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과에 진학한 제자 이야기
통계학과에 진학한 제자 이야기
  • 최성재 교육문화평론가
  • 승인 2018.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공산권처럼 통계조작하려는 文정부

주원은 키가 컸다. 3학년 전체에서 제일 하늘에 가까운 여학생이었다. 2학년에서도 그보다 상층의 공기를 마시는 여학생이 없었는데, 드디어 운동장 조회 때 그보다 조금 두드러져 보이는 여학생이 한 명 입학했다. 알고 보니, 멀리서 봐도 180cm는 족히 될 듯한 그 신입생이 얼굴이나 체형은 별로 안 닮았지만 주원의 친동생이었다.

입시 면담하러 온 주원의 어머니도 170cm가 넘는 장신이었다. 동생 홍원이 얼굴이나 체형이나 어머니를 닮은 걸 봐서, 한 번도 내가 뵙진 못했지만, 주원은 아버지를 쏙 빼 닮았나 보다.

그런 주원이 졸업 6년 만인가 7년 만인가, 물어물어 찾아 왔는데, 정장 차림에 빛나는 하이힐을 신고 왔다. 점심 식사하러 둘이서 나란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던 것 같다.

주원은 졸고 「꼴찌들의 유쾌한 반란」에서 잠깐 언급한 신목고 3학년 5반 학생이었다. 주원은 입시 면담하기가 참 어려운 학생이었다. 평범해서 어려운 학생이었다.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것도 아닌 중간 성적이었다. 게으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말썽 부리는 것도 아니고. 강북의 보통 학교하면 우수한 축에 들었겠지만, 신목고는 제2의 강남이라 할 만한 목동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학교라, 주원은 키가 큰 것 외에는 별로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제2의 강남 신목고

말도 별로 없었고, 다시 말하지만 문제될 만한 일을 조금도 일으킨 것도 아니고,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키는 컸지만 운동 신경은 별로여서 5월의 교내 운동회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대신 재경은 키도 보통이었고 공부도 주원보다 못했지만, 체육부장으로서 운동신경도 발군인데다 승부욕도 강하고 지도력도 좋아, 3학년이고 뭐고 점심 식사 끝나거나 보충수업(방과후수업) 끝나면, 전원 운동장에 집합시켜 이과(자연계) 라이벌 6반한테 공부는 뒤지더라도, ‘내가 체육부장으로 있는 한’ 운동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며 근 2주 동안 5반 학생들을 닦달했다.

특히 마지막 한 주는 학생들이 공부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꼬박꼬박 졸 정도로 맹훈련시켰다.

우리 반 학생들 나머지 39명도 눈에 불을 켜더니, 기어코 3학년 여학생 전체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여왕의 권좌에 등극했다. 문과 여학생 네 반에 비하면, 이과 두 반은 학급 인원이 3분의 2가 채 안 되어 아주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아름다운 경쟁심과 불같은 노력으로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었다. 그 후 우리 반은 화기애애하게 우승 트로피를 이따금 쳐다보며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진학 성적도 그런 대로 괜찮았다.

몇 년 후에 재경은 여전히 씩씩한 모습으로 내게 찾아와서 다큐멘터리 제작회사를 차려, 지상파 방송의 갑질에 피 말리게 시달리지만, 어엿하게 직원들을 거느린 사장으로서 누구에게도 경제적 도움을 안 받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고모할머니가 실은 두산그룹의 최고 어른이시라며, ‘선생님, 어려운 일 있으면 저한테 부탁하세요!’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손 벌릴 사람이 아니지만, 그 진심이 내게 전달되어 가슴이 뭉클했다.

주원과 같은 학생이 의외로 많다. 쉽게 생각하면 이런 학생이 입시지도하기 제일 좋다. 성적에 맞춰서 보내면, 그냥 가니까! 난 그럴 수 없었다. 고민을 더 많이 했다. 그러다가 숙명여대 통계학과를 떠올렸다. 문과(인문계열) 학생도 갈 수 있지만, 통계학과는 수학이 기초가 되어야 하므로 이과 학생이 더 좋다, 라며 주원을 설득했다. 주원이 이화여대는 아무래도 성적이 모자랐다. 서울 시내에 갈 데는 제법 있었지만, 장래가 별로 밝지 못했고 무엇보다 주원의 잠재력을 발휘하기 힘들 듯했다.

너무너무 고맙게도 주원이도 주원이 어머니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통계학이 중요하다

“아직은 통계학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 문턱에 있기 때문에 통계학은 어떤 학문보다 중요합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도 있어야 하고, 세계적인 식물원도 있어야 하고, 차별화된 박물관과 미술관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 수준의 객관적인 통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저 겉보기 GDP만 높다고 선진국이 되지 않습니다. 주원은 수학도 웬만큼 잘하고 꾀를 부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기에 통계학이 적절할 듯합니다.”

