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호수·바다 어우러진 국토 최북단 강원도 고성

-화진포해변
걸어도 걸어도 끝없는 백사장...파도 치면 차르륵 울림
해안 절벽엔 어린 김정일과 함께 머물던 김일성 별장

-천학정·청간정
기암괴석·해안 절벽에 자리...송지호와 함께 ‘고성 8경’
‘관동별곡’의 정철이 꼽은 관동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북한이 가깝게 보인다.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북한이 가깝게 보인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다 시원한 바다가 생각난다. 게다가 현충일과 한국 전쟁 기념일이 있는 6월은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다. 강원도 고성으로 가보자. 피서와 안보 관광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은 가슴 아픈 분단 현실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고성에 가까워질수록 도로에 수시로 보이는 군용 지프와 트럭, 검문소가 북쪽 땅이 눈앞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하지만 고성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여행자를 즐겁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고요한 호수와 운치 있는 바다가 있어 어디를 가더라도 낭만적인 여름 여행을 보장한다.

파도와 모래의 아름다운 하모니

여름 바다의 낭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해변을 꼽으라면 단연 화진포 해변이다. 길이 1.7km의 모래사장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오질 않는다. 해변 뒤에 자리한 울창한 송림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연인들은 서로의 어깨를 꼭 껴안은 채 모래밭을 거닐고 아이들은 밀려드는 파도에 좇기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강릉이나 양양, 속초의 해변에 비해 한적하다는 점도 화진포 해변의 장점이다.

화진포에서 먼저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백사장이다. 조개껍데기과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파도가 지날 때마다 차르륵차르륵 하는 소리를 낸다. 조선시대 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화진포 백사장을 ‘울 명’(鳴)자와 ‘모래 사’(沙)를 써 ‘명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화진포가 유명해진 것은 KBS 드라마 〈가을 동화〉의 배경이 되면서부터. 준서가 싸늘히 식어가는 은서를 업고 하염없이 걸었던 곳으로 나왔다. 해수욕장 끝에 떠 있는 섬 금구도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 좋은 아야진 해변.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 좋은 아야진 해변.

화진포에서 꼭 보아야 할 곳이라면 김일성 별장이다. 화진포 해변과 송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화진포의 성’으로 불린다.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재단장 되어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김일성 별장은 나치 정권을 거부하고 망명한 독일인 H 베버가 1938년 건축했다. 건축 당시에는 외국인 휴양촌의 예배당으로 사용되다가 1945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 되면서 외국인 휴양촌의 귀빈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김일성의 처 김정숙은 김정일 등 자녀를 데리고 와서 귀빈관에 머물곤 했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1999년 다시 지어진 것이다.

화진포 해변 건너편은 화진포호다. 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은 곳에 생긴 석호로, 물은 담수와 해수의 중간 성격을 띤다. 강릉 경포호와 속초 영랑호도 모두 석호다.

화진포는 거대한 ‘8자형’이다. 둘레가 16km, 넓이 2.3㎢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석호다. 호수는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며 남호 주변으로 갈대밭, 조류관찰대 등 자연 탐방 지대가 자리한다. 길이 10km에 이르는 산책로도 잘 정비됐다. 화진포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한데, 겨울이면 고니 수천 마리가 날아들어 말 그대로 ‘백조의 호수’가 된다. 화진포호 한 쪽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다. 단층 슬라브 형태의 이 별장은 이 대통령 내외의 유품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실내에는 침실과 집무실, 거실이 옛 모습대로 복원돼 있고 벽과 유리장에는 학위증 등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화진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송지호다. 둘레 6km로 큰 편은 아니지만, 어느 석호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송지호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울창한 소나무와 갈대숲이 어우러진 고혹적인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는다. 호수는 거울처럼 잔잔하고, 자작나무 숲에서 날아온 새 소리가 발치에 내려앉는다. 5층 높이의 송지호관망타워에 오르면 호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멀리 설악산 울산바위가 병풍 같고, 정면에는 아담한 정자가 자리 잡은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송지호에서 내려오면 화진포, 송지호와 함께 고성 8경에 드는 천학정과 청간정을 차례로 만난다. 천학정은 기암괴석과 해안 절벽 위에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청간정이다.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동해안을 둘러보고 ‘관동별곡’을 지었다.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쓴 기행가사다. 정철은 관동에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청간정을 꼽았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팔작지붕 중층 누각이 나오는데, 누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 동해가 눈앞에 가득하다.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기분 좋은 솔향이 실려 온다. 내부에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현판이 있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고 싶다면 아야진 해수욕장을 추천한다. 활처럼 부드럽게 휜 백사장 북쪽에 갯바위 지대가 펼쳐진다. 모래사장이 깔린 부분은 파도가 잔잔하고 수심도 얕다. 갯바위 지대에서는 게와 조그만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스노클링 명소로 손꼽힌다.

국토 최북단에서 체험하는 분단 현실

고성은 국토 최북단 고장이다. 이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통일전망대다. 가는 길에는 일반 승용차보다 군용 지프와 트럭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송지호 철새 전망대.
송지호 철새 전망대.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서면 휴전선과 금강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에메랄드빛 동해가 아스라히 펼쳐진다. 비무장지대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데 한국군 관측소도 아련하게 바라보인다. 해금강도 조망할 수 있다. 현종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기묘한 모습으로 떠 있다. 맑은 날이면 금강산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바라보인다. 어렴풋이 보이는 금강산 봉우리들은 왼쪽부터 일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대다.

통일전망대에서 DMZ 박물관이 가깝다. 최북단 군사분계선과 근접한 민통선 내에 자리한다. DMZ는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되는 비무장지대로, 우리나라 DMZ는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설정됐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km, 서해안 임진강 하구부터 동해안 명호리까지 248km 지역이 DMZ다.

DMZ 박물관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현실과 통일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3층 건물에는 전쟁·군사 자료와 유물을 비롯해 자연, 생태, 민속, 예술 등 한국전쟁과 DMZ에 관한 전시물이 있다.

고성에는 천년 고찰도 있다. 520년(신라 법흥왕 7) 창건한 건봉사는 전국 4대 사찰 가운데 한 곳이자,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곳이다. 한때 가람이 무려 3,183칸이었다고 전해지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며 거의 소실됐다. 신라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 치아 사리가 봉안됐다.

[여행수첩]

장미경양식의 돈가스.
장미경양식의 돈가스.

고성에 갔다면 토성면에 자리한 백촌막국수(033-632-5422)의 막국수를 꼭 맛보자. 미식가들 사이에서 대한민국 3대 막국숫집 가운데 한 곳으로 불리는 곳이다. 막국수와 함께 얼음을 동동 띄운 동치미가 나오는데, 이 동치미를 붓고 참기름과 설탕을 첨가해 손님이 취향껏 만들어 먹는다. 톡 쏘면서 시원한 동치미를 한 숟가락 먹어보면 식도락가들이 왜 열광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반찬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게 빨간색의 무침이다. 얼핏 보면 무말랭이를 무쳐 놓은 듯하지만 실은 명태식해다. 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입에 붙는다. 현내면에 자리한 동해반점(033-682-2210)은 최북단 중국집이자 가장 전망 좋은 중국집이다. 식당 뒤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중화비빔면이 맛있다. 거진읍에 있는 장미경양식(033-682-2084)는 최북단 돈가스집이다. 추억의 옛날 돈가스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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