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백건우와 윤정희 납치미수 (1)
북한의 백건우와 윤정희 납치미수 (1)
  • 마이클 리
  • 승인 2018.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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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와 윤정희 부부

1977년 7월 31일,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를 납치 하려고 하였을 때에, 우리기관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공작을 준비하고, 그들의 납치를 좌절시킬 계획을 하고 있었다.(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음)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가 개입하지 않고, 우연히 그 당시 자그레브 주재 미국 외교관 한사람의 기지로 그 공작이 좌절 되었다. 과거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협력한 재외동포들은 거의가 지성인들이며 조국을 배신한 좀비들이었다.

그 대표적인 실례의 하나가 바로 파리 거주 이응노 화백의 처 박인경이었고 그가 파리와 자그레브에서 북한 공작원들의 백건우 윤정희 납치공작을 협조한 것이다. 그와 같은 예로 1978년에는 홍콩에서 이상희라는 여자가 영화배우 최은희의 납북공작을 협력 하였다.

그때 이 공작을 위하여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는 노동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정경희>가 나와 있었고 그녀가 총지휘 하였다. 비엔나주재 북한 대사관 3등서기관 <이상준>과 그의 처 <방화자>가 모든 보조역할을 하였고 평양과의 통신, 공작원들과의 연락, 보급, 재정, 수행안내 등을 은밀히 처리했다.

<자그레브> 현장에는 대남공작 베테랑 중의 하나인 <허묵>이 나가있었다. 그러면 이 사건의 배경과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끝이 났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 보겠다.

◇미스코리아 출신 윤정희

먼저 미스 코리아 출신 <윤정희>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본명은 <손미자>이고 1944년 7월 30일생이다. 1967년에 영화 <청춘극장>에 데뷔하였고 향후 7년 동안에 무려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인기 절정에 올랐고 주연상 대종상을 포함하여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배우였다.

1974년에 서강대학교 총장의 도움으로 파리에 있는 <소르본느> 대학교에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알게 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1976년에 화백 <이응노>(1904-1989)의 주례로 결혼했다. 그런 인연 때문에 백건우 윤정희 부부는 화백 이응노와 그의 두번째 부인 박인경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1977년 7월초 박인경이 윤정희 부부에게 접근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사는 <미하일 파블로비크>라는 거부가 고령의 부모를 위해 음악회를 열고자 하는데 백건우를 초청한다는 초청장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초청장의 수취인이 백건우가 아니라 박인경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건우는 연주회가 취리히에서 열리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백건우가 바쁜 스케줄을 이유로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박인경의 말이 백건우를 추천한 자기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고 하여, 하는 수없이 초청에 응하겠다고 대답하였다.

1977년 7월 29일, 백건우 윤정희 부부와 그들의 생후 5개월 된 딸과 박인경이 파리에서 비행기로 취리히에 갔다. 공항에 내리니 <파블로비크>의 비서라고 하는 여자가 대기하고 있다가, 초청자의 노부모가 현재 <자그레브> 근교 별장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갈아타고 <자그레브>로 가야한다고 하였다.

백건우는 비자 없이 자기들이 어떻게 공산국가인 유고슬라비아로 갈수가 있느냐고 하니까, 그 비서라는 여자의 말이 초청자가 이미 입국수속을 하였다고 대답하면서 <취리히>발 <자그레브>행 왕복비행기표를 건네주었다.

◇자그레브 비행장의 고려민항기

윤정희 백건우 피납 실패
윤정희 백건우 그리고 5개월 된 딸

그때 윤정희는 생후 5개월 된 딸을 위하여 요구르트를 사러 갔는데 그 사이에 박인경과 그 비서라는 여자가 자리를 옮겨 흰 봉투 하나를 박인경에게 주었다. 그 속에는 박인경만 알아야하는 공작지령이 들어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여비서는 취리히에 남고 백건우와 윤정희와 그들의 딸과 박인경이 <자그레브>행 비행기를 탔다.

<자그레브> 비행장에 도착하여 주위를 살펴보니, 그런 지방도시 작은 비행장에 <고려민항> 비행기 한 대가 눈에 띄었고 저쪽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여자 한사람이 있었는데 유독 그 여자만 어울리지 않게 선그라스를 썼고 흰 저고리에 검정색 동강치마를 입고 있어서 전형적인 북한여성의 옷차림이라고 직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목격한 윤정희는 대단히 불안하였고 긴장하였다고 한다. 윤정희의 예감이 맞았다. 그녀는 북한공작원 <허묵>과 함께 백건우 윤정희 납치공작에 참여한, 비엔나주재 북한대사관의 3등서기관 <이상준>의 처이며 이름은 <방화자>이었다.

그때 백건우가 마중 나온 사람이 있을 거라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는데 박인경이 취리히에서 그 여자비서로부터 받은 흰 봉투를 주었다. 봉투 속에는 <아미크>라는 이름과 주소, 그 집을 찾아가는 약도, 그리고 돈 800 디나르가 들어 있었다. 택시를 타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거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국제적인 피아니스트를 초청해놓고 마중도 안 나오고 택시를 타고 오라니 그런 결례가 어디 있나. 백건우는 이상한 예감을 갖기 시작하였다.

<2편에 계속>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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