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서 소설가 김영하 '책은 건축물이다' 강연
"책은 민주주의의 친구였고 시민혁명의 디딤돌이었다"
이수지·은희경·한강·장기하 5일까지 릴레이 주제 강연
노벨상 받은 마르케스 등 콜롬비아 작가 작품도 소개

서울국제도서전 첫날인 1일 오후 ‘책은 건축물이다’ 주제 강연에 나선 소설가 김영하. /대한출판문화협회

"원래 도서전 첫날 이렇게 많이 오시지 않는데, 깜짝 놀랐어요. 책과 책을 둘러싼 문화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컸던 것 같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 첫날인 1일 오후 ‘책은 건축물이다’ 주제 강연에 나선 소설가 김영하가 관객들에게 이렇게 인사하며 운을 뗐다. 도서전 개막 1시간 전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 A홀 주변엔 끝이 잘 안 보일 만큼 수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첫날 도서전을 찾은 관람객만 최소 2만5000명(현장구매 포함)으로 추산된다. 마침 6월 1일이 지방선거일로 법정공휴일이었던 덕분에 관람객은 예년보다 부쩍 늘어난 모양새다. 사전·현장구매 모두 고려하면 5일까지 열리는 행사기간에 약 20만 명이 도서전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대한출판문화협회).

코로나19 상황으로 연기·축소 등을 거듭하다 3년 만에 대규모로 재개된 ‘2022 서울국제도서전’이다. 김영하 작가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매일 아침 일기를 쓴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해, ‘집’이 한층 중요해진 우리 삶의 변화와 팬데믹 시기 세계적으로 ‘늘어난 책 매출’ 이야기로 옮겨갔다. "매년 출판시장이 불황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팬데믹 시기 출판계는 오히려 호황이었다", "사람들이 집으로 숨은 것처럼, 우리의 정신은 책이라는 곳으로 도망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으며 자랐기에 책을 집처럼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처럼 느낀다.

김 작가는 책과 집을 연결한 배경을 너머, 건축물과 비교하는 관점으로 책의 특징을 조목조목 풀어갔다. "책이라는 건축물은 사용자에 제한이 없다" "한 명이 읽을 수도, 만 명이, 백만 명이 읽을 수도 있다. 건축물은 사람이 너무 많으면 받아들일 수 없지만 책은 거부하지 않는다." 책의 독보적인 대중성·보편성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래서 책이 민주주의의 친구였고 시민혁명의 디딤돌이었다"는 것이다. "책이란 우리의 정신이 거주하는 집이며, 입주를 앞둔 수만 채의 집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 작가 다운 레토릭(修辭)이다. 메시지의 호소력은 ‘뛰어난 비유’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신박·적확한 비유야 말로 레토릭의 극치다.

전자책(ebook)은 우리를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 한곳에 머무르게 하기 쉽지만, 의외로 우리를 세상으로 끌어내기도 하는 게 ‘종이책’이다. ‘도서전’ 같은 행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도서전’이 새로운 다양한 책·사람을 만나게 하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 21세기 동영상·이미지가 대세인 시대에, 새삼 ‘종이책’의 의미를 일깨운다. 오늘날 K무비·K드라마·K웹툰의 역량 역시 ‘책’과 친한 사람들이 만들어내기 쉽다. 한류의 세계적 인기가 한국문학 ‘책’으로도 연결된다는 게 고무적이다.

올해 도서전엔 국내외 195개 출판사, 저자·강연자 214명이 참여했다. 첫날 김영하에 이어 2일 그림책 작가 이수지(그림으로 그대에게 반발짝 다가서기), 3일 소설가 은희경(문학으로 사람을 읽다), 4일 한강 작가(작별하지 않는 만남), 5일 가수·작가 장기하(상관없는 거 아닌가)가 주제강연 무대를 장식한다. 아울러 문학동네·민음사 등 대형 출판사뿐 아니라 중·소 출판사 부스, 장르문학을 주로 펴내는 출판사(안전가옥), 공상과학(SF) 전문 출판사(허블·아작) 부스 등이 눈길을 끌었다.

한편 ‘반걸음’이라는 올해 주제로 김복희·김연수·문태준·오은·조경란 등 10명의 작가가 쓴 글을 묶은 브랜드와 수백 권 분량의 북 큐레이션을 접할 수 있다. 또 최근 3년간 공모를 통해 선정된 30종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전시 또한 귀한 볼거리다.

노벨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비롯해, 과거·현재의 콜롬비아 작가들과 작품을 소개하는 행사도 다양하게 이어진다. 지난 4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남미국가 콜롬비아 ‘보고타 국제도서전’에 대한 화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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