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다른 선진국에 거의 없는 세 개의 리스크(risk)가 있다. 사법리스크·노조 리스크·정치 리스크다. 지난달 27일 대법원발 사법 리스크가 터졌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다.

한국의 고용은 지극히 경직적이다. 해고를 둘러싼 소송이 엄청나게 많다. 이유는 근로기준법 제23조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감봉 등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법원은 ‘정당한 이유’를 엄격하고 온정주의적으로 해석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취지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소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변호사업계는 또 하나 큰 먹거리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변호사·노무사의 도움으로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임금피크제를 시행해온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별일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 경영과 청년고용에 악재가 하나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임금피크제를 시행하지 않고, 청년고용도 하지 않으면 없어질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 판결은 ‘따뜻한 마음’과 ‘짧은 생각’이 합작한 길고 잔혹한 폭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때문에 대법원 판사를 비난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실은 이 비난의 90%는 2013년 5월 정년연장 강제법인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만든 국회가 받아야 마땅하다.

2013년 국회가 ‘60세 정년연장’을 법 제19조로 강제하면서, 그 전까지 한 세트로 되어 있던 임금체계 개편은 법 제19조 2(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에서 노사 자율로 맡겨 버렸기 때문이다. 노조 입장에서 정년연장은 이미 따놓은 당상인데, 임금체계 개편(직무급·연봉제·임금피크제 등)에 성실히 임할 이유가 없었다. 그로 인해 기업들은 제각기 합리적인 이유와 절차를 만들어 시행하다가 사법 리스크에 휘말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비겁하고 무책임한 정치가 사법·노조 리스크는 물론 청년고용과 초저출산의 주범임에 분명하다. 결론은 정부와 국회가 고용과 임금을 유연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청년이 살고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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