돌아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동시에 그렇게 얼굴이 환했던 경우는 그 후로도 드물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주원이 내친 김에 숙대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고 나서 옛 담임을 찾아왔던 것이다. 엷게 화장한 얼굴이 이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이번에 미국 모 대학에 박사 과정 공부하러 갑니다. 전액 장학금 플러스 연간 5만 달러 받는 조건입니다. 그때 선생님 말씀 참 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이쪽에 이렇게 소질이 있는 줄도 몰랐고 통계학이 이렇게 중요한 줄도 그전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수학자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
옛 독일의 마르크화 중 10 마르크 독일의 유명한 수학자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

옛 독일의 마르크화 중 10마르크 지폐 전면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라는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 1777–1855)의 초상화와 정규분포가 새겨져 있었다.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는 달리 가우스 분포(Gaussian distribution)라고도 한다.

가우스는 수학에 여러 이정표를 세웠지만, 현대 수학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확률과 통계에 금자탑(tour de force)을 세웠다. 수학의 태조太祖(Princeps mathematicorum*)가 전혀 수학이 안 될 것 같은 확률과 통계를 수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현대의 모든 학문에 기초를 든든히 해 둔 덕분에, 자연계 학과든 인문계 학과든, 경제에서든 정치에서든 사회에서든 문화에서든 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감히 국제사회에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원로원을 달래려고 자신을 황제라 일컫지 않고 프린켑스 곧 제1 공민公民이라고 했음. 프린켑스를 태조라 새긴 것은 필자의 의역임.)

문재인 정부는 여러모로 특이한, 이상한 정부다. 상식 있는 교양인이나 상식 있는 일반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민주와 민족과 평화와 환경의 명분으로 권력의 몽둥이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언론의 나팔에 잔뜩 고무되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달님은 50년 집권의 초대 황제로서 ‘더불어’ 나라의 기초를 ‘더블double로’ 닦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중 하나가 통계다. 원하는 통계가 안 나오자, 임기도 안 찬 장관을 끌어내리고 언제든지 원하는 통계를 낼 수 있다는 통계 마술사를 통계청장으로 임명했다.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옛 공산권처럼 공무원만 잔뜩 늘리고 월급 받기 민망한 단기 일자리를 대거 급조한다.

◇공산권의 통계는 대부분 조작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내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겠다만, 한국은 일인당 GDP가 3천불, 동구권과 소비에트연방은 6천불, 옛 동독은 1만 불 정도였다. 당시 한국의 운동권 중 PD계열(People’s Democracy 인민민주주주의)은 이상(理想)국가(이데아 idea)가 동구권 특히 구 유고슬라비아였으므로, 밤낮으로 입에 거품을 물었다. (자고 일어나면 그러니까, 입가에 허연 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공산권은 서비스업은 GDP에 포함시키지 않으므로 실지로는 그보다 3천불 정도 더 높을 게 틀림없다고!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정반대였다. 한국이 그들보다 아무리 못해도 2배, 3배는 잘살았고, 10배는 자유롭고 20배는 평등한 나라였던 것이다. 1989년부터 동구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진 것은 서울올림픽과 절대 무관하지 않았다. 그들이 눈으로 보고 간 뒤라, 입소문은 순식간에 퍼져서 더 이상 거짓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 통계조작이었던 것이다!

시장경제에서는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모조리 쓰레기다. 그것이 일시적으로 통계에 잡힐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이내 마이너스로 바로잡힌다. 제대로 된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공산권에서는 왼쪽 신발만 생산해도 그게 다 통계로 잡힌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거지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조악한 제품만 생산했다. 그나마 계획생산이라 양도 턱없이 부족했다. 정작 필요한 제품은 태부족이었다. 쓰레기 대량 양산에 쓰레기 폐기 비용까지 더하면, 6천불은 순식간에 2천불로 1천불로 곤두박질친다.

곡물은 들판에서 눈비 맞고 썩는 게 3분의 1, 운반 중에 길에 쏟아지는 게 3분의 1, 전기는 누전율(*)이 여차하면 40%가 넘었다. 그런데 이런 게 최초 생산을 기준으로 모두 GDP 통계에 잡혔던 것이다.

(*한국은 송배전 과정에서 누전율을 줄이려고 반세기에 걸쳐서 피나게 노력해서 4% 이하로 낮춘 세계 유일의 국가다. 한전 만세! 2위는 대만.)

게다가 사람 죽이는 무기가 옛 공산권에서는 통계에 잔뜩 잡혔다. 핵무기나 미사일, 생화학무기 하나하나가 비밀리에 얼마나 비싸게 잡혔을까.

단언하거니와, 독특한 통계를 내기 시작하면, 이미 그 나라는 더 이상 볼 것 없다.

주원이 졸업한 지 2년 후, 공항고에 근무할 때였는데, 어느 날 웬 아주머니가 살가운 목소리로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최 선생님, 저 주원이 엄마입니다. 홍원이가 어느새 3학년입니다. 수능 성적이 이러이러한데, 어느 대학에 가면 좋을까요? 당연히 담임선생님과도 학원 선생님과도 상담했지만, 아무래도 흡족하지 않아서요. 염치없지만, 부탁합니다.”

jayooilb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