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증언】 비극②... 영화 실미도 사실과 달라
【CIA 증언】 비극②... 영화 실미도 사실과 달라
  • 마이클 리
  • 승인 2018.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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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반란군을 사실과 다르게 미화했다. 

그때 죽어가는 청년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반란군이 타고 간 버스를 운전한 당시 29세의 김종철이였다. 내가 생존자와 대화를 나눈 유일한 조사관이었는데 이 사실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 대화내용 -
우리들은 북에서 내려온 특공대가 아니다. 우리들은 인천 실미도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대한민국 공군 특공대원들이다. 우리들은 북한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암살하려고 김신조 특공대처럼 31인조로 구성되었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옥훈련을 3년 4개월 동안 받았다. 

우리들은 전국각지에 있는 교도소에서 뽑혀온 사형수와 무기수들이다. 어차피 세상에 다시 나가지 못하고 죽을 목숨인데 한번 기회를 주어 나라를 위한 귀한 임무를 맡고 성공하면 모든 과거의 허물을 씻고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평생 편히 살 수 있도록 연금을 준다고 정부가 약속했다. 

◇전국 교도소서 뽑혀온 무기수와 사형수 

우리들은 그 제안을 수용하고 충성맹세를 한 다음 목숨을 걸고 훈련을 받아왔다. 그런데 , 언제 우리들이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지 전혀 소식이 감감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확인 된 바는 아니지만, 그 임무가 취소되었고 국가기밀 누설을 염려하여 우리들을 귀신도 모르게 처단해버릴 것이란 말이 돌았다. 기간요원들에게 물어보아도 확고하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하기는커녕 묵묵부답이었다. 때문에 우리들의 의혹은 점점 굳어져갔다. 

훈련초기에는 우리들을 아주 잘 먹이고 부식도 풍족했다. 요즘에 와서는 기간요원들이 부식비를 다 떼어먹고 소같이 먹는 우리들은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기간요원들의 잔학행위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차피 더러운 운명을 타고나왔고 곧 죽어야할 사형수들인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서울로 가서 대통령을 만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따져보자, 그리고 죽자. 그래서 우리들은 오늘 새벽에 기간요원 12명을 사살하고 송도 해안에 상륙하여 인천으로 나와 시외버스를 납치하고 서울로 진입했다. 

서울 대방동에 올 때까지 저항이 몇 번 있었지만 우리는 계속 달렸다. 대방동 파출소 앞을 지날 때 잠복한 경찰들의 사격으로 우리가 탄 버스의 우측 앞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유한양행 건물 앞에서 가로수를 들이받고 버스가 멈췄다. 그때 우리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소지하고 있던 대전차 수류탄으로 자폭을 했다.”  

◇정내혁 국방장관에게 브리핑 

진술을 듣고 내가 급히 귀대하려고 할 때 정내혁 국방장관이 도착했다. 아무도 그에게 보고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생존자와 대화를 나눈 유일한 사람으로서 자청해서 유일한 생존자가 진술한 내용을 보고했다. 

그분은 따라온 수행원들에게 아무도 접근시키지 말라고 지시하고 나를 빈방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잠그고 나의 브리핑을 들었다. 

“소속이 어디시오?” 나는 미502 군사정보단 소속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정내혁 국방장관은 안색이 갑자기 검게 변하면서 아주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신신당부하기를 한국정부가 정식으로 발표할 때까지 내가 오늘 알아낸 내용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문을 열고 나오니 문 밖에 보안사령부 보안처장 김교련 대령이 와 있었다. 정내혁 장관이 그에게 무어라고 귓속말을 한 후 김 대령은 내가 만났던 그 부상환자를 싣고 병원을 떠났다. 후에 듣기는 그가 병원을 떠난 약 30분 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날 오후 6시 30분경, 정내혁 국방장관은 뉴스를 통하여 그날 서울에 진입한 특공대는 북에서 내려온 공비가 아니고 한국 군대 내의 특수범죄자들로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그날 오후 7시에 국방장관직을 사임했다. 공군 참모총장 김두만 대장도 뒤따라서 사임을 했다. 

◇국방장관과 공군참모총장이 동시 사임 

또한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후에 공군 내에서는 책임자 몇 사람이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국방장관 후임에는 1971년 8월 24일에 유재흥씨가 임명되었고 공군 참모총장 후임에는 1971년 8월 25일에 옥만호 대장이 임명되었다.  

실미도 사건은 민감한 국가기밀의 하나로 역사 속에 묻혀 있었는데 2003년 12월에 개봉된 영화 <실미도>로 인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사상 최초로 1,0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보았다고 한다. 나도 이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예술작품의 하나로 창작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많아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식과 혼란을 던져준 과오는 피할 수 없다. 그 당시 좌경정부 밑에서 여러 조직과 시민단체들이 과거정부의 어두운 면을 파헤쳐 흠집을 내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영화도 반란군들을 사실과 다르게 미화했다고 하는 비판도 있었다. 세상에 알려진 잘못된 이야기와 공개된 자료들을 비교하면서 실미도 사건의 진실을 재정리하면 이렇다. <3편에 계속>

mlee-cia@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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