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강신업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가 지난 3일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대한 시정 권고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김어준 씨는 지난달 30일 해당 방송에서 통상 영부인의 이름 뒤에 붙는 ‘여사’라는 호칭 대신 보통 일반인에게 붙이는 ‘씨’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했다. 반면 김어준 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 권양숙 여사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여사’라고 호칭했다. 현직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만 ‘김건희 씨’라고 부른 것이다. 김 여사를 비하하고 무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세련의 진정 이유다.

타인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예(禮)’에 관한 문제다. 호칭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설정 짓는 것이고 타인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방법이다. 나아가 한 사회의 성숙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다. 대통령 부인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하는 것 역시 대통령과 그 배우자를 대하는 예(禮)에 관한 문제다.

미국의 경우 국가원수인 대통령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라 부른다.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표현이자 대통령 부인에 대한 예우를 나타내는 호칭이라 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가원수이고, 그 부인 역시 선거 파트너로서 선택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통령 부인은 사실 대통령을 도와 제1 참모 역할 내지 제1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다. 때문에 이에 대한 적당한 예우와 호칭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대통령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라 부르는 것이다.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영국의 경우 여왕의 남편에게 공작이란 작위를 내리고 경(卿)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부인을 한동안 영부인(令夫人)이라 불렀다. 퍼스트 레이디처럼 대통령 부인에 대한 일종의 경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은 영부인이란 표현이 마치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호칭으로 인식되면서 급기야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원래 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타인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타인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다른 사람의 아들을 영식(令息), 딸을 영애(令愛)라고 불렀다. 타인의 부인 또한 영부인이란 말로 예를 갖춘 것이다.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이라 부르는 데는 다른 나라의 예나 역사적 관점, 또는 언어의 의미적 관점에서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혹자는 영부인이란 말이 권위적이어서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단견이다. 민주주의야말로 상대에 대한 예를 전제로 하는 정치체제다. 미국에서 대통령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라 부른다 하여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필자는 이상과 같은 이유로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이라 부를 것을 공식 제안한다. 공자가 개인의 덕목으로 인(仁)을, 관계의 덕목으로 예(禮)를 꼽은 데서 알 수 있듯, 예는 한 사회를 지탱하는 덕목이다. 하물며 대통령 부인에게 그에 걸맞은 호칭을 부여하는 것은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 문제이자 국격에 관한 문제다.

김어준 씨가 공공연히 공영방송에 대고 ‘김건희 씨’라고 하는 것, 더구나 대조적으로 ‘김정숙 여사’라는 호칭을 쓰면서도 보란 듯 ‘김건희 씨’를 반복하는 것은 김건희 여사를 모욕하고자 하는 악의적 시도다. 동시에 이는 윤석열 대통령을 모욕하는 음험한 시도다. 김어준 씨는 본인의 무례(無禮)와 비례(非禮)가 우리 사회에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인식하고 불분동서(不分東西) 행태를 즉각 멈추기 바란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