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의 비극①... 숨겨진 최후 증언
실미도의 비극①... 숨겨진 최후 증언
  • 마이클 리
  • 승인 2018.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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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존자의 최후 증언을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들었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대원들이 버스 안에서 ‘붉은 깃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제작진의 실수다.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영화에서는 저들이 출동한 군경과 대치하여 총격전을 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

1971년 8월 23일에 발생한 실미도 사건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하여 <Yahoo>와 <Google>의 검색 창에 들어가 보았으나 정확한 기사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으며 차이가 나서 어디에다 기준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1999년도에 발표한 소설가 백동호의 작품을 근거로 제작하고 2003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실미도>의 내용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러나 누군가는 역사의 진실을 바르게 기록해야 한다는 욕심이 생겨,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일들을 정리해 보겠다.

그날 오후 1시경 라디오 긴급방송이 전국에 충격적인 뉴스를 전했다. 즉, 북한의 124군부대의 1개 특공대가 백주에 인천부근 해안에 상륙하여 지금 서울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뉴스를 들은 서울 대방동 공군본부와 대방동 경찰파출소 바로 뒤 내가 근무하고 있던 미502 군사정보단 수용소는 비상경계 태세를 취하고 군인들이 기관총을 내걸고 철모를 쓰고 작전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2시경 대방동 로터리에서 총격전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몇 분 후에 상도동입구 유한양행 부근에서 폭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전시와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때 나는 황급히 그쪽을 향하여 달려갔다.

◇대전차 수류탄으로 자폭한 시외버스

그리고 나는 유한양행 건물 바로 앞에서 가로수를 들이받고 서있는 시외버스 한 대를 보았다. 그 안에서 대전차 수류탄으로 자폭한 20여명의 시체가 피비린내를 풍기면서 누어있었다. 피가 차 밖으로 흘러내리고 시체들은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창자가 배 밖으로 흘러내리고 참으로 처참했다.

주변에는 주민과 행인들이 모여와서 이 비참한 광경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육군소령 한사람이 무전기로 어디에다 상황을 보고하다가 차 안에서 아직 숨이 붙어 신음하고 있는 한사람을 권총으로 사살하였다. 그리고 차안에는 생존자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육군소령의 소속과 신분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바로 옆에 있던 초등학생 한 아이가, “아저씨, 한사람은 살았어요. 아까 누가 그 사람을 데리고 영등포 병원으로 갔어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지체 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동승하여 영등포로 달려갔다.

그 당시에는 대방동과 신길동 지나자마자 영등포구청이 있었고 구청 바로 옆에는 적십자병원이 있었다. 적십자병원 앞 광장에는 모든 교통이 차단되었고 6관구사령부 헌병들이 설치고 다니며 사람들이 병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있었다.

민간인인 내가 들어서자 그들이 나를 저지했으나 나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병원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속을 알 수 없는 육군중령 한사람이 권총을 빼어들고 침대에 누어있는 다 죽어가는 청년 한사람에게 강압심문을 하고 있었다.

◇영등포병원 응급실의 만신창이 환자

“너의 소속이 어디야? 124군부대 틀림없지? 공작임무가 무어야? 빨리 말해 이 새끼야!” 그러나 수류탄 파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있고 출혈이 심하여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고 깔딱거리는 그 청년은, “무엇을 망설이나, 빨리 쫘라!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없으니 그렇게 애쓰지 말고 빨리 죽여라!”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육군중령에게, “당신은 어디서 나온 사람이요?”하고 묻자 그는 나에게 “당신은 또 뭐요? 신분이 누구시요?”하면서 째려보았다. 나는 그때 마침 도착한 보안사령부 사복차림의 우리부대 파견관에게 그 육군중령의 소속과 관등성명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고, “당신은 권총을 내리고 이쪽으로 비켜서시오.”하면서 그 죽어가는 청년의 심문을 시작하였다. 

그는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묵비권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손을 움켜쥐고 호소했다. “당신이 이대로 떠나가면 절대로 안 된다. 사람에게는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실이다. 그 진실을 말하지 않고 가버리면 그것은 참으로 비겁한 일이다. 당신은 그 소중한 목숨을 그렇게 헐값으로 끝내지 마라.”

그는 조금 전에 내가 육군중령에게 호통 친 것이 맘에 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내 맘에 듭니다. 당신 같으면 내가 모든 진실을 말하겠소.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주시오.” 그때 나는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그 청년을 눈물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정신을 차리고 대화를 했다.

그의 첫마디가 자기들은 북에서 내려온 124군부대의 특공대가 아니고 대한민국 공군의 특공대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약 10분간 대화를 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의 혀가 움직이지 않아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했다. 간호사들이 와서 그를 급히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갔다.

<계속>

mlee-cia@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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