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들어야할 '도덕지수 높은 학생 이야기'
정치인들이 들어야할 '도덕지수 높은 학생 이야기'
  • 최성재
  • 승인 2018.09.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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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모순점을 깨닫게 해 주었더니, 형철은 눈빛이 반짝했고 눈길이 레이저 광선처럼 직선을 긋기 시작했다.
관악고등학교
관악고등학교

-형철은 선이 굵고 심지가 굳어서, 도덕지수(MQ)가 높아서, 어디 가든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약 20년 전, 한 어머니가 관악고 교감 앞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흔 초중반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몸이 무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득 서너 달 전에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 형철이 큰소리로 자랑하던 게 생각나서 속으로 빙긋이 웃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임신했어요! 에이, 진짜라니까요!”

K 교감은 매일 출석부를 점검하다가 3일 이상 장기 결석자가 있으면, 담임한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학부모를 불렀다. 두 분이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주고받았고, 나는 모르는 척했다. 잠시 후 형철 어머니가 쭈뼛쭈뼛 나한테 다가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가정교육을 잘못 시켜서... 형철이 가출했습니다. 어쩌면 좋지요?”

“형철 어머니, 걱정 마세요. 일주일 지나면 돌아옵니다. 형철은 어디 가서 나쁜 짓할 애가 아닙니다.”

내가 밝은 목소리로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일부러 볼륨을 살짝 올려 말했더니, 수심이 가득하던 형철 어머니의 얼굴이 비로소 조금 펴졌다.

가출한 지 정확히 일주일 후 형철이 위풍당당하게 교실에 앉아 있었다. 조회는 출석점검으로 갈음하고 형철을 교무실로 불렀다.

“형철이 효자네!”

“...”

“엄마가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갔지?”

“예! 어떻게 아셨지요?”

“그것 봐라, 부모님 말씀 잘 들었으니 효자 맞잖아.”

“히히.”

“그런데, 형철아, 공부하라는 부모님 말씀은 왜 안 듣지?”

“에이, 선생님, 그건...”

그렇게 스스로 모순점을 깨닫게 해 주었더니, 형철은 눈빛이 반짝했고 눈길이 레이저 광선처럼 직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다음부터 형철은 지각도 거의 않았다. 결석과 조퇴는 그 후 한 번도 않았고.

형철은 공부엔 별 취미가 없었지만, 선이 굵은 학생이었다. 당시, 나는 지금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선영아, 사랑해!>(당시 유행한 광고 문구)란 말이 유행했는데,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새벽같이 출근하다가 보니까, 관악고 입구 담벼락에 온통 <형철아, 사랑해!> 벽보로 도배되어 있었다. 얼핏 봐도 백 개가 넘었다. 나는 그게 우리 반 형철의 생일을 맞아 여자 친구가, 또는 형철과 같이 둘이서 키득키득 웃으며 밤샘 작업한 것이란 걸 알았다. 과연 내 짐작은 틀림없었다.

※ ‘선영아 사랑해’는 2000년4월3일 서비스를 시작한 인터넷 업체인 마이클럽(www.miclub.com)의 티저(teaser) 광고 1탄

가을 축제 때였다. 우리 2학년 5반은 출결 상황도 엉망이고 성적도 형편없었지만, 개성이 만점이어서 동아리반도 제각각이었다. 열 개가 넘었다. 그중에 부장을 맡은 학생도 서넛으로 축제를 무척 열심히 준비했다. 나는 영 어울리지 않는 연구부 기획을 맡아, 문서 작업을 못해 두루 민폐를 끼치고 있었지만, 기획은 기획이라고 동아리 지도를 면제 받았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한 끝에 우리 반 학생들이 가입한 각 동아리마다 찾아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똑같이 금일봉을 주기로 했다. 2학년 선배로서 뒤풀이에 조금 보태 쓰라는 상징적 표시였다. 3학년은 입시 준비를 핑계로 예나 지금이나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모교 대구 계성고는 3학년도 축제에 참가했다. 당시 축제 기간은 보름이었고. 최고의 명문! 나는 성악 콩쿠르에 나가려고 우리 반 친구한테 피아노 반주를 부탁했는데, 노래를 반의반의 반도 못 부르고 ‘바른 소리’를 듣고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발에 닿도록 떨어뜨렸다.)

