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
김성회

최근 민주당에서 ‘정치 팬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패한 이유가 국민들의 여론을 살피지 않고 극성 팬덤에 휘둘렸기 때문이라는 비판이다. 극성 팬덤으로 인해 당내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다양한 목소리가 질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의 ‘극성스런 정치 팬덤’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치를 하면서 ‘호남향우회’라는 강력한 정치 지지층에 많이 의존했었다. 뒤이어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사모’라는 극렬 지지층을 바탕으로 이인제, 이회창 대세론을 연거푸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뿐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문꿀오소리’ 등의 극렬 정치 팬덤의 지지로 집권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후반기까지 40%대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또 집권 기간 내내 그들만을 챙기는 정치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것이 이제 이재명의 ‘개딸들’과 ‘양아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민주당의 정치 팬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야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김대중과 노무현은 정치 팬덤을 적절히 관리하고 리드한 반면, 문재인과 이재명에 이르러서는 정치 팬덤에 휘둘리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민주당의 정치 팬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념형 정치 팬덤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호남향우회가 적극적 지지층에 머문 반면,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가담한 노사모 이후의 정치 팬덤은 이념적 성향이 강하다. 종북적 성향과 반일주의, 그리고 강성 페미니즘이라는 운동권 습성을 그대로 띠며 당내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질식시켜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정치 팬덤 논란이 일어나자, 언론들이 신이 났다. 특히 보수언론들은 연일 민주당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한 것은 ‘극렬 팬덤’에 의한 여론 무시가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떤 모습일까? 정치 팬덤에 휘둘리기는커녕, 국민의힘에 정치 팬덤이 있긴 있나? 당에 정치 팬덤이 없다보니, 당의 중심이 없다. 목소리도 일관성이 없다. 같은 당의 정치인들 사이에 서로 삿대질이나 하는 오합지졸의 모습이다. 국가에 대한 사명감은 찾아볼 길이 없고, 자기안위만 걱정하는 ‘정치 자영업자’만이 눈에 띈다.

중심이 없는 국민의힘을 좌우하는 것이 조선일보와 같은 보수언론이다. 그들이 국민의힘 정치 자영업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너희들은 능력 없어." "내말을 듣지 않으면, 너희들은 끝나!" 그렇게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보수언론의 가스라이팅에 주눅들어 있다. "괜히 나대다가 언론에 찍히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극렬 정치 팬덤에 휘둘리는 것이 민주당의 문제라면, ‘정치 참모부’를 자임하는 보수언론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이 국민의힘 문제다.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정치 팬덤’에 찍히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보수언론에 찍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훌리건이 된 팬덤에게 휘둘리는 정치, 언론 권력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정치…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민주당의 현주소이고 국민의힘 현주소다. 팬덤이 문제라는 언론의 지적질, 보수언론이 문제라는 정치 팬덤의 지적질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이유다.

바람직한 모습은 팬덤이 없는 정치가 아니라 팬덤에게 휘둘리지 않는 정치일 것이다. 팬덤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리드하는 정치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론 권력에게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는 정치일 것이다. 언론에 귀를 기울이되 언론의 무책임한 지적질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일 것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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