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즉석밥 시장이 1조원 규모로 성장하면서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업체간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즉석밥 판매대. /연합

밥에 진심인 한국인들이 즉석밥에 입맛을 사로잡히며 집밥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밥을 짓기 힘들거나 급히 밥이 필요할 때 이용했던 비상식품 개념의 즉석밥이 일상식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밥솥을 밀어내고 밥상의 주인 자리를 꿰차는 일이 다반사가 된 것이다. 관련시장이 1조원 대로 커짐에 따라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도 본격 불이 붙었다.

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식품·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즉석밥 시장 규모가 지난해 4500억원을 돌파했다. 2011년의 1290억원과 비교해 3.5배나 성장한 수치다. 수출과 내수를 포함한 전체 시장은 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즉석밥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며 과반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CJ제일제당 ‘햇반’의 매출만 지난해 6860억원에 달했다는 게 근거다.

앞으로의 전망도 장밋빛이다. 갓 지은 밥에 버금가는 맛을 내며 소비자의 거부감이 사라지면서 즉석밥의 편리함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쌀 소비량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2015년 71.7kg에서 2021년 56.9kg로 매년 감소 중인 반면 즉석밥의 원료인 가공용 쌀 소비는 같은 기간 57만5460톤에서 68만157톤으로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즉석밥 소비율이 높은 1~2인 가구의 증가를 이런 변화의 핵심요인으로 꼽는다. 실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저출산과 핵가족화 기조로 2020년 기준 국내 1~2인 가구수가 전체 가구의 59.7%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1인 가구의 비중은 2015년 15.5%에서 5년 만에 31.7%로 2배나 뛰었다. aT 관계자는 "1~2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에 힘입어 즉석밥의 주소비층이 과거 30대에서 40~50대로 확산되고 있다"며 "지속적 신규 고객 유입을 통해 연평균 두자릿수의 시장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시장 파이가 커지자 업체간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국내 즉석밥 시장은 CJ제일제당(햇반)과 오뚜기(오뚜기밥)가 각각 66.9%, 30.7%의 점유율로 양분하고 있는데 농심·동원F&B 등 후발주자들의 도전이 거세다. 지난달 16일에는 닭고기로 유명한 하림이 백미밥·흑미밥·현미밥·오곡밥 등 11종으로 구성된 즉석밥 브랜드 ‘더(The) 미식 밥’을 론칭하고 햇반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 미온수를 활용한 뜸들이기 등 신공정을 적용해 집밥의 손맛을 살렸다는 설명이다. 10% 이상의 점유율 달성이 하림의 목표다.

이외에 씨유(CU) 편의점의 ‘우리쌀밥’, 11번가의 ‘갓반’, 홈플러스의 ‘시그니처 햅쌀밥’, 이마트의 ‘철원오대미밥’ 등 유통업계의 자체 즉석밥 브랜드(PB) 출시가 줄을 잇는 상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즉석밥은 맛과 영양은 더하고,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흰쌀밥 일색이었던 1세대 즉석밥이 잡곡밥 중심의 2세대로 진화한데 이어 최근에는 별도의 반찬 없이도 만족스런 한끼를 즐길 수 있는 3세대 컵밥·덮밥이 신제품의 주류를 점한다. 전복내장 영양밥, 소고기우엉 영양밥, 흑미 밤찰밥 등으로 구성된 CJ제일제당의 즉석영양솥밥 ‘햇반솥반’이 실례다. 이 제품은 지난해 6월 출시 이후 1년 만에 123만개가 팔리며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입맛 저격을 위한 기술경쟁도 치열하다. 햇반솥반만 해도 10여년 연구개발의 성과물이다. 육류와 해산물은 미생물이 쉽게 번식해 즉석밥 재료로 쓰이지 못했지만 CJ제일제당은 살균능력을 업그레이드한 무균 진공가압기술을 적용해 제품화에 성공했다. 또한 수분함량과 열처리를 최적화한 신기술로 원물의 식감과 쌀의 찰기를 살렸다. 얼마전 오뚜기가 선보인 곤약밥 ‘곤라이스’도 마찬가지다. 곤약은 낮은 칼로리로 포만감을 줄 수 있다는 장점에도 아무런 맛이 없어 상품화가 어려웠다. 하지만 오뚜기는 오랜 연구 끝에 잡곡밥의 식감과 풍미를 살린 곤약쌀을 만들어냈다.

업계 관계자는 "건강을 중시하는 식품소비 트렌드에 맞춘 레시피와 신제품 개발이 올해 즉석밥 시장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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