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6월3일) <지금 다시, 일본 정독>(더숲, 332쪽)이 출간됐다. 일본에서 공부한 경제학자 이창민 (전 도쿄공업대, 현 한국외대) 교수가 냉정한 관점에서 일본경제의 성공과 후퇴를 분석한 교양서다. 특히 우리나라보다 먼저 선진국 대열에 올라 저출생·고령화·격차사회라는 선진국형 과제 해법을 고심해 온 일본사회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국뽕·반일·혐오 등의 기름기를 걷어내고 일본을 정확하게 읽는 ‘정독(正讀)’, 자세히 읽는 ‘정독(精讀)’에 집중했다.

전반적으로 경제학이란 큰 줄거리 아래, 과거·현재의 일본을 사실과 분석을 통해 논하며 미래 전망을 제시한다. 객관적 데이터와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일본인의 근면성, 장기불황의 원인, 아베노믹스의 성패 등, 의견이 분분한 일본의 실체를 들여다 본다. 여전히 ‘팩스·도장·종이’에서 못 벗어난 일본의 현실은, 과거의 성공으로 오히려 덫에 걸린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선진국형 과제에서 고전하는 것도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저자가 역설하는 바,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 선진국이지만, 경제적 성장세는 꺾인 지 오래됐다. 우리도 지금까지의 경제적 성과에 취해 방심하다, 일본처럼 ‘그저 왕년에 잘나가던 나라’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한일 역전(逆轉)’을 과잉해석해선 안 된다는 게 저자의 경고다. ‘일본을 이겼다’가 아니라, ‘일본과 다르다’는 시선으로 양국 관계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인이 근면하다는 견해는 허구에 가깝지만, 돈가스나 단팥빵 사례에서 보듯, 다양한 요소를 혼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뛰어났다.

일본경제의 힘이 대기업보다 기술력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중소기업에 있다는 저자의 진단도 중요하다. 장수 기업 세계 최다의 나라가 왜 일본인지, 대기업과의 협상에서 ‘을’이 되지 않는 일본 중소기업의 저력과 생존전략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파헤쳐 준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경제정책(아베노믹스)에 대해선, 일본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실패로 규정하긴 어렵다고 본다.

나아가 저자는 새로운 한·일 관계 설정에 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장기판의 말로 움직이기엔 너무 강한 나라가 되었다. …선진국 한국을 만끽하며 자라 난 우리 젊은이들은 유창한 외국어실력으로 다양한 외국친구들과 교류한다. 기성세대와 달리 일본이란 나라에 대해 딱히 열등감도 우월감도 없다." 다만 "현재 기성세대의 머릿속에 한·일 두 선진국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해법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기성세대의 역할이란 "새 시대의 주역들이 엉킨 한·일관계를 풀어 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뿐"이라는 지적 또한 뼈아프다.

이 책은 한·일 양국 관련해 차고 넘치는 선정적 뉴스들에 지친 사람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시각과 냉철한 판단의 기회를 줄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구축해갈 한·일관계를 시대착오적인 역사인식으로 방해하진 말아야 한다는 뜻도 될 것이다. 더 오래, 더 나은 선진국으로 살아 가기 위한 자세를 일깨우는 책이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동대학원 졸업, 도쿄대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현재 한국외대 교수). 저서 및 역서로 <아베노믹스와 저온호황>, <제도와 조직의 경제사>, <제2차 세계 대전 전 동아시아의 정보화와 경제 발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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