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신사옥. /연합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신사옥. /연합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 개혁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이 불어나고, 성장 잠재력도 추락하기 때문이다.

개혁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이는 기존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는 이들의 양보 없이는 추진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연금개혁이다. 이전 정권들도 연금개혁을 외쳤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일부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혔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연금개혁의 대상은 국민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 4대 공적연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 등 4대 사회보험도 포함된다.

이들 공적연금과 사회보험은 ‘자기부담’이 원칙이다. 기금의 수익이나 가입자 납부액을 토대로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운용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이 지연되면서 적자폭이 커지고, 이를 메우기 위해 매년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 간 적자 보전액과 가입자 지원액은 71조원을 넘는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 향후 발생할 국민연금 적자까지 정부가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적자에 대해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한 액수는 2017년 11조1004억원에서 올해 17조3715억원으로 5년 만에 56.5% 늘었다.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가입자 지원액이 2017년 7조3000억원에서 올해 12조2000억원으로 65%가량 급증했고,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액도 같은 기간 2조2000억원에서 3조2000억원으로 42% 증가했다. 군인연금은 1973년 이후 적자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고용보험은 2018년 이후 적자로 돌아서 4년 연속 재정이 거덜난 상태다. 문 정부 출범 전에는 고용보험 적립금이 10조원 이상 쌓여 있었다. 하지만 5년 만에 바닥이 났고,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자금을 차입해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이 돈은 되갚아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적자 보전액과 가입자 지원액이 매년 12%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2~3%에 불과한 한국 경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상황이다. 한마디로 문 정부는 지속 불가능한 공적연금과 사회보험 지출 구조를 만들어 놓고 뒷감당은 다음 정부로 떠넘긴 것이다.

국민연금도 ‘뜨거운 감자’다. 기획재정부는 ‘2020~2060년 장기 재정 전망’을 통해 국민연금이 2041년이면 적자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 즉 합계출산율을 1.20명으로 전제하고 계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에 불과하다. ‘냄비 속 개구리’처럼 당장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고 개혁을 회피하면 재정 파탄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은 명확하다.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덜 받는 방식의 구조 개편이다.

무엇보다 보험료율 9%의 벽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국민연금은 도입 후 5년마다 보험료율을 인상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지난 1998년 보험료율을 9%로 올린 이후 24년이나 동결된 상태다. 연금을 덜 받는 것은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난제다. 이미 연금을 받고 있거나 조만간 수령할 기성세대의 양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은 정치논리도 한몫한다. 보험료율을 올리면 청년층의 표심 이반을 부를 수 있다. 반면 연금을 줄이면 장년층이 돌아선다. 한마디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 없이는 세금으로 공적연금과 사회보험의 적자를 막는 구조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이달 중 규제 혁파와 구조 개혁 등을 담은 5년 간의 경제정책 청사진을 발표할 예정이다. 경제위기 극복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이지만 공적연금 개혁 등도 포함된다.

개혁의 타이밍도 괜찮은 편이다. 내후년 4월 총선까지는 2년 가까이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이 공적연금과 사회보험을 뜯어고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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