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다시 0.25%포인트(p) 올리면서 작년 8월 이후 최근 약 9개월 기준금리가 0.5%에서 1.75%로 1.25%포인트나 뛰었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가 딱 기준금리 인상 폭만큼만 올라도 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17조원 가까이 불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다시 0.25%포인트(p) 올리면서 작년 8월 이후 최근 약 9개월 기준금리가 0.5%에서 1.75%로 1.25%포인트나 뛰었다. 이에 따라 대출금리가 딱 기준금리 인상 폭만큼만 올라도 대출자의 이자 부담은 17조원 가까이 불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

머니무브는 경기가 호황이거나 낮은 금리가 지속될 때 시중 자금이 안전자산인 은행 예금에서 주식이나 암호화폐 같은 고수익 위험자산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경기가 불황이거나 금리가 급격히 오를 때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인 은행 예금, 그중에서도 정기예금이나 정기적금 등의 저축성예금으로 자금이 몰리는 게 역(逆)머니무브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정기예적금 잔액은 716조5365억원으로 지난해 말의 690조366억원에 비해 26조4999억원 늘었다. 5개월 동안 26조원 이상의 돈이 은행에 몰린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은행권의 수신금리 인상으로 예적금 상품이 주요 투자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주식과 암호화폐 등 위험자산 시장의 부진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주요 요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31일 기준 57조567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5월 3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77조9018억원과 비교하면 1년여 만에 20조원 이상 감소한 것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팔고난 후 찾지 않은 돈이다. 증시 진입을 준비하는 대기성 자금이기 때문에 주식투자 열기를 나타내는 지표로 통한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 확대가 이끈 상승장을 타고 투자자예탁금은 2019년 말 27조3933억원에서 1년 만인 2020년 말 65조5227억원으로 불어났다. 저금리 시대에 주식투자 열풍이 거세게 불면서 수많은 ‘동학개미’가 증시에 뛰어든 영향이다. 하지만 코스피지수가 3300까지 뛰어오른 지난해 6월을 고점으로 지금까지 1년 간 지루한 하락장이 이어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주식투자 열기도 한풀 꺾였다.

개인투자자의 주식 매수금액과 증시 거래대금도 큰 폭으로 줄었다. 코스피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올들어 지난 5월 말까지 5개월 간 16조5703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순매수 금액 50조2818억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포함한 국내 증시의 평균 일일 거래대금도 올해 1월 20조6542억원에서 5월 16조8689억원으로 감소했다.

상황은 암호화폐 시장도 마찬가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4268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5981억원에 비해 28.6% 줄어들었다. 영업이익은 46.9% 감소한 2878억원, 당기순이익은 55.1% 쪼그라든 1968억원에 그쳤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글로벌 유동성 축소와 루나·테라USD 사태 등 복합적이지만 위험자산에 몰렸던 돈이 은행으로 방향을 튼 역머니무브의 영향도 크다.

최근 은행들이 수신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는 것은 내년도 대출 확대를 위한 자금확보 차원으로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 영향으로 한동안 대출을 받지 못한 고신용자를 선점해 실적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특히 은행들은 과거와 달리 ‘이자 폭리’ 논란을 의식, 기준금리 변동을 신속하게 수신금리에 반영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는 지난 1일부터 ‘코드K정기예금’ 금리를 기간별로 최대 연 0.7%포인트 올렸다. 기준금리 인상폭인 0.25%포인트를 훌쩍 웃돈다. 금리가 연 5.0%에 달하는 ‘코드K자유적금’도 선보였다. 연 5% 적금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저축은행과 시중은행에서도 고금리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KB저축은행의 ‘KB꿀적금’과 신한은행의 ‘신한 안녕, 반가워 적금’이 대표적으로 금리가 각각 연 5.0%, 4.6%에 달한다. 다만 금리가 높은 상품은 납입 금액이 한정적이고, 금리 조건이 복잡한 경우가 많아 ‘미끼상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의 수신금리 인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연내 2~3차례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중 자금이 예적금으로 몰리면 은행의 조달비용도 증가한다.

금리가 낮은 요구불예금은 이자비용이 거의 들지 않지만 저축성예금은 조달비용 부담이 크다. 조달비용이 확대되면 은행은 순이자마진(NIM) 하락 방어를 위해 대출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어 차주들의 이자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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