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20분간 반도체 산업 관련 강연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는 ‘목숨 걸고’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올인할 것"을 주문했다. 집권 초기엔 대통령의 작은 푸념도 아래로 내려가면 천둥소리가 된다. 윤 대통령의 지시는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와 예산 증액 등을 최우선 순위로 격상시킬 것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분야가 후순위로 밀리거나 소외·위축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 초기, 대불산단의 전봇대 2개 뽑기 소동과 집권 2년차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의 허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인재 부족은 반도체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AI(인공지능)·배터리· 로봇·바이오 등 첨단산업과 주력 제조업, 원전산업과 금형·주물 등 뿌리산업도 마찬가지다. 인재 부족뿐 아니라 기능 인력도 부족하다. 반면, 산업 수요는 별로 없는데 대졸자는 무수히 양산된다.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인재·대학생 흡인력이 강하다. 교육 소비자의 자유선택에 맡겨 버리면 지방대학은 살아남을 곳이 거의 없다. 이는 정치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요컨대 수도권 규제는 누구도 거스르기 힘든 ‘지역균형발전’ 요구의 산물이고, 대학의 정원 규제는 학문의 균형발전과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연착륙 전략’이 된다. 한편으론 사양(斜陽)학과 교수의 생존권 요구의 산물이다. 이 배경에는 대학총장 직선제라는 낡은 민주화 체제가 버티고 있다. 문제의 뿌리는 깊고 강고하다.

첨단산업 인재 부족, 주력·뿌리 산업 인력 부족, 산업 수요와 대학·학과 정원의 어긋남, 초중고의 돈(예산) 홍수와 고등·평생·직업 교육의 돈 가뭄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역대 정부의 국정과제와 대통령 지시사항에는 첨단산업 육성과 교육개혁이 약방의 감초였지만, 결국 별무신통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집권 초기 대통령의 특별 지시는 산업·교육·노동·공공·예산·지방·정치·문화가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전체 현실을 잘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대통령의 지시가 강하고 구체적이라고 해서 좋은 게 아니다.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좋다. 역대 정부의 실패가 타산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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