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의 현충원엔 ‘은둔의 순직자 27인’도 있다

‘5·18 계엄군’이었다는 이유로…
‘명령 복종’ 사망불구 이해 못할 ‘전사’ 아닌 ‘순직’ 처리
참배객으로 분주한 보훈의 달 6월에도 28묘역은 쓸쓸
軍의 정체성 확립 차원, ‘군인으로서의 명예’ 찾아줘야

67회 현충일인 6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28묘역이 찾는 사람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곳 현충원에는 80년 5·18 당시 광주에서 희생된 국군장병과 경찰관 27기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김석구 기자
67회 현충일인 6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28묘역이 찾는 사람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곳 현충원에는 80년 5·18 당시 광주에서 희생된 국군장병과 경찰관 27기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김석구 기자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28묘역과 29묘역, 8묘역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계엄군 23명과 경찰관 4명의 묘소가 있다.

이 중 28묘역에는 특전사 장병 15명, 31사 3명, 전교사 2명, 9전차 여단 1명 등 계엄군 21명이 잠들어 있다. 또 29묘역에는 계엄군 2명의 묘소가 있다. 또 8묘역에는 시민군의 버스돌진으로 즉사한 경찰관 4명의 묘소가 있다.

매년 5월이 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묘소에는 유가족들과 기념단체, 여야 정치인의 방문으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는 현충원이 수많은 참배객들의 방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이들 계엄군과 경찰관의 묘소는 국가유공자 자격이 무색하게도 5월에도 6월에도 썰렁하기만 하다.대다수 국민들이 이 계엄군 희생자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대중 정부 이후 정부는 이 희생자들의 존재를 애써 감추고 있다.

5·18이 성역화되며 5·18 희생자 유족들은 국가 유공자로 선정돼 취업,복지,연금,주택 등 수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또 현재까지 6차에 걸친 유공자 등록으로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5.18 계엄군 희생자 유족들은 신원이 공개될까봐 두려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사례가 비단 5.18만의 상황은 아니다. 1989년 노태우정부 시절 ‘부산동의대’ 사건에서는 학생시위대가 임무수행 중인 경찰관 7명을 화염병으로 태워죽이고 무기징역을 받았다. 그런데 이 가해자들은 2002년에 갑자기 민주화 영웅이 됐고 최고주동자에게는 당시 금액으로 6억원이라는 보상금이 지급됐다. 그러나 동의대 사건의 경찰 희생자들은 사건 발생한 지 33년이 지난 2022년 3월에 와서야 경찰관 1인당 최고 1억 2700만원의 보상금이 최종결의됐다.

광주 계엄군 희생자들이 현충원에 안장됐다는 것은 국가에서 분명히 ‘국가유공자’로서의 자격과 명예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 계엄군 희생자의 명예도 사후 정치적인 이유로 굴절되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는 2020년 5월 18일 제24차 중앙전공사상자심사위원회를 개최해 ‘5·18 계엄군 전사자’ 22명의 사망 구분을 ‘전사’에서 ‘순직’으로 변경했다. 국방부는 1980년 중앙전공사상 심의 때는 1972년 6월 제정된 육군 규정 제1-31호에 의거해 이들을 전사자로 분류했다. 이 규정은 ‘무장 폭동 및 반란 진압을 위한 행위로 사망했거나 그 행위로 입은 상이(傷痍)로 사망한 자는 전사자로 분류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1997년 김영삼정부의 대법원이 "5·18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 행위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판결하면서 계엄군 사망자들은 ‘전사’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특히 전사에서 순직으로 변경된 22명 중 13명은 간부가 아닌 사병(병장 6명, 상병 5명, 일병 2명)이었다. 본인 선택으로 군인이 된 것도 아니었다. 의무복무 중에 명령을 따르다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계엄군 희생자들은 모두 5.18광주에서 희생된 시위대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었다. 엄격한 상명하복의 군 지휘체계 안에서 상관의 명령을 따르다가 사망했는데 전사가 아닌 순직으로 처리된다면 이는 군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5·18 기념행사 참석으로 이제 ‘5.18’은 좌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상징이 됐다. 윤 대통령이 5.18 기념사에서 강조한 ‘자유와 인권’의 가치가 계엄군 희생자라고 해서 달리 적용될 이유는 없다.

이와 관련 이창호 전군연합구국동지회 사무총장은 6일 "오늘 윤석열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제복 입은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맞는거다. 조국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좋은)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묘역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묘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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