서 김구의 실제와 상관없이 우파들은 이승만 살리기에 집착하고, 그럴수록 김구는 반대편 극단으로 멀어지고 있다. 부질없는 국부 논쟁이 김구와 이승만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광복건국절 제정위해 힘 모아야

건국절 부재라는 자괴스러운 현상을 종식시키려면 8월 15일을 광복건국절로 정하고 김구를 ‘건국의 아버지’로 그리고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기리면 된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은 김구와 이승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파끼리의 다툼’의 종식을 선언하고 광복건국절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접근방식이 달랐고 이로 인해 후세의 평가도 달랐지만 이승만과 김구는 나라의 독립과 건국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친 자랑스러운 지도자들이었고, 그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핵 위협과 한국 내부의 분열로 인하여 애써 이룩한 번영은 물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가 부질없는 국부 논쟁을 종식하고 광복건국절 제정하는 것이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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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 2018-10-02 22:10:13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김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했던 인물인데 왜 건국에 그 이름이 집어넣자고 얘기하시는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건국의 아버지는 당연히 이승만 대통령이죠~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했던 인물에게 건국의 아버지라는 호칭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김자유 2018-09-26 11:49:18
장면을 단장으로 정일형, 김활란 , 모윤숙 등 애국지사들의 노력의 결과 회기 마지막날인 1948년 12월12일 오후 47개국의 찬성으로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이 되었다.
이떄 김구선생은 북한과 뜻을 같이하여 1948년 4월 30일 성명을 통해, 5월10일 남한 단독선거를 반대하였을 뿐 아니라 김규식을 단장으로하여 유엔이 대한민국승인을 거부하도록 서영애 등의 대표단을 파견하였으나 김규식 단장이 참석하지 않고 서영애는 북한으로 사라져 버려 일이 성사 되지 못하였다
김구선생은 애국애족의 민족 지도자인 훌륭한 분임에는 틀림없지만 대한민국탄생에 관한한 공로가 없는 방해자에 불과함으로 건국에 관련 된 어떤 호칭도 그분에게는 합당치 않습니다

김자유 2018-09-26 11:25:53
4분의 애국지사님의 훌륭한 건국절 관련 글에 감사드립니다
글 내용에 대부분 공감하지만 마지막 부분의 김구선생을 건국의 아버지로 이승만대통령을 건국대통령으로 기리자는 내용에 동의 할 수가 없습니다
김구 선생께서도 생전에 국부는 이승만 한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유엔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5월10일 총선을 통해 국회결성, 헌법제정, 대통령선출, 정부수립일(건국) 경축을 통하여 자유대한민국이 출범한 후 미국이 그 동안 한반도와 한국민에 대한 가치와 국가권위를 무시한 역사적 사실을(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 불이행, 가쯔라 테프드 밀약)등을 자행했던 미국만을 전적으로 의지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1948년 제3차 유엔 파리국제회의를 통해 세계각국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을 인정 받고자 국부 이승만의 노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