교과서 인세, EBS 교재를 비롯하여 참고서 원고료, 평가원 모의고사 출제 수당 등으로 나는 아내한테 고스란히 바치고도 10%는 돌려받아서 통장에 잔고가 조금 있을 때였다. 맛없는 술과 매캐한 담배는 평생 입에 댄 적 없으니, 책값과 음반 구입비와 경조사비 외에는 개인적으로 쓸 일이 없었다.

나는 그릇이 별로 크지 못해서 금일봉이라고 해 봤자, 만 원 한 장에 지나지 않았다. 축제일에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이 가입한 동아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흰 봉투를 건넸다. 감사하다며 바로 받는 학생이 대부분이었고 더러 한두 번 사양하다가 감격어린 표정으로 받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형철만은 아니었다. 펄쩍 뛰면서, 냅다 도망가면서 대여섯 번이나 권했지만, 끝내 형철은 내 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얼마 후 우리 반 학생 둘이 일주일 정도 가출해서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었다. 그 둘은 공교롭게 형철과 평소에 잘 어울리던 사이였다. 출산이 임박한 형철 어머니의 걱정이 태산이었다.

“형철이 어머니, 걱정 마세요. 우리 형철이는 그런 일을 말렸으면 말렸지, 함께 저지를 애가 아닙니다. 제가 누구보다 형철이를 잘 압니다.”

아니나 다를까, 알리바이가 명백하여 형철은 이내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그 다음해 2월, 이제 2학년 5반 학생들도 꽤 철이 들었다. 제법 의젓해졌다. 콧수염이 제법 거뭇해진 녀석도 있었다. 하여간 이리저리 정이 많이 들었다. 학급 운영비가 나올 때가 아니었지만, 나는 학교 근처 불고기 집에 우리 반 전원을 데려가서 저녁을 사 주었다. 이미 말했지만, 나는 그릇이 크지 못해 쇠고기는 못 사 주고 돼지고기를 사 주었다. 식당을 통째로 빌려서 불판 앞에서 지글지글 익는 고기를 바라보는 학생들이 초등학생처럼 순수해 보였고 날개 없는 천사처럼 선해 보였다.

“선생님, 더 시켜도 되겠습니까?”

“응, 그래...”

그때 형철이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야, 너그들 양심이 좀 있어라! 선생님 괜찮습니다.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야, 너그들도 따라해!”

“선생님,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2년 후 목동의 어느 식당에서 3학년 담임들이 삼삼오오 몰려가 회식했는데, 시키지도 않은 음식과 술이 자꾸 나왔다. 학년 부장도 기획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문은 식사 후 계산대 앞을 지나갈 때 풀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형철이 엄마예요.”

“아, 안녕하세요? 식당 하신다는 말은 들었지만, 여기서 하는 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형철이 동생 잘 크지요? 형철이 곧 군대 가겠네요.”

“예, 형철이가 곧잘 봐 줍니다. 동생을 무척 귀여워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좀 짓궂어서...”

“하하, 뭐라고 하는데요?”

“제 동생한테 말을 가르친다며, 제 얼굴을 가리키며 ‘오빠, 오빠’하지 않고 ‘아빠, 아빠’ 한 답니다, 나이 차가 너무 크다면서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에 제대로 된 인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형철처럼 심지 굳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경제 문제든 안보 문제든 남북 문제든, 하나같이 30여 년 전 386운동권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정책들에 그때마다 굵은 지렛대를 끼워 넣어, 헌법과 법률과 상식의 지렛대를 끼워 넣어, 몽상과 망상이 더 이상 모락모락 피어나지 못하게, 위선과 독선이 더 이상 기세등등 활개 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지능지수(IQ) 위에 감성지수(EQ)가 있고, 감성지수 위에 도덕지수(MQ)가 있다. 형철은 내가 가르친 학생 중 어떤 학생보다 도덕지수가 높은 인물이었다.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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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9-30 22:33:23
요즘 교육부장관의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과연 청백리 정신을 갖춘 정치인들과 도덕성 높은 공직자들이 있기나 한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윗물이 맑지 못해 아랫물도 썩어가는 것인지 사회 곳곳에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는 것은 어제 오늘만의 얘기가 아닌데...... OECD 국가들 중에서도 부패 지수가 높기로 상위권에 든다는 대한민국의 민낯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